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녀 고드름에 방울방울 물방울 떨어지면, 양지바른 공터에 하나 둘 아이가 모여들지요. 이런저런 놀이하다 때로는 꿩 몰이도 하지요. 수컷을 장끼라 하고 암컷은 까투리라 부르기도 합니다. 꿩은 날개가 짧아, 높이 날거나 오래날지 못하지요. 서너 명씩 짝지어, 마을 둘러싸고 있는 산모퉁이 몇 군데 올라 소리칩니다. 놀란 꿩이 날아오르지요. 바로 앞산으로 갑니다. 앉지 못하게 또 소리치면 꿩이 우왕좌왕 하지요. 두어 번 옮기면 날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눈 위를 종종걸음으로 달리다 그마저 몰리면 눈 속에 머리를 묻습니다. 자신이 안 보면, 세상 또한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것으로 알지요.
이를 사자성어로 장두로미(藏頭露尾)라 합니다. 진실을 숨기려 하지만 거짓의 실마리가 이미 드러나 보인다는 의미랍니다. 타조도 쫓기다 다급하면 덤불 속에 머리 처박고 숨는답니다. 당연히 몸 전체 가리지 못하지요. 꼬리 드러낸 모습을 형용하는 말이랍니다. 감출 수 없는 진실을 감추려 전전긍긍하는 태도를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지요. '눈 가리고 아웅(姑息之計)',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등도 비슷한 의미로 쓰입니다.
예전엔 선비가 상전에게 받치는 예물로 꿩을 많이 사용했답니다. 이유를 볼까요? 지금은 사육법 발달로 꿩 농장이 많이 있는데요. 원래 야성이 강해, 맛은 좋으나 새장 속에 가둬놓고 길들이기 어려웠다지요. 선비는 꼭 필요한 존재지만 임금이 손아귀에 넣고 함부로 할 수는 없지요. 임금을 바르게 보필하되 굳은 지조로 길들여지지 않겠다는 정신을 담아 폐백을 전했답니다. 선조들은 매사 허투루 행동하지 않았나 봅니다.
2001년부터 세밑에 '올해의 사자성어'라고 교수신문이 발표하여 왔습니다.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 가나 봅니다. 지방단체나 기업, 사회단체도 많이 선정하더군요. 주로 불가나 중국에서 유래된 말을 많이 인용하지요. 한해 정리로 이용하던, 새해 지향점이던 나쁠 게 없겠지요. 기왕 선정하는 것이라면 우리말, 우리글 사용이 더 좋지 않을까합니다. 물론,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촌철살인寸鐵殺人 표현이 사자성어에만 있을까 싶어, 앞에 예를 들어보았습니다. 우리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격언이나 속담, 곱고 순수한 우리말도 찾고, 더 빛낼 수 있지 않나하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올해 선정된 사자성어 살펴보면, 파사현정(破邪顯正)이란 불교용어랍니다. 사악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따른다는 뜻이라지요. 선정한 김교빈 호서대 교수에 의하면, 거짓과 탐욕, 불의와 부정이 판치는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강한 실천의지가 담겼답니다. 내년 한 해, 특히 온갖 사악한 무리들을 몰아내고 옳고 바른 것을 바로 세우는 희망을 담았답니다.
사악한 무리가 누구를 지칭하나요? 자료 살피다 보니, 대부분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는 것 같더군요. 과거, 현재, 미래 모두에 해당한다는 생각입니다.
수차례 언급하는 말이지만, 지금이나 미래는 거짓이 통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누구나 접할 수 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 뉴스라도 작은 의지만 있으면 쉽게 보고 들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구글 번역기 이용해보세요. 엄청난 기술이 필요치 않습니다. 약간의 요령만 터득하면 됩니다. 필자는 외국어 잘 모릅니다. 그럼에도, 미국이나 일본, 중국 신문 보지요. 어느 나라 뉴스고 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습니다. 앱 하나 설치하면, 동시통역도 가능하지요. 이제 대부분 국민들이 그리 한단 말입니다. 세상변화 모르고 설치면 안 되지요. 거짓이 쌓이면 어느 순간 폭발합니다. 눈감아도 세상이 나를 지켜봅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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