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가 아닌 모든 영화는 상상의 산물입니다. 현실과의 거리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하지만요. SF 장르를 빼면 영화는 대개 있을 법한 일에 대한 상상입니다. 이른바 개연성 있는 허구입니다. 현실을 근거로 한 상상이므로, 영화는 설득과 공감의 힘을 지닙니다.
영화의 상상은 꿈과 유사합니다. 꿈 역시 현실과의 관계 안에 존재합니다. 꿈은 욕망을 보여줍니다. 이루거나 도달하고 싶은 것 혹은 회피하거나 외면하고 싶은 욕망이 꿈에 나타납니다. 아울러 꿈은 금기를 넘어서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영화 역시 욕망을 표현하며, 현실 원칙을 넘어 금기를 깨는 장으로 존재합니다. 잠을 통해 나타나는 꿈과 캄캄한 극장에 비취는 영화는 어둠 속 이미지란 면에서도 닮았습니다.
영화 <강철비>는 현실과 너무나 흡사한 상상입니다. 오늘밤이나 내일 뉴스에 나온다 해도 믿어질 만큼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을 제대로 담았습니다. 60년 넘게 분단과 대치 속에 살아온 한국인에게 북한의 위협과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 현실에서 비롯된 꿈은 상반된 둘로 나타납니다. 즉 우리의 소원은 북한과의 통일이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을 주적으로 삼습니다. 혐오하는 대상과의 관계가 도달의 목표이기도 한 기묘한 모순이 영화가 상상하는 내용으로 나타납니다.
남한의 곽철우와 북한의 엄철우. 지혜의 집(哲宇)과 강철 같은 우정(鐵友)으로 뜻은 다릅니다. 하지만 쇠가 비처럼 내리는(鐵雨) 폭력의 상황을 피해야 한다는 입장은 동일합니다. 두 사람의 꿈은 같습니다. 회피의 욕망은 성취의 소망과도 통합니다. 폭력의 상황으로 치닫는 영화의 전개는 관객을 긴장 속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나 간간이 이어지는 두 철우의 소통과 우정은 웃음과 감동을 자아냅니다. 그들을 하나로 묶는 끈은 의외로 소박합니다. 상투적이지만 그것은 가족의 안위에 대한 걱정입니다. 또한 그것은 그들의 꿈입니다. 그리고 평범한 우리들의 꿈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결말은 조금 허망합니다. 그러나 공멸을 면해야 한다는 것은 그 어떤 명분보다 강렬합니다. 분단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 때문에 더 고통스럽다는 영화 속 대사가 잊히지 않습니다. 현실이 꿈을 만들지만, 꿈이 현실을 바꾸기도 합니다. 새해에는 두 철우와 우리의 꿈이 현실에 더 가까워지길 바랍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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