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연 우송대 교양교육원 초빙교수 |
십대들의 승리를 뜻하는 이름의 아이돌 그룹 H.O.T.의 성공은 사실상 그들을 만들어낸 어른들의 승리를 증명한 사례였다. 데뷔곡 [전사의 후예]에는 학교폭력에 저항하는 사회비판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지만, 그것은 마치 명문대 수시 입학을 위해 국어 선생님이 대신 써준 글로 백일장에서 상을 받는 일과 비슷한 것이었다.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다며 스스로 아이돌이 된 서태지와는 존재방식부터가 달랐고, 그 차이가 세대문화의 상징성을 가르는 결정적 부분이기도 했다. 기획사가 짜준 시간표대로 공부하고 연습해서 데뷔하는 스타 탄생의 신호탄. 어느 군소 기획사의 7년차 아이돌 연습생과 노량진 학원가에 사는 공시 장수생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총알 막는 '방탄소년단'은 팬클럽 아미(ARMY, 군대)와 함께한다. 세계대전과 냉전체제가 끝났어도. "되고파, 너의 오빠. 너의 사랑이 난 너무 고파". 거친 [상남자]들이 세상에 대고 외치는 메시지는 심플하다. 수시 입학을 위한 백일장 대리응모보단 낫다는 생각도 든다. 어찌됐건 사랑받고 싶다는 사랑스러운 고백이 아닌가. [전사의 후예]의 후배들은 너만을 위해, 다시 말해 소비자만을 위해 [으르렁] 난폭해지는 늑대로 변신했다. "나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 대".
야수의 몸동작을 닮은 칼군무가 절도있게 남성성을 과시하는 내내, 화려한 의상과 스모키 메이크업이 조명을 받아 빛난다. 그들은 가슴과 어깨를 위협적으로 건들거리면서도 순정만화 캐릭터만큼이나 예쁜 얼굴을 하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테스토스테론을 드러내며 역동적인 춤을 선보이는 소년들이 수두룩하게 등장하지만, 그토록이나 강렬한 다이나믹 월드를 보면서도 가끔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지루함을 느낀다. 정말로 통제되지 않는 젊음은, 통제되지 않는 젊음을 표현할 자격을 얻지 못하는 법이다.
다른 전사 이야기를 해보자. 키보드 워리어(warrior, 전사)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 <잉투기>는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 적절한 영화적 예시라 할 수 있다. 디시인사이드의 격투 갤러리에서 활동하던 '칡콩팥'은 키보드 배틀 끝에 '젖존슨'과 '현피뜨게' 되는데, 현피란 현실 PK(Player Killing)의 줄임말이며 게임에서 유래된 신조어로 웹 상에서의 다툼이 실제 싸움이나 심각한 물리적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를 일컫는다. '칡콩팥'이 '젖존슨'에게 기습 폭행 당하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찍혔고 그게 인터넷에 퍼져 조롱거리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그는 복수심을 불태우는 한편, 안면 타격 공포증에 시달린다. 이 영화에는 2010년대를 살아가는 젊음의 세대적 자화상이 다각도로 그려져 있다.
여기서 '칡콩팥'의 경쟁적 닮은꼴 '젖존슨'이, 망한 아이돌 출신으로 설정된 점은 제법 의미심장하다. 아이돌 스타는 TV 속 워리어다. 공격적인 몸놀림을 춤이라는 형식을 통해 소비자의 취향에 맞게 매끈하게 제련해서 보여준다. 춤도 무술처럼 일정한 근력과 운동신경을 필요로 한다. 오늘날 대로변에서 아킬레스와 헥토르처럼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민폐형 범죄자가 될 뿐이지만, 그 삶을 흉내내고 복제함으로써 성공할 수도 있게 되었다.
당신에게 영웅전사의 호승심이 있는가. 세련된 미모, 인내와 근성, 체력, 매력적인 스토리를 지닌 전사의 후예로서 그것을 춤추고 연기하거나. 인터넷 인정투쟁에 열올리는 키보드 워리어가 되어 전에 없던 '우리들의 찌질한 영웅'으로서 새 길을 걷거나. 선택지는 둘 중 하나, 둘 사이 어딘가다. 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송지연 우송대 교양교육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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