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재 표석/사진=조영연 |
덕주산성은 하늘재 너머 지릅재와 갈라지는 미륵리에서 우측 송계계곡 월악산 덕주골에 있으며 영봉을 위시한 동북의 거대한 암벽이 후방을 이루는 둘레 약 15km 가량(증보문헌비고에 '州 동쪽45리에 있고 석축으로 둘레가 32,670자. 우물 하나, 今廢'<덕주산성. 한국성곽학회편. 충청북도. 2008 재인용>)으로 조성한 백제시대의 고성이었다가 조선초 전부터 폐성된 것으로 본다. 현재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성벽 일부와 동문지 하나만 복원돼 있는 상태다.
문경 산북으로부터 충주로 넘어가는 계립령, 하늘재는 오늘날 그 호젓함으로 옛날을 다시 고개가 험하고 힘들다는 선입견은 전혀 예상 밖으로 평탄하고 널찍하다. 일깨워 준다. 돌부리 채일 일도 어깨를 부딛칠 일도 없다. 큰 내도 없으니 바람소리, 새소리 외에 물소리조차 방해하지 않는다. 그저 다박다박 걷기만 하면 되는 길이다. 나무냄새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석불의 인자한 얼굴을 만난다. 옛적 나그네를 맞아주던 주막 미륵원이 길가에 있다. 신라군, 고구려군의 기마병들의 요란한 말발굽 메아리도 아련하다
주변의 고즈넉한 자연 속에 의젓이 자리한 미륵사 석불은 지금은 돌담에 갇혀 상반신이 담밖으로 빼꼼히 드러났지만 과거에는 궁륭상 석굴 속에 자리잡았으리라. 그리고서 새로운 밝은 미래세상이 열리기를 기원하면서 천년 넘게 그 모습이 변하지 않은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의 가슴 속에는 허무하게 나라를 잃고 정토를 찾아 떠나던 마의태자 오누이의 하염없는 눈물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 이후론 그의 입은 더욱 닫혀지고 다만 오가는 이들만이 그것을 읽을 뿐이다. 서울과 영남을 오가던 무심한 나그네들만이 미륵불 옆 미륵원에서 절밥으로 허기를 잊고 몸을 녹이며 잠시 쉬었다 가곤 했다.
조영연 / '시간따라 길따라 다시 밟는 산성과 백제 뒷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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