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리뷰] 영화 타이타닉과 계산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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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리뷰] 영화 타이타닉과 계산과학

이승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 승인 2017-12-11 14:20
  • 신문게재 2017-12-11 22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이승미
이승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영화 '타이타닉'에서 배가 바다를 가를 때 흩어지는 기포, '라푼젤'의 출렁이는 머리카락, '겨울왕국' 엘사가 밟는 눈. 모두 실사가 아닌 컴퓨터 그래픽이다. 그런데도 실제 같거나 오히려 더 효과적이다. ('라푼젤'보다 더 머릿결이 좋은 여배우가 과연 현실에 있을까?) 이런 실감나는 화면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 바로 계산과학 덕분이다. '타이타닉' 개봉 당시 몇몇 계산과학자들은 오직 포말이 잘 구현되었는지 확인하려고 영화를 관람했다. 혹시 타이타닉이 바다 위를 지나는 단순한 장면에서 엉뚱하게 감탄사를 연발하는 관객이 있었다면 그 사람이 바로 계산과학자였을 확률이 크다. 바닷물 한 방울 당 얼마나 복잡한 수학계산이 들어가 있을지 상상하며 감탄하는 사람들이라니!

계산과학이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과학이나 공학 문제를 푸는 학문이다. 다리나 건물 같은 큰 구조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 하나까지도 계산과학 연구대상이다. 무엇보다 계산과학은 연구 대상의 크기에 따라 각기 다른 계산방법론을 적용해야 한다. 건설하게 될 다리가 잘 견딜지 알려면 고전역학 시뮬레이션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자들의 움직임을 알려면 양자역학의 방법론이 필요하다. 내 전공은 10억분의 1미터인 나노미터(nm) 크기의 물질 연구에 적합한 양자계산과학이다.

신기하게도 물질은 너무 작아지면 그 성질이 바뀐다. 탄소를 예를 들어보자. 탄소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기본 성분이기도 하지만 다이아몬드나 흑연은 모두 탄소로만 이루어져있다. 같은 탄소라도 나노크기로 작아지게 되면 놀랍게도 이전에 없던 다양한 성질이 나타난다. 흑연을 이루는 두 겹의 탄소 원자층에서 한 겹만 잘 벗겨내면 어떻게 될까? 분리된 얇은 한 겹의 탄소 원자층, 그것이 바로 2010년에 노벨물리학상까지 받은 그래핀이라는 신물질이 된다!

이 그래핀이란 물질은 전기와 열을 잘 전달하고 얇고 투명하기까지 해서 접히는 디스플레이 소재나 투명전극으로 활용될 수 있다. 길쭉한 관모양의 탄소나노튜브는 튜브 양끝의 모양에 따라 전기적 성질이 다양하기에 각기 다른 목적의 전자소자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마법같은 성질들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이것도 모두 계산과학의 힘이다. 계산과학자들은 당시에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던 다양한 탄소 나노구조체의 성질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예측했고, 실험과학자들은 나중에 합성과 측정으로 이를 직접 증명했다.

나노물질처럼 아주 작은 물질은 측정하기가 더 힘들다. 머리카락은 맨눈으로도 보이지만, 그보다 천분의 일이나 얇은 직경 10 nm 나노튜브는 전자현미경을 써야만 '볼' 수 있다. 찰나의 순간에 벌어지는 현상이거나 단 한 원자의 움직임이라 관측이 어렵거나 또는 합성하려는 물질이 유독해서 위험하다면, 이럴 때 양자계산과학이 더욱 빛을 발한다. 예를 들어 카드뮴이란 물질을 연구할 때, 직접 이 물질로 실험하다간 자칫 뼈가 물러지고 극심한 고통과 함께 온몸이 마비되는 끔찍한 이타이이타이병에 걸릴 수도 있다. 계산과학 연구자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가능성 있는 모든 합성물질을 시뮬레이션한 후 실험연구자에게 최적의 성질을 가진 카드뮴 화합물 구조를 제공하게 된다. 계산과학은 이처럼 관측된 현상을 해석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물질의 성질을 미리 예측하여 나노과학 발전에 기여한다. 나노계산과학과 실험측정, 실험합성은 나노과학을 떠받치는 세 개의 기둥으로, 서로를 보완하며 함께 발전한다. 앞으로 컴퓨터 하드웨어와 알고리즘이 더 발달할수록 양자계산과학은 더욱 신속하고 정확한 측정도구와 예측도구로 활용될 전망이다. 이승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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