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대전블루스’ 대전, 4차 산업혁명 플랫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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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대전블루스’ 대전, 4차 산업혁명 플랫폼으로

양성광 전 국립중앙과학관장

  • 승인 2018-01-01 10:11
  • 수정 2018-01-02 15:50
  • 양성광 전 국립중앙과학관장양성광 전 국립중앙과학관장
양성광 전 관장
양성광 전 관장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기적 소리 슬피 우는 눈물의 플랫폼 무정하게 떠나가는 대전발 영시 오십 분~”

목포행 완행열차가 잠시 정차한 사이 서둘러 가락국수를 사 먹던 조용필의 대전 블루스 추억이 서린 대전역 플랫폼에는 이제 KTX와 SRT가 10여 분마다 한 번씩 사람을 쏟아 내고, 다시 싣고 가락국수를 먹을 새도 없이 서둘러 떠나간다.

예부터 허허벌판에 큰 밭만 있다 하여 한밭(太田)으로 불리던 대전은 1905년 경부선 대전역이 들어서면서 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하였고, 1970년대 이후에는 경부와 호남고속도로의 중심축이 되어 온갖 물자와 사람, 사연까지 실어 나르며 대한민국 산업 발전의 플랫폼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특히, 1978년 대덕연구단지가 준공된 이후 정부와 민간 연구기관이 속속 들어서면서 대전은 대한민국의 압축 성장기를 견인했던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의 허브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은 무역 규모가 세계 8위인, 국내 물류보다는 세계와의 교역이 더 중요한 나라가 되었고, 전국 거점 도시들을 직접 연결하는 고속도로도 많이 건설되어 교통 중심지로서 대전의 역할은 더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시장 환경도 석유화학, 조선과 같은 하드웨어보다는 정보와 아이디어 같은 소프트 파워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 내는 세상으로 변화하였다. 기존의 제조업과 노동시장 구조에 대변혁을 가져올 제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세상의 변화가 우리에겐 위기일까? 아니면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인가?



이 시대는 사람 사이뿐만 아니라 냉장고와 보일러, 자동차와 같은 사물끼리도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서로 소통하는 초연결사회로 특징지어진다는 것을 고려할 때 세계 최고의 인터넷 강국인 대한민국에는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초고속 인터넷망과 와이파이가 잘 깔렸고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저절로 부가 창출되는 것은 아니다. 네트워크상에 데이터와 정보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하더라도 여기에 아이디어와 기술을 결합하여 서비스와 상품으로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이들이 우리의 삶에 편리함을 줄지언정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45개의 연구기관이 입주한 대덕연구개발특구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기술개발의 메카로 자리 잡은 대전에는 최근에 발달한 인공지능 및 정보통신 환경이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왜 그동안에는 애써 개발한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고 장롱 특허라는 비아냥까지 받아 왔을까? 간혹 개발자가 직접 창업에 나서는 예도 있으나, 대부분 기술은 기업에 이전되어 사업화된다.

문제는 기술 공급자와 수요자가 서로의 이상형이 너무 달라 서로 맺어지기 어렵다는 데 있다. 청년들은 취업할 곳이 없고 중소기업은 인재를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기술 사업화를 위해서는 흔히 말하는 죽음의 계곡을 넘어야 하는데 기술 개발자는 좋은 기술이 있으니 와서 가져가라 하고 수요자는 정말 쓸 수 있는지 이쪽 계곡 너머로 보내 보라 하며 양쪽 언덕에서 소리만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답답하기만 하다. 결자해지라고 연구자들이 먼저 시장에서 통할만 한 원천기술과 주변 기술까지 함께 패키지로 개발하여 실용화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공공 섹터에서는 기술이전사무소(TLO), 기술지주회사 등 공공기술 확산창구와 기술보증기금 등 수요 기업을 지원하는 창구들을 각각 운영해 왔는데, 과거 이러한 노력이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은 모든 공공 인프라가 다 자기가 주체가 되어 성급하게 결과를 얻으려고만 하고 남이 구축한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이제는 이미 구축된 이들 인프라를 잘 활용하여 수요와 공급을 제대로 연결해주는 플랫폼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 기술도 필요한 곳으로 흐른다. 요즈음은 인터넷망을 타고 소비자에게 바로 연결되기도 한다. 대덕특구의 연구기관에는 개발된 많은 기술이 잠자고 있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사용처를 찾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가치를 높여 시장을 설레게 하자. 기술이 주인을 만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기술사업화 플랫폼을 깔아 주자. 대전에서 출발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플랫폼을.

 

양성광 전 국립중앙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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