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선우 시인 |
보통의 시인과 소설가들은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거나, 문학상을 수상하거나, 작품을 출판해서 문학계에 이름을 올리는 방식으로 등단을 한다. 이중 언론사 신춘문예 당선은 개인에게 주어지는 상금 이외에도 문단에서 신인문학가로 인정해 준다는 점에서 더 없이 화려한 등장이다. 신인뿐만 아니라 기성 문인들이 도전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2018년 황금개띠의 해, 대전출신 청년 시인이 탄생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의 영광을 안은 변선우(필명)씨가 그 주인공이다. 1993년생 올해 26살, 앳된 얼굴과 깊이 있는 눈동자를 가진 그는 대전에서 태어나 자란 '대전 토박이'로 한남대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중인 젊은 시인이다. 인터뷰 시작부터 "대전을 떠나본 적 없는 순수한 대전시민이고, 대전과 끈적한 인연이 있다"며 고향사랑을 감추지 않는 변선우 시인에게 삶과 시의 의미에 대해 물어 보았다. <편집자 주>
-이제 변선우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는데… 등단 소감은?
▲사실 본명은 김선우다. 동명의 시인이 있어서 어머니의 성을 따라 '변'씨로 바꾸어 필명을 사용한 것이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는데 어머니의 너무도 감사한 보살핌을 받았다. 어머니가 안 계셨더라면 어땠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가끔 해보지만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시의 뿌리가 어머니이기 때문에 여러편의 시에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신춘문예로 루키로 등단했다. 시를 쓰게된 계기는?
▲처음 시를 쓴 건 대학 4학년인 2016년 4월 즈음이었다. 원래는 취업을 준비했었기 때문에 토익 점수 등의 스펙도 쌓아놓은 상황이었지만 학과 선배인 '손미'시인의 수업을 받은 후 모두 포기했다. 시가 주는 울림이 좋았다. 계속 내 몸을 재료로 써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시를 쓴 지 대략 1년 반 정도 되어서 등단을 하게 됐다.
-생각보다 이른 결과다.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스스로도 놀랍고 당황스러워 며칠 동안 입덧 비슷하게 헛구역질을 했다. 하지만 한 편으론 짧은 시간이지만 노력하고 좋은 시를 위한 '갈구'를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 당선 이유였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또 저의 진심과 목소리를 알아봐주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기에 거짓되지 않게 시를 쓰고 싶다고 다시 한 번 곱씹었다.
-시인의 꿈을 꾸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 조언한다면.
▲첫 번째는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시라는 것이 결국 몸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많이 아플 것이고, 스스로 깨질 것이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을 것이다. '내 몸의 기록'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함께 이야기한다는 것이 때론 버거울 수도 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진심으로 시를 쓴다면 시가 주는 힘을 느끼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는 함께 가라는 것이다. 시는 고독한 장르라고 하지만 그 고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게워 내느냐도 중요하다. 함께 스터디를 하거나 문학을 하는 친구들처럼 시를 함께 쓸 수 있는 친구가 많으면 좋을 것 같다. 시의 성장이나 새로운 '나'의 발견은 결국 그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더 열심히 쓸 예정이다. 등단 전과 후, 달라진 것 없이 매일같이 시를 쓰고 있다. 매일같이 시를 쓴다는 건 '시에 관한 근육'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시를 쓰며 내 자신을 재료로 종이 위에 엎질러지고 있다. 살이 찢기고 몸이 벌어지는 아픔과 함께일 때도 있지만 쓰고자 하는 이야기들과 마음들을 백지 위에 펼쳐놓은 다음엔 개운해진다. 곧 시집도 내게 될 것이고, 어쩌면 좋은 상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정말로 나중의 일이라 생각한다. 당장 내 앞에 있는 '시'라는 운명을 맛있게 퍼먹는게 중요하다. 속으로, 속으로 쌓아가면서….
등단전과 등단 후, 시에 대한 자세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변선우 시인은 "아파도 쓰고, 힘들어도 쓰고, 울면서도 쓰고, 화내면서도 써야 하는게 시"라며 "어쩌면 온 몸의 피를 잉크 삼아 써내려가야 하기에 몸은 잉크를 담고 있는 하나의 펜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또 대전출신, 지역 대표시인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는 기자의 말에 아직은 시작지점에 서 있어서 세상에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어색하다고 말하면서도 "문학을 하는 삶, 죽을때까지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며 "피가 마르는 날까지 쓰게 된다면 독자분들도 공감할 것이고, 그때쯤이면 감사하게도 대전 대표 시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복도-변선우]
나는 기나긴 몸짓이다 흥건하게 엎질러져 있고 그렇담 액체인걸까 어딘가로 흐르고 있고 흐른다는 건 결국인 걸까 힘을 다해 펼쳐져 있다 그렇담 일기인 걸까 저 두 발은 두 눈을 써내려가는 걸까 드러낼 자신이 없고 드러낼 문장이 없다 나는 손이 있었다면 총을 쏘아보았을 것이다 꽝! 하는 소리와 살아나는 사람들, 나는 기뻐할 수 있을까 그렇담 사람인 걸까 질투는 씹어 삼키는 걸까 살아있는 건 나밖에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걸까 고래가 나를 건너간다 고래의 두 발은 내 아래에서 자유롭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래의 이야기는 시작도 안했으며 채식을 시작한 고래가 있다 저 끝에 과수원이 있다 고래는 풀밭에 매달려 나를 읽어내린다 나의 미래는 거기에 적혀있을까 나의 몸이 다시 시작되고 잘려지고 이어지는데 과일들은 입을 지우지 않는다 고래의 고향이 싱싱해지는 신호인 걸까 멀어지는 장면에서 검정이 튀어 오른다 내가 저걸 건너간다면… 복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길을 사이에 두고 무수한 과일이 열리고 있다 그 안에 무수한 손잡이
고미선 기자 misuny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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