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박찬경 형제 감독이 만든 두 번째 단편영화 '청출어람'의 포스터 |
그러나 이와 같은 학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지방에 있는 대학에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학자로서 학문적 연구의 성과를 도출하는 것은 자신의 노력과 학문에 대한 열정 등이 있으면 재직하는 곳이 어디가 되었던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지방대학에서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해서 유능하고 우수한 제자를 배출하기는 참 많은 어려움과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학생들의 대학입학 성적이 다른 수도권 대학과의 차이가 나서가 아니라, 학생들이 졸업 후 진로를 택함에 있어서 진로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내가 가르친 학생들의 대부분은 학문보다는 보다 실용적인 직업을 택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에게는 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정말 자랑할 만한 제자가 있습니다. 지금 부산의 모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제자입니다. 이 제자는 내가 우리 대학에 임용된 후 만난 제자입니다. 그 때 이 제자는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해서 내 수업을 듣게 되었고, 그 후 줄곧 나와 같은 길을 걷게 된 제자이며 동시에 학문적 동지로 함께 연구하고 활동하는 그런 제자입니다.
통일문제와 남북한문제, 동북아시아 국제관계 등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연구하던 내게 이 제자는 나의 연구영역에 관심을 보이며 앞으로 학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말하던 그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방대학이라는 보이지 않는 한계를 이야기하고 앞으로의 연구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 제자는 자신의 열정을 굽히지 않았고, 당시 대학원 과정이 없던 우리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의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와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우수한 연구결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이 제자는 자신의 독창적인 연구영역을 개척해갔습니다. 이 제자가 연구하는 영역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사실 아직까지도 연구의 소외분야이고 연구자의 수도 적은 북한이탈 주민에 대한 연구입니다. 남북한 통일의 문제를 단순한 법적, 제도적 통일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통합'이라는 개념으로 남북한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나의 연구관점을 이어 받아 현실에서 더 심화 시키고 현실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의 하나인 북한이탈주민의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 점에서 제자이지만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흔히 연구를 하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보면 인기 있고 주목받는 연구를 하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이지만, 남들이 소홀히 하고 소위 인기 없는 연구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제자는 남들이 하지 않는 연구를 그것도 이론적인 연구가 아니라 말 그대로 발로 뛰는 연구를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북한이탈 주민을 직접 만나고 심층 인터뷰를 해서 실상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안들을 찾아가는 모습은 정말 대단하다는 평가로는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대면 인터뷰와 현장방문을 통한 분석과 연구에는 사실 막대한 비용이 소요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별도의 연구비 지원이 없으면 엄두를 못내는 연구라서 시작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이 제자는 자신의 생활비를 아끼고 절약하고 비용을 줄여 연구비를 마련해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이 연구를 지속하고 있으니, 참 안타깝기도 하고 그 용기가 대단하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는 제자이면서 학문적 동지라고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이나 지원을 하지 못하는 것에 늘 미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비록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학자가 되었지만, 그 동기와 과정에 나라는 존재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유롭고 풍요한 연구 환경을 마련해 주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학자의 길을 가게 한 점도 그렇고, 이 제자의 인생과 삶에 너무 많은 부분을 내가 간섭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합니다.
이 제자를 11월 중순 부산에서 만났습니다. 우리 대학 학생들과 함께 부산으로 통일캠프를 다녀왔는데, 이 모든 프로그램을 바로 이 제자가 기획하고 진행했습니다. 이번 통일캠프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임시정부청사를 비롯해서 한국전쟁 참가 유엔군 묘지 등을 둘러보면서 "통일의 눈으로 부산을 다시 보는" 유익한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제자가 발간한 "통일의 눈으로 부산을 다시 보다"라는 책에 보다 자세한 내용과 설명이 되어 있지만, 이렇게 직접 체험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체험보다도 내게는 제자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 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제 50대를 바라보는 중년의 나이에 자신의 영역에서 전문가로써 인정받고 있는 제자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또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좀 더 여유로운 상황과 충족한 연구 환경에서 자신의 연구와 활동을 하도록 해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안타까움은 어찌할 수 없기에 더욱 마음이 쓰입니다. 이런 왕성한 제자의 활동과 계획을 보면서 마음만으로 제자를 응원하고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빌어 봅니다.
청출어람이라는 사자성어가 바로 이 제자를 두고 하는 말임이 틀림없습니다. 처음 시작에는 나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겠지만, 이제 자신의 연구 영역과 활동은 그 분야에서 전문가로 우뚝 서 있으니 말입니다. 앞으로 제자가 더 발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좀 더 편한 환경이 마련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최근 제자가 발간한 중국 현지 거주 탈북 여성의 생활 실태와 인권을 연구한 책인 "북조선 환향녀"라는 책을 꼼꼼히 읽어 보려고 합니다. 주말에 추위가 몰려온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이번 주말 평소 읽지 못한 책을 골라 한 번 책의 향기에 푹 빠져 보심은 어떨까요?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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