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기의 행복찾기] 겨울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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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기의 행복찾기] 겨울에 대한 추억

박광기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17-12-08 00:00
  • 박광기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박광기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숲
게티 이미지 뱅크
학교를 다닐 때도 그랬고, 졸업 후 직장을 다닐 때도 겨울이 참 좋았습니다. 물론 그 때나 지금이나 4 계절 중에서 가을을 제일 좋아하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을과 겨울의 경계쯤인 10월 말과 11월 초의 계절은 항상 내게는 1년 중 가장 좋은 계절입니다. 이 시기는 가을의 풍요로움도 있고 형형색색으로 물든 단풍잎들이 떨어지면서 또 다른 느낌을 주는 때이기도 합니다.

예전 겨울에 "춥다! 춥다!"하면서도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끼고 어깨를 움츠리면서 총총 걸음으로 거리를 다니던 것도 나쁘지 않은 추억입니다. 겨울이 되면 유독 정전기가 심하게 나서 문고리를 잡거나 차문을 열 때 찌릿 찌릿하면서 깜짝 놀라곤 해서 꼭 장갑 끼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되었지만, 그것 또한 겨울에 대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저작권 등의 문제로 사라져버렸지만, 11월말부터 거리에서 성탄노래가 흘러나오고 그 노래를 들으면서 거리를 쏘다닌 것도 아련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몸을 움츠리고 걷던 길가 포장마차에서 끓고 있는 하얀 김이 폴폴 나는 어묵국물로 얼은 몸을 녹이는 것도 좋았습니다. 더구나 소복하게 쌓이면서 내리는 하얀 눈은 아무리 도로가 엉망이 되고 교통이 두절되어도 나와는 무관한 것처럼 좋기만 했습니다.

이런 겨울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독일로 유학을 간 후 맞는 겨울은 겨울나라의 다른 세상처럼 마음이 두근거리기도 했습니다. 성탄카드나 달력의 그림인 줄 알았던 하얗게 쌓인 벌판의 눈과 거기 외롭게 서 있는 고목의 풍경이 바로 내 앞에 있기도 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세상을 덮어버려 새로운 눈의 세계를 바로 내 눈 앞에서 보여주었던 독일의 겨울은 더욱 겨울의 맛을 느끼게도 했습니다. 성탄 4주전 대림절이 시작되면 시내 한 복판에 열리는 성탄시장은 새로운 볼거리로 가득하고, 독일의 겨울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게 하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겨울이 싫습니다. 사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싫은 정도가 아니라 겨울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습니다. 눈이 내리면 마냥 좋아만 했던 감정은 사라진지 이미 오래입니다. 겨울이 되면 아침에 잠을 깨고 제일 먼저 밖을 내다보며 혹시 눈이 온 것은 아닐까를 확인하고, 오늘 눈이 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먼저 앞섭니다. 잠을 깨고 제일 먼저 창문을 열고 밖에 눈이 쌓여 있는 날은 걱정과 두려움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제 나이가 들면서 나에게 겨울은 정말 두려운 계절이 되곤 합니다. 그것은 바로 2000년 1월 1일 있었던 교통사고의 기억이 해가 갈수록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두려운 것으로 생생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 때 그 사고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교에서 근무할 당시 일어난 사고입니다. 당시 우리 가족은 오스트리아 레오벤, 더 정확히 말하면 비엔나에서 약 250km 떨어진 니콜라스도르프라는 정말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고는 비엔나로 신년 미사를 드리기 위해 가는 도중 발생한 사고였습니다.

그날 새벽에도 눈이 무척이나 많이 와서 쌓여 있었고, 비엔나로 가는 도중에 위치한 오스트리아에서 유명한 스키장이 있는 젬머링 산 정상을 넘을 때는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산 정상을 그래도 안전하게 넘어 다시 비엔나 남부 고속도로를 달리던 도중. 운전 하던 자동차가 결국 눈길에 미끄러져 아우토반의 중앙분리대와 갓길에 쌓아 둔 눈 더미에 부딪혀 튕겨가며 중심을 잃었고, 결국 갓길을 벗어나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도 자동차는 낭떠러지 중간 쯤 나무에 걸려 끝으로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정말 천만다행으로 차는 완파되었지만, 우리 식구들은 모두 다친 곳 하나 없이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고를 당한 이후 겨울은 나에게는 두려운 계절이 되어 버렸습니다. 더구나 눈이 오거나 쌓여 있는 겨울은 겨울에 대한 낭만이나 추억보다는 이제 극복해야할 계절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11월 중순이나 말이 되면 모든 일을 제쳐 두고 우선 자동차의 타이어를 교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 11월 말 자동차 타이어를 겨울용 타이어로 교체했습니다. 언제 눈이 올지 모르지만 혹시나 갑작스럽게 눈이 오는 경우를 대비해서 말입니다.

이번 주 화요일 우리 지역에 눈이 내려 쌓였습니다. 지난 화요일 새벽에도 겨울이면 새벽에 잠을 깬 후 창문을 열고 밖에 눈이 쌓였는지를 확인 하는 것이 의례적이라서 창문을 열고 밖을 확인했습니다. 밤새 눈이 내려 쌓인 것이 아마도 올 겨울 처음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밖을 확인하는 순간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래도 수업을 해야 하기에 출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걱정과 근심을 안고 자동차를 운전해서 지하주차장을 나오는 순간, 눈발은 계속 날리고 있고, 쌓여 있는 눈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정말 온 신경을 집중해서 평소보다는 훨씬 천천히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음에도 차가 눈길에 미끄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학교 오는 길에 여러 대의 차량이 미끄러져 접촉사고가 난 현장을 목격할 수가 있었습니다. 걱정과 염려가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자고 있는 아이에게 황급히 전화를 걸어서 오늘 출근할 때 자동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명령을 내렸고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았습니다.

내 뜻을 따라 자동차를 집에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회사로 출근한 아이는 결국 1시간 반이나 지각을 했습니다. 아이는 출근 도중 지각을 할 것 같다는 전화를 몇 번이나 하면서, 나를 원망하는 것 같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아직 눈길 운전이 처음인 아이가 운전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습니다.

평소에는 정말 반드시 필요하고 편리한 것도 어느 순간에는 그것 때문에 걱정이 되고 염려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바로 자동차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눈이 쌓이거나 내릴 때, 그 때 그 교통사고 이후 자동차는 걱정거리가 되고 맙니다.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해야만 한다면 정말 조심조심 운전을 해야 하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오곤 합니다. 자동차 운전만을 생각한다면, 눈이 오지 않는 겨울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눈이 없는 겨울은 겨울다운 겨울이 아닐 것입니다. 눈이 오지 않는다면 겨울가뭄이 일어날 것이고 그에 따른 다른 피해가 많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이 없는 겨울은 겨울의 낭만도 없고 옛날의 추억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겨울에는 눈이 있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겨울이 두렵고 더구나 눈이 두려운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가 만약 운전을 하지 않을 경우, 그래도 겨울에 눈이 오는 것이 두려운가?'라는 생각입니다.

만약 운전을 직접 해야만 하는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겨울에 눈이 오는 것이 좋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고, 만약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가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직접 운전을 해야만 하는 경우와는 다른 의미의 걱정이 될 것이고, 그 강도 역시 그리 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가 겨울을 두려워하고 눈을 걱정하는 것은 바로 내가 겪었던 교통사고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그런 사고가 없었다면 나는 이번 겨울도 많은 눈을 기다리고 그 눈을 보면서 옛 추억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입장에서, 자기의 경험을 토대로 세상의 모든 일이나 모든 것을 판단하고 평가하려고 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내게는 두려운 겨울이고 무서운 겨울눈이라고 해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낭만이고 다시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될 것입니다. 마치 내가 예전에 느꼈던 겨울의 추억과 포근하고 예쁜 눈에 대한 기억이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번 주말은 더 추워진다고 합니다. 이번 주말에는 혹시 무엇인가 이해하고 판단하고 평가했던 것들에 대해서 그것이 나만의 주관적인 것이 아니었는지 한번 곰곰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내게는 불편하고 두렵고 버리고 싶었던 것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내게는 이롭고 편안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고 무심했던 것으로 인해서 다른 분들에게 피해가 되고 상처가 된 것은 없는지 말입니다.

모든 것은 자신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서 결정하고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들을 고려해서 함께 모두가 같이 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행복한 주말되시길 기원합니다.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박광기교수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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