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코를 쑥 빠뜨리게 한 닭개장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코를 쑥 빠뜨리게 한 닭개장

  • 승인 2017-12-15 08:00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닭개장 1
저번에 금산 갔다 오다 드디어 발견했다. 버스 타고 지나다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닭계장'(맞춤법상 닭개장이 맞다)이라고 쓰인 간판이 얼핏 눈에 뜨였다. 깜박깜박 졸다가 잠이 확 달아났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이렇게 얘기하면 닭개장 못 먹고 죽은 조상이 있냐고 물으시겠지만 오래 전부터 닭개장이 먹고 싶어서 '수소문'하던 중이었다.

휴일에 틈만 나면 중앙시장에 간다. 중앙시장은 대전에서 규모가 제일 큰 시장인지라 구경거리가 많다. 먹을 것도 수두룩하다. 어느새 떡볶이, 호떡, 부침개 파는 노점도 생겨 그 구역은 그야말로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식당도 즐비하다. 보신탕, 설렁탕, 냉면, 칼국수, 중국집 등 만만한 맛집이 줄을 섰다. 그런데 닭개장 파는 식당은 없다. 언젠가 시장 먹자골목을 어슬렁거리다 닭내장탕집을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식당 입구에 서 있는 주인 아저씨한테 혹시 닭개장은 안 파냐고 물으니까 그런 건 없다며 훽 들어가 버리더란 말이다. '냉혹혀!' 아, 닭개장이 뭐란 말이냐. 먹을 수 없으면 더 간절해 지는 법. 흡사 이수일이 마음을 줄듯 말듯 하는 심순애 앞에서 오금을 못 쓰는 형국이었다. 닭개장! 꼭 먹고 말겠어.

지난 주말 오전 보문산 등산 후 부사동 쪽으로 갔다. 그때 버스에서 봤을 때 부사동 못미쳐 석교동 쯤으로 짐작해 금산 가는 방향의 대로를 따라 걸었다. 구름 한점 없는 쾌청한 날인데도 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할머니의 볼이 빨갰다. 장갑, 목도리도 안 하고 어딜 가시는지 원. 마스크, 장갑, 목도리로 중무장한 내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간판을 눈여겨 보면서 걸었다. 정확히 어디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칫 못보고 지나치면 헤매기 십상이다. 꽤 많이 걸었다. 석교동을 지나 옥계동까지 왔는데, 이러다 삼천포로 빠지는 거 아닐까. 산에 갔다 왔기 때문에 벌써부터 뱃속에선 화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1시가 다 되는데 '닭계장'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 아무래도 닭이 날개가 돋쳐 날아간 낌새다. 지친 발을 끌며 오토바이 가게로 들어가 주인한테 물어봤다. "조오기 급행버스 2번 종점에 있는 거 같은데요. 쫌만 내려가면 돼요."

'금산 황기 닭계장'. 자그마한 식당이었다. 동네 주민인 듯한 아저씨들이 밥 먹으며 왁자지껄 떠들어 식당 안은 열기로 훈훈했다. 닭개장만 하는 게 아니었다. 닭곰탕과 다른 메뉴도 몇 개나 됐다. 두말없이 닭개장을 시켰다. 닭개장이 나오자 감격스러워 나도 모르게 눈이 뚱그래졌다.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흔한 음식 같은데 밖에서는 이제야 먹어 보는 것이다. 닭보다 훨씬 비싼 게 소고긴데 육개장집은 많고 닭개장 파는 식당은 도무지 볼 수가 없다. 사람들이 육개장을 선호해서 일까. 닭고기를 더 좋아하는 나로선 아쉬울 따름이다. 먼저 뜨끈한 빠알간 국물을 떠먹었다. 칼칼하고 담백했다. 여느 육개장처럼 고사리, 숙주, 대파, 당면, 토란줄기에다 쪽쪽 찢은 닭고기가 들어갔다. 육개장에서 맛볼 수 있는 느끼함이 없고 시원했다. 밥 한 공기를 말아 후루룩 후루룩 먹었다. 추운 데 있다 들어와 뜨거운 김을 마셔서인지 정신없이 콧물이 나왔다. 훌쩍 쩝쩝 훌쩍 쩝쩝. 코 푼 휴지가 쌓여갔다.



수더분하고 표정이 온화한 주인은 인천에 살다 2년 전에 대전에 왔다. 인천에선 백반집을 했단다. 친정이 금산이라 금산에서 가까운 옥계동에 식당을 차렸다고 했다. 올해 나이가 60인 주인은 나이를 먹으니까 어릴 적 살던 고향으로 오고 싶더란다. 갈 수 있는 고향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총각김치를 베어 먹으며 반찬이 맛깔스러운 게 아주머니 손끝이 야무진 것 같다고 상찬했다. "김 부각도 먹어봐요. 이 반찬들 다 내가 한 거예요. 딴 데서 사오는 게 아녀요." 주인은 배시시 웃으며 반찬 그릇을 내 앞에 디밀어 놓았다. 도톰한 계란말이도 맛있고 김치전도 꿀맛이었다. 식당 음식은 대개 좀 짜기 마련인데 반찬이 슴슴해서 입맛에 딱 맞았다. 입에선 열락을 느꼈지만 위장이 약한 탓인지 저녁에 설사를 했다. 닭개장에 들어간 고춧가루가 좀 매웠던 모양이다.

어릴 적 먹은 고기는 그나마 닭고기였다. 집에서 닭을 키웠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주 먹진 못했다. 식구들 생일날에나 먹는 닭미역국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노오란 기름이 동동 뜬 뽀얀 국물은 생각만 해도 입 안에 침이 고인다. A4 용지만한 공간에서 사료만 먹고 자란 지금의 닭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 물론 추억의 맛도 빼놓을 수 없을 터다. 다음엔 닭곰탕을 먹으러 가야겠다. 오래 전 먹은 그 맛이 나려나. 아 참, '닭계장'을 '닭개장'으로 바로잡는 임무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놈의 직업병이 깊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KakaoTalk_20171214_135208977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