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낙준 주교 |
사람들은 누구나 12월이 되면 지난 한 해 동안 자신이 어떻게 지냈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삶이 잘 안 풀린다고 문제를 직면하기 보다는 자기 성격을 과장되게 표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민망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고, 잘살고 있다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 실패자 내지 패배자가 된 속사람 모습을 보아 남모르게 울었던 기억이 나는 12월입니다. 올 한해를 되돌아보니 사회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그에 맞춰 살기 참으로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합니다. 그런 와중에 모든 것을 경제적 잣대로 들이대는 사회에서 사랑이라는 잣대로 살 수 있는 사회를 열어보려고 무진장 애를 쓰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우리시대의 성직자들이 그들입니다. 저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경건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이 바로 성직자라고 여깁니다.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크리스천 작가로 평가받는 모니카 펄롱은 웨이크교구 사제 회의에서 발표한 '오늘날 성직자의 역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성직자들에게 원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나는 그들이 스스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사람이길 바라며, 그리하여 사회적 지위, 성공, 돈에 대한 생각에 이의를 제기해 주시길 바라며, 또한 이런 마약과 같은 것들로부터 좀 더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길 바랍니다.
내가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의 동시대 극소수는 하고 있는 것을, 그들은 마땅히 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죽어라 힘들게 일해야 된다면 거부하시고(노동은 사회적 지위보다 더 미묘한 마약입니다), 나와 같은 평신도(비전문가)와 사납게 경쟁하지 말아 주세요. 나는 그들이 해야만 되는 덕목, 즉 독서하고, 앉아서 휴식하고, 생각하는 것을 확실하게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들이 공(空)을 직면할 수 있고, 마음의 표면이 채워지지 않을 때 흔히 사람을 공격하는 우울증에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들이 이 외로움을 직면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원하며, 그것이 얼마나 유익한지 깨우친 사람이기를 원합니다. 나는 그들이 기도의 문제에 당면해 있는 사람이기를 원합니다. 나는 그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이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평온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거의 상실한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성직자들로부터 그런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이 행동하지 못하는 성직자들로 인하여 때때로 성직자를 단지 의복과 직위로서 정의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우리시대의 성직자들은 예술가처럼 창조적이고 가슴에 용광로가 있는 듯이 뜨거운 열정으로 삶을 대하고 신비스러운 움직임으로 삶을 그려가고 있는 사람들이라 여깁니다. 미래의 날을 앞당겨 보다 나은 인간사회를 세워 내는 성직자들의 삶은 평범한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고 인생길의 안내자가 될 것입니다. 욕설을 내뱉고 싶은 상황에서도 껴안아주고 배제할 상황에서도 함께 하는 사람들임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성직자들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많은 일들을 하기 보다는 성직자 존재 그 자체로 평범한 사람들이 삶의 힘을 얻게 되길 바랍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성직자들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이었으면 합니다.
유낙준 주교 성공회 대전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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