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하고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요란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났는데 시계를 보니 12시를 막 넘어서고 있었다.
"쎄이야?(누구세요?)"
"……….."
다시 또 한 번 "쎄이야?"하니까, 문 좀 열어보라는 여자의 음성이 들려온다.
캄캄하던 마당 쪽에 방안 조명이 새어 나가면서 꾸냥 한 명이 서 있는 게 보인다.
자세히 보니 초저녁에 발안마를 해주던 아가씨였다. 웬일이냐고 물으니, 들어가도 되느냐고 되 묻는다. 이미 그녀의 속내를 읽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
이런 경우를 여러차례 겪어 보았기 때문에 냉정하게 대하는 것이 최상책이다. 안면 몰수하고 문을 닫으려는데 다급하게 "백위안이면 돼요"라는 그녀의 음성은 오히려 듣는 사람이 민망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서글프기까지 하다.
서둘러 벗어놓았던 바지 주머니에서 백위안을 꺼내 손에 들려주고 그만 돌아가라고 타이르듯 말했다. 그냥은 받을 수 없다는 그녀를 돌려보내는 일도 또 한 번 실랑이를 벌여야만 했다.
(이 글을 읽어온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전에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데, 그 귀한 옥체(?)를 단돈 100元에 넘겨 주겠다는 아가씨에게 그 알량한 100元을 주고 달래보내면 될 것을 끝까지 냉정하게 돌려보냈던 일이 두고 두고 나 자신을 질책하고 있었다.)
이튿날은 새벽부터 서둘러 콩국과 만두 두 개로 아침을 때우고 버스종점으로 나갔다. 윈난성(云南省) 시솽반나다이족자치주(서쌍판납태족자치주)의 중심지인 '징훙시(景洪市)'까지 왕래하는 버스가 하루에 네 번 있는데 첫 차가 8시 30분 출발로 되어 있다. 24인승인 버스는 벌써 폐차시켰어야 할 낡은 차체가 보기에도 위험스럽다. 덜커덩거리다 못해 비포장길을 달릴 때에는 혹시 차체가 핵분열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점심식사를 위해 한 번,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두 번 버스가 정차를 했다. 오후 6시가 되어서야 景洪에 도착했다.
징훙시(景洪市)는 윈난성(云南省) 최남단의 관광도시로서 태국, 라오스, 월남, 미얀마 등지와 가장 가까운 도시이기도 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인력거꾼들이 서로 손님을 태우기 위해 아우성이다. 잡상인들도 한 몫 거든다. 겨우 복잡한 종점 분위기에서 벗어났다. 아직도 태양은 지글지글 열기를 내뿜고 있다. 남국의 도시답게 가로수는 온통 야자수 숲이다.
이미 시정부는 퇴근 시간인지라 먼저 숙소를 찾았다. 시정부 위치를 물어본 후 가장 가까운 지역의 호텔을 찾았다. 가장 호화스러워 보이는 호텔에 들어가 하룻밤 숙비를 물으니 무려 880元이라고 한다. (그냥 물어본 것 뿐이라네. 김삿갓 형편에 이런 호사가 필요하겠는가?)
다시 몇 군데를 순회하다가 1박에 60元짜리로 결정하고 여장을 풀었다.
요기를 위해 다시 밖으로 나오니 태국요리집이 많이 보인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태국요리다. 홀도 있고 정원탁자도 보이는 집으로 들어갔다. 정원은 열대 숲을 연상하리만큼 각종 기화요초가 볼만하다. 그 사이사이에 탁자를 놓고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이미 실내는 만원이다. 에어콘이 빵빵하다보니 먼저 홀부터 손님이 자리를 잡는가보다. 메뉴판을 보아도 중국음식 이름은 까막눈일 수밖에 없으니 그림을 보고 시켜야 한다.
야자 열매 안에 볶음밥이 들어있는 그림을 보고 주문했더니 음료수는 무엇으로 하겠느냐고 묻는다. 종류가 하도 많아 주문하기가 쉽지 않다. 코카콜라를 달라고 하니까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듣는다. 뒤늦게서야 아차! 싶었다. 영어발음 그대로가 아닌 커우커 커러라고 해야 중국식 발음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깜빡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음식은 생각보다 맛이 있다. 게다가 배불리 먹고 도합 18元이라니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자주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는 징훙시(景洪市) 거리구경에 나섰다.
징훙시(景洪市) 중심가는 글자 그대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오색 조명에 비치는 길거리 야자수 잎들이 밤바람에 너훌너훌 춤을 추는 듯, 낭만적인 남국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청춘남녀가 쌍쌍이 거리를 메꾸며 사랑으로 충만한 모습들이 아름답기만 하다.
중국에서도 가장 남쪽에 해당되는 이곳. 외국 관광객의 메카라 불리울 만큼 흰둥이, 검둥이, 황색둥이가 어울려 열대지방의 새로운 멋과 문화를 창조해내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꼭 한 번 와 보라고 권유해보고 싶은 낭만의 도시가 아닐 수 없다.
두어 시간 가량 거리를 배회하다가 숙소로 돌아와 지친 몸을 뉘었다.
이튿날 오전 공무원들의 출근시간에 맞춰 여유국(旅遊局)을 찾았다. 도시에 따라 필자가 연결되는 곳이 文化局 또는 旅遊局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여유국장(旅遊局長)을 만나게 되어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국장 비서가 기다리고 있었노라며 반겨준다. 국장 역시 이틀 전에 도착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면서 맘씨 좋은 웃음을 보내준다. 작달막한 키에 40세 전후의 다부진 체구의 소유자였다.
이곳에 와서 무엇을 보고 싶으냐고 묻기에 소수민족 뿌랑족(布朗族)과 지눠족(基?族)을 방문하는 것 외에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이 먼 곳까지 와서 고생이 많다며 격려까지 해준다.
두 곳 중에 어느 곳부터 가는 것이 좋겠는지? 하면서 혼잣말을 하더니 비서를 불러 누군가를 불러오라고 지시한다.
급히 달려온 사나이는 50대 중노인이다.
국장은 그를 가리켜 소수민족 담당부서장이라고 소개를 하며 인사를 시킨다. 둘이서 한참 의논을 하더니 먼저 布朗族을 갔다오고 基?族은 이곳에서 가까운 곳이니 두번 째 행선지로 정하는게 좋겠다고 얘기한다.
그런 후 오늘은 자기와 같이 갈데가 있으니까 이곳에서 하루를 더 묵고 내일 오전에 출발하라고 한다.
소수민족 담당자는 뿌랑족 촌장에게 연락을 해놓겠다면서 돌아갔다. 국장은 자가용 기사를 불러올리더니, 오전에 회의가 길어질 것 같으니 필자를 안내하여 징훙시(景洪市)를 구경시켜주다가 12시쯤 돌아오라고 지시한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배낭을 짊어지려는데 그것은 무겁게 들고 다닐 필요없다며 놓아두고 가란다.
카메라만 둘러메고 홀가분하게 기사를 따라나섰다. 이 기사 녀석은 이후에도 필자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해준 까불이다. 촐랑대고 까부는 20대 초반의 이 청년은 늘 필자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景洪市 이곳 저곳을 둘러본 후에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기사는 태어나서 외국 사람과 처음 장시간 얘기를 나누었다며(중국어가 서툴 때라 필답과 손짓 발짓 수준이지만) 즐거워했다.
국장이 정작 필자를 데려가려고 했던 곳은 승용차로 한 시간 이상이나 달려야 하는 먼 거리였다.
#국장 모친의 생신 잔치에 참석
도심지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기를 한참이 지나서야 별장같은 저택에 당도했다.
뒤늦게 알았지만 그 날은 국장 어머니의 생신 잔치날이었다.
이미 1백 여 명의 남녀노소가 방과 거실, 정원까지 가득 차 먹고 마시며 떠들썩하고 있다.
60대의 귀부인 티가 나는 여인이 국장을 반긴다. 국장이 큰 소리로 좌중을 향해 한국에서 온 작가선생님이라고 필자를 소개하니까 요란한 박수로 환영의 뜻을 보내온다.
이것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중국인들 습관 가운데 결혼식이나 생일 같은 잔칫날에 외국 손님이 오는 것은 큰 행운을 안겨주는 것이라 해서 무척 기뻐한다는 얘기다. 본의 아니게 필자는 잔치날 주인공과 하객들의 환대를 받는 몸이 되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바로 시정부 국장이었고, 친척들 사이에서도 비교적 출세한 인물로 꼽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탓인지 많은 사람들이 국장을 존경하는 자세로 대했고, 국장은 맥주병을 들고 이곳 저곳을 돌며 술잔을 권한다.
술 얘기가 나왔으니 신기한 모습 한가지 빼 놓을 수 없다.
그들이 마시고 있는 술은 모두 맥주 뿐 白酒가 보이지 않는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처음부터 맥주로만 통일시키려 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조금은 이상하게 보였다. 찬 것을 기피하는 이들이어서 그런지 맥주는 뜨뜻미지근했고 그 맛이란 것이 <글세올시다>가 아니라 <영 아니올시다>였다.
여유국장 모친의 생일잔치는 밤 9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워낙 거리가 먼 지역이다보니 손님들이 갈 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다시 시내로 되돌아온 후 국장은 가장 큰 호텔에 필자를 내려 놓았다. 하룻밤 숙박비가 엄청날 터인데 피해갈 방법이 없다. 그러나 걱정도 잠깐, 이미 정부의 이름으로 방이 예약되어 있음을 알고 마음이 놓였다. 방에까지는 들어오지 않고 로비에서 국장은 내일 아침 만나자며 되돌아 갔다.
관광도시답게 으리으리한 호텔이 필자에겐 궁전같이만 보인다. 막상 5층으로 안내된 방은 촌놈 기 죽일만한 것이었다. 방 안에 또 한 개의 방이 있고, 거실은 완전한 사무공간, 욕실은 거짓말 조금 보태어 수영장으로 착각될 정도.
벽 쪽에 붙은 찬장 안에는 양주와 일본 맥주, 독일 맥주, 중국 상표가 붙은 맥주들까지 진열돼 있다. 배낭을 들고 따라온 벨보이가 무엇이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면서, 오늘 밤은 술도 안마도(3층에 있다고 함) 모두 비용이 지불된 상태이므로 얘기만 하면 안내를 하겠다고 한다. OK! 샤워부터 먼저 하고 생각해보자. 필요하면 부를테다. 보이가 나간 후 알맞은 온도로 물이 찰랑찰랑 거리는 욕실로 풍덩.
온 몸의 피로가 일시에 씻겨 나간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잠이 들었다. 욕실에 앉아 잠들어보기는 처음이다.
(다음 주에 계속)
김인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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