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희 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
지난 8일 대전시립합창단 제136회 정기연주회가 크리스토프 지베르트 객원지휘로 펼쳐졌다. '슈베르티아데'란 제목으로 꾸며진 이번 연주는 모두 슈베르트 작품으로만 구성돼 평소 듣기 힘든 다양한 색깔의 슈베르트 합창곡을 진지하게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 이는 본디 슈베르트를 중심에 둔 문학과 음악이 넘치는 사적인 살롱모임을 일컫는다. 슈베르트 친구 모리츠 폰 슈빈트가 그린 그림을 보면, 슈베르트는 피아노를 치고 성악가 친구 요한 미하엘 포글은 편안한 자세로 노래를 부르고 있으며 주변 다수의 여성과 남성 역시 느긋하게 음악을 즐기고 있다. 즉 슈베르티아데는 예술을 자유롭게 논하는 물리적 공간이자 슈베르트와 관련된 예술적 영감이 넘치는 특정 음악회를 지칭한다. 이러한 모임을 통해 슈베르트는 시의 분위기와 상황을 성악, 피아노 반주와 완벽하게 일치시키며 시에 내재된 정서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기에 대전시립합창단의 슈베르티아데는 슈베르트 음악이 지닌 예술적 감흥을 피아노와 합창을 통해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가 연주의 관건이었다.
우선 태양을 찬양하는 태양에게로 첫 곡을 힘차게 시작한 합창단은 전반부의 곤돌라의 사공, 그리움, 밤의 빛, 낮의 장엄함, 그리고 후반부의 자연에서의 신, 달빛 등 낭만적인 자연과 깊은 시적 감성을 지닌 작품으로 관객을 이끌었다. 곡에 따라 혼성합창, 남성합창, 여성합창, 합창과 독창으로 배치했기에 다채로운 음색으로 슈베르트 합창곡을 심도 있게 들을 수 있음은 매우 유익한 경험이었다.
반면 이번 연주는 기본에 충실한 연주력을 보였지만 세세한 음악적 완성도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무르익은 익숙함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았기에 피아노 반주와 슈베르트 합창에서 요구하는 정교한 음악적 표현이 즉각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슈베르트 합창 음악회가 아닌 슈베르티아데라는 제목에 걸맞은 기획구성이라고 하기엔 다소 미흡했다. 예컨대 전후반부에 한 번씩 등장한 피아노 연주는 무난했지만 슈베르트 음악 특유의 낭만적 감흥이 예리하게 전달되지 못했으며 연주시간이 지나치게 길어 주객이 전도된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화려한 효과도 없으면서 정확한 가사 표현도 까다로운 슈베르트 합창곡으로만 음악회를 시도한 것은 분명 진지한 레퍼토리 확대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시도로 보인다. 단지 시와 음악의 관계를 조명하며 좀 더 참신하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콘텐츠가 담겨있었다면 지금 이 순간 대전에서 벌어진 진정한 슈베르티아데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