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省)정부 못잖게 내 활동을 도와주는 란 국장에 대한 고마움은 잊을 수가 없다. 그날도 란 국장은 호텔로 찾아와 (이 호텔 역시 란 국장의 주선으로 요즘 2백 위안(元_을 80 元으로 할인했었다.) 부근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했다. 호텔에서 도보로 2~3 분거리의 버스터미널에서 츄베이(丘北)행 소행버스에 올랐다.
3 시간 거리라는데 요금이 14元이면 무척 저렴하다는 생각이 든다.
란 국장은 차가 출발할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하고 서 있다. 마치 친 형제가 먼 길을 떠나는 것처럼 마음 따뜻한 모습이다.
시내를 벗어나는 데는 채 5 분도 걸리지 않았고 곧장 시골길로 이어진다. 조금은 불안할 정도로 속도를 내는 소형버스. 그 덕분에 차는 거의 정시에 츄베이(丘北)에 도착했다. 文山에서 출발 할 때 ?국장이 기사에게 별도로 부탁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나를 가리키며 저 손님 한국사람이다. 丘北 에 도착하거든 뿌저 헤이(普者黑)로 갈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 주기 바란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丘北 에서 모든 손님들이 내린다. 기사가 껑충 뛰어내린 후 가까운 거리에서 지나가는 대형버스를 멈춰 세우더니 종점까지 가는 외국인이니 잘 부탁한다며 웃는다. 그러면서 투박한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한다.
한국사람은 처음 만났다.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 만약 돌아올 때 시간이 있으면 연락을 해주고 또 가급적 자기 차로 文山까지 갔으면 좋겠다며 자기 전화번호와 차 번호를 적은 쪽지를 건내준다. 그와 헤어지고 올라탄 차는 시내버스였다.
요금은 1 元. 뒤늦게 보았지만 버스 전면에 뿌저헤이행(普者黑行) 이란 팻말이 부쳐져 있다.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 모습이었지만 이곳 역시 정류장과 관계없는 버스운행이었다.
아무데서나 손드는 사람이 보이면 태워주고, 또 손님이 "쌰 처(내립니다)"라고 하면 세워 준다. 버스 안에 타고 있는 여자들은 대부분 소수민족 '이족' 특유의 독특한 복장을 하고 있다.
모자를 무척 좋아하는 모양으로 알록달록한 무늬와 현란한 색감의 천을 둘둘 말아올려 두건을 만들었다. 목에는 선이 굵은 목걸이를 두 개, 세 개씩 걸었고 귀거리가 또한 일품이다.
어떤 여자는 귓 밥에 동전 크기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계란만한 쇠붙이를 귀걸이로 매달고 있어 신기하기만 했다. 영화에서 본 미국 인디언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입고 있는 옷이라는 게 큰 모포를 휘둘러 감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 사람 저 사람 이족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중인데 마침 4~50 대 쯤으로 보이는 한 여인이 머리 두건을 고쳐쓰기 위한 동작을 하고 있었다. 새까만 머리칼이 거의 무릎까지 내려올 정도로 장발이다. 그러나 그녀는 순식간에 그 길고 풍성한 머리칼을 둘둘 감아 올리더니, 다시 그 위에 예의 그 휘황찬란한 두건을 얹는다. 남녀 복장을 제외하면 우리네 60 년대의 어느 한가한 읍지방의 버스 안 풍경과 흡사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버스 안에서 카악 칵! 가래침을 뱉거나 팽 ~하고 코를 풀어제끼는 여인들이며, 뻑뻑 담배를 빨아대는 남정네들의 모습까지도.
호숫 위에 떠있는 구멍가게/사진=김인환 |
30분 쯤 지나서 시내버스가 도착한 지점은 멀리서도 물안개가 뽀얗게 보이는 한가한 마을이었다. 흔히 버스 종점이라면 독특한 분위기가 있게 마련인데 이곳만은 예외다. 대중식당이 나란히 세 개가 붙어 있고, 식당 앞에는 넓은 마당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버스가 도착했다가 다시 되돌아 나가는 반환점 같은 곳이었다.
배낭을 메고 차에서 내리자 40대 중년 사나이가 성큼 성큼 걸어와 인사를 한다.
혹시 한국인 아니냐? 문산주(州) 란 국장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나왔다면서 반가워 한다. 이 사람이 바로 내가 묵게 될 이 부락의 촌장이었다. 성이 황가라는 촌장은 콧수염을 길렀는데 제대로 가꾸질 않아서 마치 잡초 투성이 텃 밭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촌장의 집은 걸어서 5분 거리로서 그 유명한 호수 부저헤(普者黑)가 정원이나 되는 듯 물가에 붙어 있다. 2층 집으로 1층은 주인 내외와 어린 아이 등 세 식구 그리고 일하는 꾸냥 두 명 등이 살고, 2층은 여관방처럼 꾸며 놓았는데 관광철을 예비해 만든 것이라고 했다. 2층에 안내되어 배낭을 내려놓자 마자 1층으로 내려왔다. 물안개를 피워 올리는 호수를 보고 싶어서 였다. 피곤할 터인데 조금 쉬면서 나중에 봐도 되지 않겠냐는 촌장의 인사말을 뒤로하고 천천히 물가를 걸었다. 이 백 여 호 정도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부락이 물가에 옹기 종기 모여 있다.
여자들이 물가에 나와 빨래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누렁이 한 마리가 어슬렁 어슬렁 내 뒤를 따라온다. 조금 있으려니 어린 아이들 대 여섯 명이 역시 내 뒤를 따라오며 낄낄 거리는 모습이 신기한 외국인을 감상(?)하는 눈치다.
이럴 때는 준비했던 과자며 사탕을 주곤 했는데 급히 나오느라고 챙기질 못한 것이 서운했다.
저 앞에서 물소 몇 마리가 걸어오고 있는데 소 잔등에는 아무런 안장도 없이 소년이 앉아있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떨어뜨리지 않고 소년을 태우고 걷는 물소에게 친근감이 간다.
#이족의 무속신앙
호수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고도 멀었다. 한 시간 쯤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작으마한 동산이 보여 올라가 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줄기차게 내 뒤를 따라온다. 그 중 한 녀석이 내 옆까지 뛰어와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눈치더니 슬쩍 내 옷자락을 만져보고는 자기들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도망간다. 동산에는 중간 지점에서부터 짐승들의 석상이 군데 군데 박혀 있다. 사자 같으면서도 아닌, 개 같으면서도 아닌, 호랑이 같으면서도 아닌, 한마디로 기괴미묘한 형상들인데 이것들이 이족들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앙의 대상물들임을 나중에 듣게 되었다.
조금 높은 지역에는 나무로 만든 두 개의 짐승이 서 있는데 우리나라의 천하대장군 쯤으로 생각했다가 금방 그 생각을 바꾸어 버렸다.
한 쪽은 여자의 형상임이 뚜렷했고, 또 한 쪽은 남자의 형상인데, 재밌는 것은 아랫부분에 남자의 심볼을 괴상하기만치 크게 달고 있었다.
분명히 깊은 뜻을 담고 있는 것이라 여겨졌지만 돌아가는 길로 촌장에게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동산을 올라갈수록 따라오던 녀석들도 시들해 졌는지 하나 둘 떨어져 나갔다.
정상에는 상상 못했던 축구장 절반 크기의 평지가 펼쳐진다.
일부러 심은 것 같지는 않지만 잡풀도 적당히 자라나고 있고 중간 중간에는 올라오면서 보았던 괴물스런 석상들이 십여 개 보인다. 이족(?族)의 무속신앙 일면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풀밭에 앉았다가 편안한 자세로 누워 본다. 10월의 맑은 하늘이 한없이 푸른 가운데 솜털 구름이 몇 점 한가로이 떠돈다.
그 동안 2년 여에 걸친 소수민족 취재여행길. 피로감이 엄습해 온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긴다. 꿈 속에서도 나는 소수민족 가정을 넘나들고 있었다. 얼마나 잤을까? 누군가가 세차게 흔드는 바람에 놀라며 잠에서 깨어 났다.
#예비된 환영파티
풀밭에서 잠시동안이나마 즐기던 낮잠을 깨운 것은 촌장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미 황혼녘이다. 10월의 찬바람이 으스스 한기를 느끼게 한다.
촌장은 저녁준비가 되어 있으니 내려가자면서 몇 명의 친구들이 나를 환영하기 위해 모였다고 덧붙인다.
그를 따라 아랫마을로 내려왔는데 정작 걸어가는 방향은 집이 아니라 버스종점 쪽이었다.
몇 채의 식당 중 한 곳으로 들어갔는데 7~8명의 남녀가 앉아 있다가 반기는 폼이 벌써부터 기다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정확하게 나까지 10명이나 된다. 그 가운데 여자가 3명이고 군복 정장차림도 두 명이나 있었다. 모두가 촌장의 친구들로서 방문한 외국인을 환영하기 위해 조촐하나마 만찬을 나누기로 했다는 설명이 있었다.
커다란 테블 가운데는 닭과 오리가 한 마리씩 놓여지고 각 종 요리들이 빈 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가득하다.
어느 소수민족 촌이든 흡사했지만 이곳 역시 첫 인사가 술로부터 시작될 모양이다.
은근히 겁이 난다.
걱정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촌장이 일어나서 격식을 갖추고 한마디 하더니 깐 빼이. 이어서 또 다른 친구가 한마디 하고는 깐 빼이 세례를 퍼붓더니 이번엔 나더러 한마디 하란다.
더듬 거리는 중국말이지만, 오늘 저녁 나를 환영해 준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감사하다. 다같이 깐 빼이! 그랬더니 이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라 한다.
여자들도 술잔 앞에서는 머뭇거림이 없다. 당당하다. 그 중 한 여자가 잔을 들고 와 둘이서 깐! 하자며 내 잔에 술을 따른다. 30대 초반의 깔끔하게 생긴 여자인데 이곳에 있는 동안 이족(?族)의 아름다운 습관을 많이 보기 바란다며 인사도 잊지 않는다. 이 여자가 제 자리로 돌아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머지 두 여자가 차례대로 내 곁으로 온다. 이들을 보는 일행들은 박장대소하며 박수를 치고 흥겨운 표정들이다.
그런데 내 옆에 앉아있던 촌장 친구는 별로 술을 마시지 않는 눈치더니 기회가 날 때마다 질문을 던져온다.
#공안원의 기습적인 조사
중국에는 언제 왔느냐, 어디 어디를 다녔느냐, 중국이 마음에 드느냐, 가족과 같이 왔느냐 혼자 왔느냐, 혼자 이렇게 다니면 비용이 많이 들 터인데 어떻게 충당 하느냐. 소수민족 취재는 왜 하는 것이냐 등, 등… 전체적으로 흥미가 도도해지고 있었지만 이 친구는 전혀 분위기와는 관계가 없다는 듯 나에 대한 질문을 거듭하고 있었다. 한 시간 쯤 신상에 대한 얘기만을 계속하던 이 친구가 갑자기 바쁜 일이 있다며 인사를 하더니 슬그머니 나가 버린다. 촌장이 내 귀에 대고 기분 나쁘지 않았느냐며 괘념치 말라고 어깨를 다독여 준다.
그러면서 그의 직업은 공안원(경찰관)이라고 귀띔한다. (그러면 그렇지! 어딘지 모르게 냄새가 나더라니. 그나 저나 웃기는 녀석이지. )
정식으로 나를 부르든가 아니면 숙소로 찾아와 조사하면 될 것을 가지고 흥겨운 술판에서 무슨 수작이야? 나이깨나 들었음직 한데 공( 公)과 사(私)를 구별 못하다니 쯧 쯧!
그러나 나머지 일행들은 이런 것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웃고 떠들며 술병을 비운다. 나를 환영하기 위한 술판인지, 나를 빙자한 자기들끼리의 술판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다.
군복 차림의 두 사나이는 츄베이(丘北)에서 왔다고 하는데 그곳에는 군부대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계급으로 치면 소령급으로서 제법 중요한 위치에 있는 듯 했다. 같이 술을 마시면서도 그 모습에서부터 격(格)이 틀리다. 자세는 흐뜨러 트리지 않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법도 없다. 남들과 똑같이 술잔을 기우리면서도 그 눈빛은 흔들림 없이 강한 인상을 준다.
생각보다 촌장은 덩치답잖게 술이 약한가 보다. 잠시 옆으로 보니까 눈이 반쯤 감긴 채 고개를 간헐적으로 떨어 트린다. 아마 취하면 잠이 쏟아지는 체질인가 보다. 강한 쪽은 여자들이었다.
마시기로 친다면 생체학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강하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모습들이다. 세 명의 여자가 세 차례 쯤 돌아가며 내 곁에 와서 잔을 부딪치고 돌아갔다. 자기들이 주는 잔을 사양치 않고 받아 마시자 그들은 나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리 하이! 리 하이!(대단하다는 뜻)하며 외쳐 댄다.
#새벽 호수의 투망질
이튿날 아침은 습관대로 아침 6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엊저녁 환영파티의 술이 조금 과했다 싶었는데 두통이나 속쓰림이 전혀 없다. 한 두번 겪은 일이 아니지만 중국 술이 참 좋긴 좋구나! 하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직도 물안개 속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는 普者黑 호수가를 산책하며 이 세상에 이렇듯 평화스러운 마을이 또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시간 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저 만치 앞에서 마주 오던 사나이가 인사를 한다.
엊저녁에 자리를 같이 했던 촌장 친구 중에 한 사람이었다.
투망을 어깨에 메고, 한 손엔 물통을 든 채 였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고기 잡으러 가는 길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같이 가보겠느냐는 물음에 좋다고 대답하면서 괜찮다며 마다하는 그의 손에서 물통을 빼앗듯 받아 들었다. 100M 쯤 거리에 작은 목선이 누워 있었다.
그는 빠른 동작으로 묶여있는 밧줄을 풀고 배 위에 올라 내 손을 잡아 준다.
긴 장대로 목선을 이리 저리 조정하는 폼이 보통 실력이 아니다. 목선은 안개 속을 뚫고 미지에로의 탐색선이나 되는 양 미끄러지듯 호수를 가로질러 나아간다.
그리고 잠시 후 긴 장대를 내려놓던 그가 투망을 양 손에 말아 쥐고는 휘익! 물 위로 던진다.
솜씨 좋게도 투망은 둥근 원을 그리며 물 속으로 가라 앉고, 서서히 말아 올리는 사이 팔뚝만한 고기들이 투망 속에서 펄럭이는 모습을 불 수 있었다.
첫 번째 투망질에서는 모두 네 마리가 건져졌다. 10여 마리의 작은 고기들은 그 자리에서 다시 호수로 방류되었다. 모두 다섯 번의 투망질을 통해 열 한 마리를 잡았는데 고기가 어찌나 크던지 들고 온 물통의 거의 찰 정도다.
다시 뭍으로 올라온 우리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촌장 집으로 향했다. 촌장도 이미 밖으로 나와 있다가 웃으며 우리를 맞이한다.
둘이서 맞잡고 들고 온 물통을 들여다 보던 촌장이 껄껄 웃더니 집 쪽에 대고 누군가를 부른다. 일하는 꾸냥 두 명이 동시에 달려온다.
빈 물통 속에서 다섯 마리를 꺼낸다. 그리고는 빨리 요리 준비를 하라고 지시한다. 투망을 던지던 사나이는 집에 다녀오겠다며 물통을 들고 돌아섰다. 촌장이 날더러 가 볼 데가 있으니 따라 오라며 앞장을 섰다. 촌장의 집은 마을 어귀에 있었으므로 마을 출입을 하려면 당연히 그의 집 앞을 지나쳐야만 했다.
부락 앞에 있는 근친상간의 옛 조상 정승/사진=김인환 |
어제는 유심히 볼 기회가 없었는데 집 옆으로 동산입구가 보이고 그 아랫자락에는 어제보았던 것보다 두 배 쯤 큰 남녀 장승이 세워져 있다.
예의 벌거벗은 형상으로 여자는 앞 가슴을, 남자는 아랫도리의 심볼을 유난히 강조하듯 크게 만들어져 있는 것들이었다. 그 앞에 선 촌장은 사뭇 숙연한 표정이다. 잠시 후에 안 일이지만 이 나무 형상이 곧 이들 이족의 조상들이라는데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수 천 년일 지, 수 만 년일 지 모르는 그 아득한 옛날 남매가 서로 사랑을 하며 후손을 낳게 되었다는 이족의 전설이고 보면 왠지 께름직 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같은 피를 나눈 오빠와 여동생이 부부가 된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근친상간(近?相奸).
그렇다면 이족의 조상은 이처럼 혈육간 근친상간의 선두주자란 말이 아닌가.
허기야 윤리니 모랄이니 하는 도덕관념이 없던 미개사회시절의 얘기고 보면 무조건 탓 할 수 만은 없을 터이다.
그래도 이들은 부락 곳 곳에 세워놓은 나무 형상의 민족시조를 경건한 자세로 숭배하며,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맛보게 된다.
동산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집에 돌아오니까 1층 거실에는 벌써 김이 모락 모락 나는 고기요리가 올려져있고 촌장부인도 식탁준비에 열심이다.
잠시 후에는 고기를 잡아 올린 친구 부부가 합세, 아침부터 풍성한 요리로 잔치 분위기다. 일하는 두 명의 여자아이들은 과거 우리나라에서 보았던 식모들로서 주인으로부터 무척 천대를 받고 있음이 틀림 없었다.
엊저녁에 그렇게들 마셔대고도 또 술병이 나온다. 그리고 여기 저기 전화를 걸고 나서는 이웃집 친구들 몇 명이 더 합석을 했다.
잉어 종류인 담수어는 찜 요리도 있고, 탕요리도 있다. 원래가 큰 고기였는지라 실컷 먹고도 남을 정도다.
이족의 수호신 가운데 하나/사진=김인환 |
#동굴 선인동 <仙人洞 > 탐사
운남(云南)의 계림(桂林)이라고 불리운다는 이 곳 普者黑호수.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봉우리들이 마치 광서(?西) 계림(桂林)의 기봉들과 너무나도 흡사하고 또 인근에 발굴, 개발된 동굴이 10여 개나 되기에 붙여진 별칭이라고 한다.
수 천 만 평이나 되는 호수 어딘가에 이어지는 강이 있고, 그 강으로부터 물이 흘러 들어오려니 상상했었는데 천만의 말씀이었다.
일 년 열 두달 항상 이 정도의 수위를 유지하는 것은 호수 밑바닥에서 치솟아 오르는 샘물 때문이라니 참 신비롭기만 하다. 호수 곳곳에는 연꽃잎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개화기가 아니어서 사진으로만 감상할 수 있었는데 호수 전체가 황홀한 연꽃으로 뒤덮인 듯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봄철이면 연꽃을 보기 위해 하루에도 수 천 명씩 관광객이 몰려든다고 한다.
부락에서 가장 가깝다는 동굴을 구경하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20분 쯤 걸어가노라니 호수의 지류가 나오고<仙人洞>이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관광철이 아닌지라 매표소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두리번 거리고 있으니까 왠 아가씨 한 명이 저 쪽에서부터 작은 목선을 저어오는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오더니 동굴을 보러 왔느냐고 묻는다.
대놓고 허리춤에서 열쇠 꾸러미를 빼든다. 매표소 문을 열고 표 한 장을 떼어주면서 5元을 달라고 한다. 그리고는 따라오라는 손짓이다. 굴 입구의 스위치를 누르니까 컴컴하던 동굴 내부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5元 내고 혼자 감상하려니 전기값도 안나오겠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름과 나이를 묻자, 성이 곽(郭)이라고만 밝히며 20살이라고 한다. 무척 명량한 아가씨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두 손뼉을 쳐대면서 반갑다는 표정이다.
외국인들은 더러 다녀갔지만 한국인은 처음이라며 한국 TV드라마를 즐겨본다는 얘기며 김희선,안재욱 등의 탈렌트 이름을 들먹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쉴새 없이 동굴 이곳 저곳을 손짓하며 설명을 한다. 40여분 간 걸리는 동굴 관광은 이 안내원 아가씨 혼자 웃고 떠드는 사이에 끝났다. 입구와 출구는 별개였다. 출구에서 입구로 돌아오려면 10여분 쯤 걸어야만 한다.
출구에서 곧장 부락으로 돌아올 수도 있지만 아가씨가 맛있는 걸 주겠다며 유혹 아닌 유혹을 하는 바람에 줄레 줄레 따라갔다. 마침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 어디론가 비를 피해야 할 것 같았다. 아가씨가 안내한 곳은 매표소 옆, 그러니까 동굴입구 부근의 움폭 파인 지역으로 마치 대피소처럼 보였다. 일부러 판 것은 아니고 자연적으로 구멍이 난 곳인데 너덧 명은 실히 앉을 정도의 면적이다.
자연석으로 대충 다듬어진 돌들이 몇 개 놓여 있어서 의자구실을 하고 있다.
비오는 날씨인지라 청명하지 못한데다 동굴 같은 내부에는 음침한 분위기까지 감돈다.
망설이며 선듯 들어갈 엄두를 못내고 있는데 이 아가씨는 먼저 들어가 앉아서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그냥 돌아설까 하다가 주춤주춤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 피웠었는지 중간지점에 불씨가 남아있다. 한 쪽에 쌓여있는 나무토막들을 그 위에 얹더니 후 후 입김을 불어 모닥불을 만들어 낸다.
불이 붙자 으슬으슬하던 한기도 가시고, 어느정도 어둠도 가신다. 아가씨가 뛰어 나가더니 조그만 망태기에 담긴 고구마를 갖고 들어온다. 구어 먹자는 심사인 것 같다. 갑자기 재밌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의 동작을 거들어 주었다.
(다음 주에 계속)
김인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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