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 초상 |
무슨 말일까? '현자(賢者)를 바른 위(位)에 앉히고, 능자(能者)를 바른 직(職)에 앉힌다.'는 이 말.
'치욕을 싫어한다면, 덕행(德行)을 귀하게 여기고 지식인을 존중하여, 덕행을 구비한 현자를 있어야만 할 자리에 있게 하고, 능력 있는 지식인이 적합한 직무를 담당케 하는 것, 그 이상의 시급한 처방은 없다.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나 사법' 행정의 고위 공직자 임용을 보면 이러한 문제가 얼마나 절실한 과제상황인지 통탄할 노릇이다. 오로지 권력자의 개인적 인맥으로 인한 뒷거래가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장영실은 경상도 동래현에서 관기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래서 그는 태어날 때부터 천민(賤民)이기에 높은 권력을 가진 인맥도 없고 뒷거래할 돈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군주를 잘 만났고 심안(心眼)을 가진 목민관을 만났다. 관청의 노비로 있으면서도 시간만 나면 책을 읽고 연구하여 영남 지방에 가뭄이 들었을 때 해결한 공으로 동래 현감으로부터 신임을 받기 시작했다.
1423년(세종 5년), '도천법'으로 인재를 뽑을 때, 동래 현감과 경상도 관찰사의 추천으로 세종대왕에게 천거되어 상의원 별좌가 되었으며, 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나 수많은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현감이나 경상도 관찰사가 뇌물을 밝히지 않는 인물이었기에 가능 했던 것이고, 세종 임금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재를 등용할 때 왜 뒷거래 가 없었으며 거물급 압력이 없겠는가? 하지만 장영실의 인재 등용은 백락일고(伯樂一顧)의 고사가 이에 딱 들어맞는다 할 것이다.
어디 장영실 뿐이랴.
후한(後漢) 말엽, 유비(劉備)는 관우(關羽), 장비(張飛)와 의형제를 맺고 한실(漢室)의 부흥을 위해 유능한 참모의 필요성을 느끼고 남양(南陽)에 은거하는 제갈량(諸葛亮)의 존재를 알게 되자 관우, 장비와 함께 예물을 싣고 양양(襄陽)에 있는 그의 초가집을 세 번이나 방문한 끝에 그를 군사(軍師)로 모실 수가 있었다. 이때 제갈량은 27세, 유비는 47세였다.
능력있는 인재 등용을 위해 무엇인들 못하랴?
왜군을 맞아 승전을 거듭했던 이순신은 모함을 받아 서울로 압송되고 인맥이 좋은 원균 장군에게 자리를 물려주게 된 결과가 어찌 되었는가?
史記, 滑稽列傳(골계열전)에보면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위왕(威王) 이야기가 나온다. 위왕은 30살에 즉위하여 지방 순시를 잘 했다.
많은 신하를 이끌고 국내 순시에 나서 즉묵(卽墨:산동성)에 갔더니 논밭은 잘 경작되어 작황도 순조로우며, 백성의 생활도 풍요로웠다. 왕은 즉묵의 대부를 불러, "이만큼 잘 다스려지고 있는데, 그대를 비난하는 소리가 높은 것은 내 측근에게 뇌물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고 칭찬하며, 즉시 1만호의 봉토(封土)를 주었다.
다음에는 '아(阿)'지방으로 갔다. '아(阿)'지방은 논밭이 황폐해져 있었고 백성들의 얼굴도 어두웠다. 왕이 대부를 불러내어 꾸짖었다. "이런 모양인데도 그대를 칭찬하는 소리가 내 귀에 따갑게 들린 것은 측근에게 뇌물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 분명하다."
대궐로 돌아온 위왕은 전국 72현의 현령을 소집하고 신상필벌의 평정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아(阿)'의 대부는 특히 악질이라 하여 솥에 삶아 죽이는 팽형(烹刑)에 처하고 그를 추천한 자도 같은 죄라 하여 처단했다.
관리를 등용함에 있어서 우선순위로 해야 할 것이 그의 인품과 능력일 것이다.
내게 충성을 바친 인물이기에, 인품이나 능력을 뒤로 하고, 나에게 뇌물을 바친 자이기에 그를 천거하여 담당자에게 압력을 넣는다면 그 피해는 곧바로 백성들에게 가는 법. 옛날에는 배우지 못했고 정보를 알려주는 인터넷도, 스마트 폰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다르다. 누가 인사권에 개입하여 누구를 밀었는지 임용도 되기 전에 세상에 떠돈다. 그러니 코드보다 능력과 기준에 따라 인재를 등용해야 할 것이다.
국민을 위하는 길이 곧 나를 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갑(甲)의 행세를 하려고 하는 자들이여! 을(乙)에 속하여 울분을 터뜨리는 백성들이 그대들을 어찌 보고 있는지 뒤를 돌아다보고 민심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그대들을 위한 충고인 것이다.
김용복 / 극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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