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조 의원 |
매년 반복되는 이러한 모습들을 보고 혹자는 ‘돼지 여물통 정치’(Pork-barrel politics)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돼지 여물통 정치란 중앙정부가 온갖 권한과 돈을 끌어안고 있어 이를 확보하기 위해 지방정부들 간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비유한 말이다.
지방자치정부의 사업수행과 해당 주민들의 복지서비스 개선을 위해 중앙정부와 국회로 찾는 단체장들의 발걸음은 결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라도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도정과 시정을 운영할 수 없는 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다양성과 분권의 시대 흐름 속에 늘 문제로 제기되는 지나친 중앙집권 시스템은 극심한 비효율을 가져왔고, 또한 각각의 특색을 가진 지방 정부들의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정책개발과 결정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동되기도 한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만 총인구의 49%가 밀집되어 있으며 생산가능인구의 50%, 청년 인구의 51%, 100대 기업 본사의 91%, 벤처기업 72%, 자본금 82% 등 모든 것이 중앙에 몰려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지방의 소멸, 환경오염, 교통문제 등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며 이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만 한해에 27조원에 달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균형적이고 지속가능한 대한민국 발전에 역행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음으로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보자. 2015년 메르스의 공포가 대한민국 전체를 뒤덮었고 초기 방역에 실패한 당시의 박근혜 정부는 질병의 확산은 물론 국민의 공포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불러왔다.
답답한 상황의 연속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방정부와의 정보 공유, 방역상황 공개 등을 중앙정부에 요구했고 선제적으로 서울시의 병원 정보를 발표한 이후에야 각 지방 병원과 시민들이 스스로 위험지역을 피하고 대비하면서 전염병을 막아냈다.
앞서 말씀드린 2가지 사례가 중앙집권화의 비효율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정부와 국회의 최대 화두는 지방분권이다. 그러나 현재의 권한과 법적 근거로는 지방 정부들이 책임 있게 일하기 힘든 구조다. 프랑스, 영국 등의 선진국처럼 헌법에 지방분권 조항을 명시화하고 실질적인 행정권, 재정권, 입법권 등을 지방에 이양하여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지방분권은 손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님이 목숨을 건 단식을 통해 쟁취한 지방분권의 씨앗은 세종시 건설이라는 의미 있는 열매로 성장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성과를 지방 곳곳에 퍼뜨리고 민주주의의 꽃을 만개시켜야 한다.
마침 내년 6월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가 함께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전 국민적인 인식과 동의 속에 헌법이 보장하는 지방분권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지 22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람으로 치자면 이제 어느 정도 성장하여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할 때가 된 것이다. 이제 그만 낡은 돼지 여물통 대신 민주주의와 자율성이 살아 숨 쉬는 새로운 시대, 제대로 된 지방분권의 새 시대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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