[교단만필]눈이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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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만필]눈이 내립니다

  • 승인 2018-01-08 14:19
  • 수정 2018-01-08 16:33
  • 이선주  아산 월랑초 교사이선주 아산 월랑초 교사
이선주 충남 아산 월랑초등학교 교사
이선주 충남 아산 월랑초등학교 교사

"눈이다!"

어디선가 아이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드니 창밖 너머로 하얀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소올솔 김이 오르는 둥굴레차 위로 이러 저리 흩날리는 눈발이 아이들의 재잘거리며 뛰노는 발자국처럼 가볍기만 합니다.

"선생님, 눈사람 만들어도 돼요?"

"그~럼! 함께 만들어 보아요!"



지난 12월, 수북하게 쌓인 눈 위로 아이들과 함께 이리저리 눈덩이를 굴리며 제법 커다랗게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어디서 구했는지 나뭇가지를 주워서 눈과 코를 만들고, 조금은 살이 붙어 있는 마른 나뭇잎으로 입술을 붙여 수줍은 듯 익살스러운 표정의 눈사람 셋이 완성되었습니다.

"와! 참 멋지네! 이름은 뭐라고 할까요?"

"못난이 3형제요!"

"그게 뭐야, 예쁜이 3남매가 맞지."

저마다 내미는 눈사람의 이름들은 물기를 머금고 빛나는 햇살마냥 몽글몽글 피어오릅니다. 그 때, 율이가 손을 번쩍 듭니다.

"선생님, 우리 반이 풀꽃반이니까, 풀꽃 3남매는 어떨까요?"

여기저기에서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좋아요, 율이의 의견에 동의하는 건가요? 그럼 여러 친구들의 생각을 담은 '풀꽃 3남매'라고 이름을 붙여보겠어요."

"와! 짝짝짝!"

그렇게 하여 한겨울에 태어난 '풀꽃1,2,3, 삼남매'는 한동안 교실 창가에 머물렀고, 채 사흘이 안 되어 스러진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유난히 추위를 잘 타는 율(가명)이는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집니다. 겨울방학을 한 지 일주일을 갓 넘긴 오늘, 내리는 눈을 보니 그날이 문득 떠오릅니다.

"율아, 어떻게 지내고 있니?"

"음……. 저는 동생들이랑 형이랑 잘 지내고 있어요."

"그렇구나. 눈이 내리니 우리 율이가 생각나서 전화를 했어."

"그래요? 헤헤……."

싱겁게 끝난 통화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놓입니다.

지난 2학기 개학을 한 8월 말, 까칠한 얼굴을 한 율이가 유독 눈에 띄어 마음에 걸렸습니다. 개별로 불러서 대화를 나눠보니, 엄마가 3일 동안 집에 오지 않으셔서 밤새 일어나다가 눕다가 하면서 뒤척이다가 학교에 왔다는 것입니다. 특히 막내인 1학년 여동생은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마구 울어서 어려웠다고 하였습니다. 순간 저도 눈물이 쏟아져서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하였습니다. 그리고 교감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가정방문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선생님, 지금 집에 아무도 안 계세요."

"그래, 염려 마렴. 괜찮아."

찾아가는 동안 두 세 걸음을 잰걸음으로 앞서나가는 율이는 뒤를 보면서 여기로, 저기로 하면서 길을 안내해줍니다. 뒤따라가면서 그동안 우리 율이가 세수를 하지 않고 오는 날이 종종 있었음을, 며칠 동안 같은 옷을 입고 왔던 그 모습들이 떠올랐습니다. 아침을 거르고 오는 우리 아이들에게 빵, 주먹밥, 씨리얼을 챙겨주는 것만으로 다가갔던 무심함이 마음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여기예요."

가리키는 현관 문 앞에는 여러 달이 지난 고지서, 독촉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문을 여니 어수선한 현관, 복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율이가 문을 열어주어서 고마워요. 여기 현관은 선생님이 정리해 볼 테니, 우리 율이는 거실을 정리해 볼까요?"

그 때 맏이인 율이의 형이 머리를 긁적이며 인사를 합니다.

다행이었습니다. 며칠째 오시지 않던 어머니는 그날 밤, 통화가 되어서 선생님이 다녀간 것과 엄마의 부재 시 있었던 일들이 전달된 덕분인지 돌아오셨다고 합니다.

"율아, 어머니께서 몸이 편찮으신데, 너희 4남매를 위해 애쓰고 계시니 용기를 가지고 살아보자."

아버지의 부재 속에 여러 가지 합병증을 가지고 있는 젊은 어머니 홀로 자녀를 양육하는 일이 매우 어려운 일임을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율이에게 어머니의 근황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전 보다 나아졌다고 합니다.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몇 가지 안타까운 사연이 마음에 걸려서 쌀과 과일 몇 가지를 가지고 사남매를 차에 태워 조심스럽게 방문을 하였습니다. 율이의 어머니께서 수척하지만 맑은 눈으로 맞아주셨고, 자녀교육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늦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면서 율이는 부쩍 밝아졌고, 교우관계도 완화되었으며 청소나 분리 배출을 할 때 앞장서는 모습으로 돌아와 주었습니다.

"달그락달그락!"

불 위에 놓인 직화 냄비 위에서 지난여름, 가을날의 햇살을 가득 머금은 고구마가 달콤한 내음을 내쉬며 구워지고 있습니다.

노랗게 바뀌어가는 고구마의 속처럼 우리 율이와 그리고 서른 한 명의 꿈동이들과의 추억이 익어갑니다.

"추운 겨울동안 건강하게 잘 지내요!" 

 

이선주  아산 월랑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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