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산성에서 내려다본 충주시내/사진=조영연 |
30도 정도로 경사진 산성은, 봉수대가 설치된 정상(497m)을 중심으로 서남쪽을 향해 강변까지 내려오는 좌우 두 산줄기가 Y자의 두 계곡을 감싼 둘레 사오 킬로미터의 포곡식 산성이다. 전체적으로 북고남저에, 평면도상으로는 서남쪽 하단부만 열린, 배부른 타원형에 가깝다. 도로변에서 삼사십 미터 들어가 조성한 성의 주출입구 서문지는 양편 능선의 끝자락이 30m 가량 벌어진 사이에 조성됐다. 서문에서 경사진 안으로 들어갈수록 성안은 내부가 벌어져 배가 불룩한 항아리 형태를 이뤘다. 서향한 내부는 수만 평 정도 상당히 넓어 삼태기 속처럼 양지바르고 아늑하다. 정상에는 직경 20m 정도의 圓形 자연할석 석축 봉수대(혹은 장대지)가 있다.
대림산성 서벽/사진=조영연 |
대림산성 내부/사진=조영연 |
또한 내부의 공간으로 미뤄 상당한 건물과 밭을 갖춰 유사시 다수의 인원이 상주하면서 농성이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고려 때는 남산성인지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충주성에서 70일간 버티면서 항몽전을 전개하여 승리했다는 기록이 있다. 임란시 왜군도 달천강 건너편 길로 우회 탄금대로 진격했다 함은 이 성의 존재를 의식했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성의 최저부 호리병 주둥이처럼 조여진 서쪽 입구에 난 계곡은 자연스레 수구가 되었을 것이며, 서문 바로 앞으로는 3번 국도와 해자 구실을 하는 달천강 수로가 지난다. 이 산성은 영남대로의 경계와 방어가 주임무였지만 곁을 지나는 수로의 존재나 충주읍성의 방어성 내지 치소성 역할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주민들이 전하는 창골, 성안, 피난골이라는 지명은 평상시 군량, 무기 등을 비축해 두고 유사시 충주읍성의 입보처 혹은 치소성으로서의 구실도 무관치 않음을 시사한다. 근처를 통과하는 육로와 수로 방어 등 여러 가지 역사적 임무를 상호 연관 하에 수행했을 것이다.
대림산성 앞 수로/사진=조영연 |
산성의 정상에서는 남쪽 월악산, 소백산맥을 배후로 성 밑을 통과하는 육로와 속리산에서 발원돼 온 달천강은 물론 북쪽으로는 충주 시내 북쪽 탄금대 건너 장미산성까지 시계가 막힘 없이 탁 트인다. 까마득히 굽어보이는 발 아래로 반달 같이 굽어도는 강물과 첩첩한 산줄기들의 모습이 일품이다. 특히 물결 반짝이며 흐르는 석양 무렵의 달천강은 가까이는 아기자기함이요 멀리는 상쾌함 자체다.
조영연 / '시간따라 길따라 다시 밟는 산성과 백제 뒷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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