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어요. 나중에 딸 오면 빨으라고 할께요.
35년 미운정 고운정 살아왔는데 지금도 내외(內外)를 한단 말이오? 이리 내어요.
그래도, 아이 참내…!
빼앗다시피하여 속옷을 움켜쥐고 병원복도 끝 세탁실로 갔다
철없던 지난 35년의 회한의 눈물, 빨래에 듬쁙담아 빡빡 문질렀다.
뚝 뚝 떨어지는 수돗물따라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간 지저분한 남편 속옷을 빨며 얼마나 원망을 하였을까?
그래도 군말없이 아침이면 뽀오얀 속옷 한 벌 슬쩍 밀어놓고는 "속옷 갈아입으세요?" 문 닫고 나가던 사랑이
35년 부부로 살을 섞고 살면서 지금도 속옷을 남편한테 보여주지 않는 수줍음 가득한 사랑이는 역시 천상천하(天上天下)정숙하며 단아한 여인이라오!
미안하오 미안하오
이 철없고 멋없는 사내를 용서하시오!
- 詩 '속옷을 빨며' 全文
평소 깔끔하고 정갈한 사랑이는 병실에 있으며 2∼3일 간격으로 환자복과 속옷을 갈아입었다. 갈아입은 속옷을 빨기 위하여 달라고 했더니 눈을 흘기며 안준다. 딸에게 준다는 속옷을 실랑이 끝에 빼앗아 병원 세탁실로 갔다.
수돗물을 틀어놓고 서투르게 비누칠을 하며 속옷을 빨기 시작했다. 35년동안 남편 속옷을 군말없이 빨아준 속옷을 난생처음 직접 손빨래를 하였다. 누가 들어올세라? 문을 잠그고 빡빡 문질러댔다. 신혼초 시골 우물가 샘터에서 찬물에 손을 호호? 불며 남편 속옷을 빨았을 어린 스무살 단발머리 사랑이를 생각하며 속옷을 빨았다.
다정하게 손을 한 번 잡아주기를 했나? 어디 부부가 나란히 여행을 제대로 하기를 했나? 지난시절 사랑이와 아이들을 방 안에 놔두고 주유천하(酒遊天下) 보헤미안(Bohemian)으로 떠돌며 가정보다는 바깥으로 떠돌던 작가.
얕으막한 돈으로 세 자녀 낳아 가르치고 살림하느라고 쩡말라 기미까지 서린 키 작은 사랑이. 병실에 누워 입가에 침을 흘리며 잠자는 아픈 사랑이를 보며 창가를 보며 눈물을 적시었다.
지난 10월 26일 밤 9시. 집에서 함께 다정하게 저녁식사를 마친 사랑이가 화장실에 갔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여보 잠깐 와 봐요? 내 몸이 이상해요…?"
문득 불안한 생각에 화장실 문을 급히 열었다. 사랑이는 벌써 한쪽으로 고개를 젖하고 음식물을 토하며 눈동자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평소 심장이 약하기에 청심환을 생각하고 찾았다. 그러는 사이 사랑이는 아예 거실바닥에 누워 사지를 떨어트리고 눈동자 초점을 잃어간다. 긴박한 순간에 생각을 바꾸었다. 청심환 투약이 문제가 아니라 병원 응급실을 생각했다.
집 앞에 주차되어 있는 승용차 시동을 걸어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작은 체구이지만 막상 사지가 늘어지니 혼자의 힘으로 안되어 이웃집의 도움을 받아 사랑이를 차에 옮겨 싣고 가까운 병원 허겁지겁 응급실로 달렸다. 응급실에 도착 의료진의 응급조치와 함께 검사를 마친 의사가 말한다.
"뇌출혈 입니다. 뇌압상승에 의한 지주막하 출혈이니 급히 수술을 해야 삽니다."
"아하, 그러세요…? 빨리 수술을 하시어 우리 사랑이를 살려주세요. 제발 …?"
응급실에서 C/T와 MRA 검사 등 수시로 각종 검사와 투약을 거치면서 중환자실에서 20여일간 무의식 상태에서 사경을 헤맸다. 중환자실 입구에서 세 자녀와 사위, 며느리 등 7명 가족은 밤을 지새우며 긴장과 불안감에 눈시울이 마를 시간이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친척과 인척 주변 분들이 달려와 위로를 하며 같이 슬퍼했다.
병원 신경외과 의료진의 뛰어난 대처로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깨어나 일반병실을 거쳐 재활의학과로 옮겼다. 이곳에서 신체재활과 인지치료, 언어재활치료를 부지런히 받았다. 아! 순간순간 어둡고 긴 터널을 슬픔의 손수건을 적시며 산과 강을 건너 입원 58일, 12월 22일 퇴원하여 사랑이는 따뜻한 가족의 품에 안겨 집으로 오게 되었다.
게티 이미지 뱅크 |
그간 사랑이의 소생치료를 위하여 친적과 인척 주변의 많은 분들의 염려와 기도에 대하여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해외에서 까지 걱정을 많이 해주시어 더없이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시작하는 사랑이의 삶, 58일만에 찾은 소중한 제2의 인생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갑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김우영 작가·대전중구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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