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한 해를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지만, 2017년 12월은 긴 추석 연휴를 보낸 탓에 더 없이 바쁘고 어수선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시간이 흐르고 여기저기서 스마트폰을 이용한 인사를 받으며 새해를 맞이하였다.
종이 카드 대신 동영상이나 사진 등 다양한 통신 메시지로 인사를 나누는 변화가 두드러지는 것 같고, 담겨있는 메시지도 만사형통같이 비현실적인 기원보다는 건강이나 복을 비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는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에게 하는 인사이기에 그 반대의 경우는 적절하지 않지만 메마른 시절에 연말연시 인사를 챙기는 촉촉한 마음으로 용서가 되는 것 같다.
문득 복(福)에 대해 생각하였다. 한자어 풀이를 보면 복(福)은 '하늘이 인간에게 내린 넉넉함'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한 자이지만 그 안에 인간의 힘보다는 하늘이 내린다는 의미와 좋은 운이나 넉넉함의 뜻이 합해진 문자이다. 그러니까 새로 맞이하는 해에 하늘이 도와 좋은 운세 속에 넉넉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덕담으로 쓰이는 것이리라.
서경이라는 문헌에는 오래 살고(壽), 부유하고(富), 건강하고 마음 편안하며(康寧), 덕스럽고(攸好德), 깨끗하게 죽는 것(考終命)을 오복(五福)으로 적고 있다 한다. 오늘날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새해 덕담에 쓰이는 복(福)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담긴 욕망이며 기원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어릴 때는 요즈음에 비해 복과 관련된 말을 일상 속에서 훨씬 더 자주 들었던 기억이다. 복스럽게 생겼다, 밥을 복스럽게 먹어야 한다, 다리를 떨면 복이 나간다, 이가 좋은 것도 복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부모복, 처복, 남편복, 자식복, 등등. 이제는 시대가 변해 금수저니 흙수저니 쓰는 단어는 달라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복(福) 프레임 안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무엇을 가져야, 어떤 상태가 되어야 복(福)을 받았다고 여길까? 복(福) 받은 사람은 어떤 느낌일까? 매년 새해인사로 복을 기원하면 복된 삶에 다가갈 수 있을까? 쉬운 대로 문헌에 나오는 다섯 가지 복(福)을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오래 사는 장수의 복은 이제 100세 시대가 도래했으니 적지 않은 사람에게 가능할 것도 같다. 하지만 질병으로 심한 고통을 견뎌야 하거나 경제적으로 몹시 힘든 상태라면 오래 살아도 복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혹은 돈을 많이 번 부자가 가족도 이웃도 모른 척하며 인색하게 살다가 외롭게 생을 마감한다면 이 또한 복 받은 삶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오복이라 해도 다섯 가지가 아니라 복(福)은 서로 엮이는 게 아닌가 싶다. 결국 몇 살까지 살아야 장수의 복을 누렸다할지, 얼마큼 풍족해야 부유함의 복을 받았다 할지, 어찌 살아야 마음 편안한 것인지, 정량적인 기준이나 지표가 있는 지, 복(福)은 온통 하늘에 달려있는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욕망이 충족되어 만족한 사람은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니 복이 많은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산이나 바다 등에서 사는 이들의 삶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심각한 질병의 위기에서, 때로는 파산 후, 혹은 사람에 지쳐서 자연을 찾았다. 결코 편리한 생활도 아니고 넉넉한 생활도 아니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고 여유를 찾아 하나같이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복(福)은 자신에게 닫힌 문보다는 열린 문을 바라보는 긍정적 습관이다. 필요 이상으로 치닫는 마음을 멈출 줄 알고, 소유보다는 공유를 택하는 지혜로움이다. 스스로 복(福)을 짓는 실천행이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너그러움이다. 자연을 찾은 이들은 그 곳에서 깨달았지만 도시 정글에서 사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복(福)을 짓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서로를 응원해보자.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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