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짧게 깎은 한 중학생이 손바닥만 한 구멍에 대고 말하고는 천원짜리 몇 장을 쓱 밀어 넣는다. 창문 안쪽 매표소 주인은 돈을 받아들고 재빨리 승차권을 한 움큼 집는다. 손끝에 침을 바르고 껌 종이처럼 작고 얇은 승차권을 거듭 세어본 후 돈이 들어온 구멍으로 다시 내민다. 버스가 그사이 지나갈까 노심초사하던 학생은 승차권을 안주머니에 넣고는 정류장으로 잽싸게 뛰어간다.
승차권 가판대를 운영하는 A(75)씨는 오늘도 오전 6시 30분 2평짜리 가게 문을 연다. 목척교를 지나 대전역 앞 버스정류장 옆이 A씨가 지난 30년간 생계를 이어온 터전이다. 가게 셔터를 올리고 주변을 청소한 후 매장에 앉는 것으로 영업 준비는 끝났다.
2평 남짓의 그의 가판대는 옛날 모습 그대로다. 손이 쉽게 닿을 곳에 그날 신문과 음료수가 진열됐고 음료수와 아이스크림 판매대도 보인다. 네모난 통유리에는 승차권 카드와 담배, 복권이 밖에서 보이도록 부착돼 있다. 손님이 신문을 고르든 버스카드에 충전하든 역시 창문에 난 작은 구멍으로 대화와 돈이 오간다. 종이승차권을 더는 판매하지 못해 손님이 많이 줄었고 그사이 주인장 이마에 주름이 많이 늘었다는 점이 가판대에서 달라진 부분이다.
A씨가 가판대에 머무는 동안 다리를 펴고 앉거나 허리를 곧추세워 일어설 수 없어 보였다. 천정은 낮아 앉아있는 것만으로 머리가 천정에 닿을듯했고, 무릎을 펼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무릎을 꿇고 앉았다가 양반 다리로 고쳐앉고 그도 안되면 잠시 밖으로 나가 기지개를 켠다. 또 가판대 실내는 살짝 코끝이 시리게 춥다. 궁둥이를 붙이고 앉은 바닥에는 난방은 되지만, 공기를 데우는 히터는 없기 때문이다. 대신 두툼한 잠바와 털모자 그리고 이불이 그의 체온을 유지해 준다.
“장사 시작한 지 얼마나 됐냐고?”A씨는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라는 듯 한참을 곰곰이 생각했다. “여기서 최루탄 마시며 장사했으니 전두환 전 대통령 때부터 하지 않았나 싶은데”그의 대답이었다. “옛날에는 대전역 앞에서 시위도 많고 말 도마 살벌했어. 학생들은 경찰에 쫓기다 넘어지고 다치고 말도 못하지. 생계를 위해 장사는 해야겠는데 최루탄은 역전에서 펑펑 터지지 견디기 어려웠지. 그래서 방독면을 구해서 얼굴에 쓰고 장사를 했던 기억도 있는데”라고 말했다.
그의 곁에 쪼그려 앉아 함께 바라본 창문 밖 모습은 한 곳을 오랫동안 비추는 CCTV 세상 같았다. 인도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표정과 발걸음으로 창문 이쪽에 나타났다가 저쪽으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비슷한 시각에 지나가는 사람, 항상 뛰어가는 사람, 대전에 처음 온 듯한 사람 등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며 창문 밖을 응시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오천 원 충전해주세요” 한 학생이 창문 틈으로 버스카드와 현금을 포개어 넣는다. A씨는 버스카드를 충전기 위에 올려놓고 ‘5000’을 적립한 후 카드만 유리 틈으로 다시 돌려준다. 돈이 좀 돌 때는 충전금액부터 높아지는데 요즘에는 호주머니가 가벼워선지 학생부터 성인까지 만원 이하에서 충전한다고 한다. 버스승차권이 사라진 후 가판대의 주요 수익은 버스카드 충전수수료인데 마진율이 무척 낮아 A씨는 제도개선을 바라고 있다. 버스카드 충전금액의 0.8%를 충전수수료로 받을 수 있는데 1만 원 충전에 800원꼴이다. 충전에 필요한 통신요금도 부담하는 상황에서 수수료가 형편없이 낮아 가판대 영업이 쉽지 않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이 때문인지 50여 곳에 있던 대전 승차권 가판대는 지금은 10여 개로 줄었고, 실제로 영업하는 가판대는 손에 꼽을 정도다. 기자가 이날 방문한 원도심 일대 가판대 7곳 중 2곳만 문을 열고 있었다 리모델링 되지 않아 쓰레기가 쌓이는 도심 흉물처럼 방치되는 곳도 있다.
“좁은 곳에 오랫동안 혼자 앉아서 하는 일인데 수익도 높지 않아 많이 문 닫았어. 오랫동안 해오신 분 중에 돌아가신 분들도 많고. 매연을 매일 맡아 기관지도 안 좋지만, 이곳에서 아이들 잘 키워 손자가 대학생이 됐으니 뭘 더 바래겠어. 대전에서 제일 먼저 문 여는 가게라는 자부심으로 해왔는데 단골과 친구로 지내는 재미지 뭐.”A씨가 말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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