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
토요일 오전 프리드리히는 산타블루에서 25마일 떨어진 레드포드 고급 주택가에 작년에 새로 구입한 저택에서 임마뉴엘의 전화를 받자, 자신의 애마 벤츠 960을 게라지에서 꺼내 연구소로 향했다.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럴 리가 없다. 거기까지 손대지는 못했을 거야. 펜타곤의 전산요원이 깔아준 보안벽 아닌가. 임마뉴엘도 알고 있을텐데...'
그런데 임마뉴엘의 아침전화는 확실히 자신을 의심하는 목소리였다. 확신하지는 못하면서,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그런 음색..
아침이지만, 도로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3시간의 시차. 보스톤은 지금 11시가 넘어가고 있다.
주말 골프장을 가는 차들인지 도로에 줄지어 안개에 밀려 있는 앞차들을 보면서 프리드리히는 뱃속에서 짜증이 뇌수까지 가득 차 옴을 느꼈다.
가까스로 연구실에 도착한 시간이 아침 8시경.
30분이면 올 거리를 1시간이 걸렸다. 아무도 없는 연구소에는 정문에서부터 평소보다 두배는 많아 보이는 제복 경비들이 연구소를 들어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신원을 조회하며 출입시키고 있었다.
조바심이 치밀어 오는 것을 꾹 참아가며 겨우 연구실에 도착하였을 때는 그로부터 20분이 경과한 시간이었다.
즉시 컴퓨터를 부팅하였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엔진이 돌아가는 컴퓨터.
부팅이 되자 프리드리히는 얼른 파일 검색을 시작하였다.
그러면 그렇지. 파일은 순결했다.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조형준이 다녀간 1급 비밀 파일에만 얼룩이 묻은 듯 오염원의 비밀번호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었다.
프리드리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안도의 숨이었다.
그때였다. 컴퓨터의 모니터에 이상한 글자가 한자 한자 나타났다.
전혀 이해 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ha,ha,ha, yot moggora. Friedriech.'
(하하하 엿 먹어라 프리드리히.)
그러더니 컴퓨터가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커서가 제멋대로 움직이면서 글자를 입력하기도 하고 엔터를 치기도 하면서 온갖 파일이 마구 부팅되면서 정신없이 화면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프리드리히는 가만히 있는데, 마치 프리드리히가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대듯이 컴퓨터가 작동하는 것이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같이 컴퓨터는 숨쉬며 움직이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미친 듯 춤을 추고 있었다.
프리드리히는 완전히 얼이 빠졌다.
그러면서 프리드리히는 자기의 속옷이 하나하나 벗겨져 치부가 드러내 보이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눈을 뜨고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또 하나는 알 수 없는 번호였다.
넋이 빠진 채 컴퓨터를 바라다보던 프리드리히는 정신을 차렸다.
순간적으로 파일들이 마구 해킹당하고 있음을 깨닫고, 급히 전원스위치를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스위치를 내려도 모니터는 꺼지지 않았다.
프리드리히는 긴박하게 전원코드 플러그를 찾아 헤맸다.
벽에 내장되어 있는 코드 플러그도 쉽게 눈에 띄지를 않았다. 프리드리히는 정신없이 아미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는 전원 코드를 끊기 시작했다.
전원코드가 끊어지기 직전 힐끔 모니터를 쳐다보자 귀신같은 형상의 화면에 글자가 마구 연속하여 입력되고 있었다.
ha,ha,ha,ha,ha,ha.......
반복되어 나타나는 글자를 보면서 프리드리히는 마지막 힘을 주어 코드를 끊었다. 컴퓨터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프리드리히는 그만 연구실 바닥에 엉덩이를 쿵하고 내려앉고 말았다.
핸드폰, 핸드폰을 찾았다. 급하게 단축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고 있었다.
임마뉴엘, 임마뉴엘... 제발. 비상사태요. 비상....
하지만 핸드폰은 신호만 갈 뿐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동시에 산타블루 연구소의 정문에는 검은색 포드 벤 3대가 경비가 열어주는 정문을 지나 연구소 본관으로 미끄러지듯 향해 오고 있었다.
(계속)
우보 최민호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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