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내리면, 내리는 것은 눈이 아니고 빛이었다.
내리면서 얼어서 반짝반짝 빛나는 빛 조각들은 푸르고 푸른 소나무 이파리 위에 달칵 걸리고 다시 차갈색의 땅으로 떨어져 서서히 사라진다.
무성한 소나무에 빛들이 사각사각 쌓인다.
온 산은 다시 하얀 빛으로 반짝인다.
야마노아마고우치산의 아마노기 신사.
언제나처럼 후루마쓰는 새벽 참배를 마치고 신께 다시 절을 세 번하고 박수를 세 번 친 다음 이날도 조심스럽게 스스로 고안한 기계의 한 자락을 신의 옷자락에 꽂았다.
플라워텔레스코프.
벌써 얼마 동안인가. 수없이 되풀이되는 기도와 시도.
그리고 조용히 꿇어 앉아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기계는 아무 응답이 없었다. 아니다, 신께서 답을 주시지 않는다고 후루마쓰는 생각했다. 벌써 9개월째, 오늘이 그러고 보니 9개월 하고도 9일째인가.
연구실에서 시도한 어린 소나무 역시 처음에는 답이 없었지만, 두 달째 가서는 응답해 오지 않던가.
소나무는 말 수가 적었다. 그러나 그 말은 무게가 있었다.
후루마쓰는 '신은 이런 방식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으시는 것인가'라고 의문을 가졌다.
후루마쓰의 경험에 따르면 신이 보여준 영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마을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거나, 후루마쓰의 집안에 불운이 밀려올 때마다 후루마쓰의 기도는 반드시 효험을 보여주곤 했었다. 후루마쓰는 언젠가는 반드시 플라워텔레스코프를 통해 한없이 자비로운 신이 응답할 것으로 믿었다.
후루마쓰는 온몸의 기를 모았다. 그리고 한자 한자 또박또박 그려 넣었다.
"후루마쓰입니다."
신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후루마쓰는 한참을 기다리다가 물러날 동작을 취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혹시나 해서 잠시 기다리던 후루마쓰는 일어나서 절을 세 번 하였다. 그리고 기계를 거두고자 접속단자를 집어 들었다. 그때 바람결 같은 파장 한 줄이 모니터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주 조용하게...
그는 흐흡하고 숨을 머금었다. 자리에 다시 앉았다.
천천히 읊조렸다.
"후루마쓰입니다."
또 파장 한 줄이 지나갔다. 후루마쓰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계속 '후루마쓰입니다'를 치고는 절을 한번 했다. 그리고 기다렸다가 다시 '후루마쓰입니다''를 치고 다시 절을 올렸다. 얼마나 되풀이 했을까?
드디어 파장이 다른 곡선을 그렸다.
"무엇을 기다리는가?"
아! 그것은 신의 첫 말씀이었다.
"신의 말씀입니다."
"무엇을 기다리는가?"
"신은 누구십니까?"
또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파장 한줄기가 모니터를 훑듯이 지나갔다.
"나는 생명이다."
"신은 어디 계십니까?"
또 파장이 흘렀다.
"나는 자연이다."
"신께서 저에게 내린 은총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후루마쓰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신은 말씀하셨다.
"자연이다."
"신이 들어주시는 제 기도는 누구의 힘입니까?"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기도는 너의 힘이다."
"제 힘이란 무엇입니까?"
"너는 자연이다."
순간 후루마쓰는 온 세상이 밝아지고 생각의 파편들로 꽉 차있던 머리가 시원스럽게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휘청거리며 일어났다.
신께 공손하게 세 번 절을 하였다. 그리고 신사를 나왔다. 하늘이 열리며 수많은 빛의 조각들이 그의 머리로 쏟아져 들어왔다. 세상이 환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계속)
우보 최민호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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