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원 교수 |
그 시대를 관통하는 감정을 아들과 보며 소통할 수 있었던 영화, ‘1987’
숨이 차고 눈물이 차고 넘쳐 그 시대에 내가 겪었던 감정들이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1987년 여름은 일상이 최루가스였다. 우린 그 시절에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공존이든, 어떤 집단의 생존이든 이러한 것은 중요한 줄도 몰랐고 정의는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밖에는 몰랐지만 그들의 선택이 세상을 바꿨음은 확실하다.
공존이 먼저인가 생존 본능이 먼저인가는 사실 선택의 문제는 아니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생존의 본능을 자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생물 개체 자신의 생존과 생식능력을 성공적으로 간직하기 위해 ‘자기기만’을 행하게 되는데, 포식자로부터 대항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보이거나 혹은 죽은 척하기 같은 ‘행태기만’을 보인다.
포유류나 영장류는 행태기만에서 더욱 발전한 ‘의식기만’을 보여주고 있는데 개체 보존의 생존본능이 발휘되어 인간은 속임수와 술수, 은닉, 허풍 등의 기만행위를 한다. 생존본능이 강할수록 자기기만도 강하며 자신의 의식으로부터 스스로를 완전히 확신하여 자기기만의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한다.
독재사회에서 사용된 의식기만은 구성원들을 환상의 세계관으로 유도하여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희망을 만들어 주지만 실제로는 획득할 수 없는 환상이다.
국민 대다수가 처한 결핍과 불평등을 해결해주겠다는 환상을 심어주지만, 독재자 본인의 기만을 성공시키기 위해 유토피아를 꾸미게 된다. 재벌과 거대 언론이 만든 많은 환상도 부와 권력을 쫓게 한다.
이러한 의식기만과 자기기만은 유전적으로 획득하거나, 이 시대를 견디고 생존하기 위해 적응하여 진화하였다고 본다. 이러한 개인의 이익지향성 욕망은 결국은 본인의 생존본능으로부터 나오며 집단의 공존과 공동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포장하여 한 사회를 건강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들은 모든 것을 ‘국민의 뜻에 따라’, ‘노동자의 뜻에 따라’, ‘나를 따라 하면 너희도 부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라는 기만적인 말로 사회를 전염시킨다.
한국의 생물학적 자기기만의 현상은 과거 독재사회를 거치며 돈과 권력에 의해 익숙하게 적응된 현상이다. 어떤 학자는 이를 두고 ‘인지적 보수성’이라고 표현한다. 나와 관계가 없는 상황을 만들려고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익숙한 것만 하려고 한다.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말은 실제로 자기기만을 포함하는 생존본능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
1987년 대학교 1학년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나를 포함한 그 시대 언저리를 살아온 그 세대가 이제는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원하지 않는 상황은 만들려 하지 않고 알고 싶은 것만 알려고 하는 인지적 보수 사회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게 된다.
낮은 곳을 보고 공존의 가치를 꿈꾸고 학교가 가진 본래의 기능을 고민하기보다는 경제가 어려워지고 나눌 수 있는 파이가 작아지니 개인과 기업, 학교 등 많은 집단과 조직에서 생존의 본능만을 나타내는 이익편향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연 생태계에서 다양한 종들은 경쟁, 포식, 기생, 공생의 관계를 유지하며 진화되어 왔다. 한정된 자원과 식량을 공유하지 않고 어떤 포식자가 모든 것을 소유하려 든다면 그 생태계는 망가져서 결국은 그 포식자들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인간이 자연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종들과 공생 관계를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인류학자나 미래학자도 공생의 발전을 강조하고 있으며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공존의 가치, 생물학자들이 말하는 생태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공존과 협동의 가치들을 열거 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그 공존의 가치를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공존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인간 유전자 안에 코드를 이식하여 생존본능에 빠진 인류가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하도록 도태시켜야 한다.
이준원 배재대 바이오·의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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