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를 살다간 남정네들은 누구나 그를 흠모하며 사랑하고 싶은 여성으로서의 잣대를 삼았으리라. 아름다워서라고? 물론 그는 아름다웠다고 한다. 가무(歌舞)를 잘하는 여인네라 그렇다고? 그도 물론 그렇다. 그러나 보자. 그는 아름다움과 가무(歌舞)의 끼를 한 몸에 지니고 있으면서 그가 입 벌려 하는 말에는 지적인 '멋'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는 말 속에 '멋'이 깃들어 있다고? 그렇다. 멋이다. 아무도 내 뱉을 수도 없고 가꾸어서도 될 수 없는 멋. 그래서 학문이 높고 돈푼이나 있는 권문세도가라면 침을 질질 흘리지 않을 수 없다.
구차스럽게 서경덕이나 벽계수에 얽힌 이야기는 하지 않으련다. 너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자칫 독자들을 식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진이는 매력적인 여성의 상징으로 세대를 달리하면서 늘 새로운 여인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현재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과거에는 서경덕, 벽계수 같은 인물에 의해 사랑 받았고 현대로 와서는 필자를 비롯해 전경린, 김탁환, 최인호 등이 그를 택해 캐릭터로 삼았다. 그리고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사람. 소세양(蘇世讓)!
소세양(蘇世讓)은 형조 호조를 거쳐 이조판서 우찬성까지 역임했던 사람이다. 송설체(松雪體)의 대가였고, 문장에서도 뛰어난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그는 양관대제학(梁冠大提學)에 올랐던 당대의 걸출한 유학자요, 명나라 사신과의 빈번한 접촉으로 시인으로서의 빛나는 명성을 국내는 물론 중국에까지 널리 떨친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룡리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그러나 그도 남정네.
이성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지위라면 왜 주변에 여인네들이 없으랴. 그러나 그가 사랑하고 싶은 여인은 당대의 가인(佳人) 황진이.
소세양은 조선 최대 학자요 선비인 동시에 높은 관직에 있던 현역이었다. 벼슬 높고 학문이 풍부했던 그는 미인의 기준을 오발선빈(烏髮蟬? )이나 운계무환(雲?霧?)에 두지 않았다. 그리고 아미청대(蛾眉靑黛)한 미녀나 명모류면(明眸流眄)한 여인은 관심 밖이었다. 왜냐하면 그런 미인은 얼마든지 꾸며서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자존심 강한 소세인이 마음에 둔 여인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 기준이야 말로 인위적으로 꾸밀 수 없는 미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황진이야말로 소세인의 기준에 딱 들어맞았던 것이다.
그러니 섣불리 고백했다간 망신살이 뻗쳐 소(蘇)씨 가문에 분(糞)칠만 할 판. 그래서 머리를 짜내어 그에게 고백의 편지를 썼다.
겉봉을 뜯어본 황진이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榴'[榴-석류나무 류] 한 글자만 쓰여 있기 때문이다. 얼마를 생각에 잠겼던 황진이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답장을 써서 심부름꾼의 손에 쥐어 돌려보냈다.
'漁'['漁'-고기 잡을 어]자만 적어 보냈다. 적되 소세양이 보낸 글자 크기보다 더 크게 적어 보냈다.
한번 보자. 이들이 주고받은 글자에 어떤 뜻이 숨어있는가를.
'榴'를 독음하여 한자로 읽으면 '碩儒那無遊' 석유(류)나무 유(류)'가 되고, 이 문장의 뜻을 해석하면 ''큰선비인 내가 여기 있는데, 어찌 놀지 않고 돌아가려하느냐'가 된다.
황진이의 답은 어떤가?
'漁'자라는 한 글자가 답이다.
독음하면 '고기 잡을 어(漁)자'자다. '高妓自不語'. 해석해보자. '품위가 높은 기생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네 유혹에 함부로 응대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이 대답을 듣게 된 소세양 심정이 어땠을까? 아름다운 미모에, 가무에, 뛰어난 학문까지 겸비한 여인네를 그냥 놓칠 수는 없었다. 그것이 남정네들의 본능이다. 그래서 어찌 됐나?
모든 정성을 다 했을 것이다. 각종 선물은 물론 금은보화며 옥지환도 바쳤을 것이다. 그 결과 한 달간의 계약 결혼이 이뤄졌다고 전한다. 여기서 필자가 훈수 좀 두고 넘어가야겠다. 맘에 드는 여인을 꼬드기려는 남정네들은 애써서 그 여인에게 다가가려 하지 말아야 한다. 다가가려하면 더 멀리 달아나는 척 하는 것이 여인네 심보인 것이다. 관심을 두되 다가가지는 말아야 맘에 둔 여인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필자가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첩보(諜報)지 정보(情報)는 아니다. 첩보, 요즘 카톡을 통해서 오가는 글들은 60%이상이 첩보라 한다. 언론에 글 쓰는 사람들은 첩보를 정보인양 글 썼다가는 큰코다친다. 그러니 엉뚱한 소리 그만하고 결론을 맺자.
그리고 그들은 헤어져 서간(書簡)만 오고갔다.
'달빛 아래 소나무만이 푸르르고 / 눈에 덮인 한 포기 꽃들은 고개를 떨구었구나 ~ 내일 아침 그녀를 보내고 나면 / 슬픔은 비가 되어 나의 몸을 짓누르리' - 소세양-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굴 생각하시나. / 잠이 들면 무슨 꿈을 꾸시나. ~ 바쁠 때 나를 돌아보라 하면 괴롭나요. 반갑나요 /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요' -황진이-
필자도 남정네다. 고백 한번 해보자.
정말 있을까?
김용복
정말 있을까? / 어디에 있을까?
힘들 때 / 기댈 수 있는 버팀목.
지칠 때 / 쉴 수 있는 안식처
정말 있을까? / 어디에 있을까?
힘든 세상 / 힘들다고 / 기댈 수 있는 사람
편안한 사람 / 정말 있을까. / 어느 곳에 있을까?
-2017년 12월 11일-
어디 이런 여인 없을까? 이렇게 애틋한 사랑 전해 줄 여인 어디에도 없을까?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헤어진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한다'고 외쳐대던 '황진이'나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자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 닢 곧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라고 하소연 하던 '홍랑' 같은 여인 어디에 없을까?-
주(註)
대전 시민대 '재미있는 고사성어 반 (강사: 장상현) 강의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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