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아이는 너무나 신이 났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그렇게 즐기라고 만든 것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생각 없이 그냥 지나치기엔 몇 가지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다듯 구태의연한 것이야 장르 영화의 버릇이니 그럴 만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반복되고 강화되는 생각의 코드들이 있어 짚어보려 합니다.
우선 악당은 왜 꼭 외계에 존재하는가? 영화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선한데 악하고 흉측한 외계인이 공격해 온다고 설정합니다. 이는 할리우드 영화의 오랜 관습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선악 대립의 관념은 진실을 호도합니다. 실상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리 선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안의 악과 부조리는 우리들의 이기심과 차별, 증오 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설정은 세계와 자아를 성찰할 기회를 빼앗습니다.
악당을 무찌르는 데 영웅이 소환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선악의 대립 속에 영웅이 등장하고, 그 영웅이 영웅적 활약을 펼쳐 마침내 인간을 위기에서 구원한다는 것 말입니다. 이 역시 할리우드의 서부 영화, SF 영화, 액션 영화에 걸쳐 두루 발견됩니다. 영화 속 일반인은 비극적 운명 앞에 무기력합니다. 그에 비해 영웅들은 미모와 지성, 근육뿐 아니라 초능력까지 지녔습니다. 물론 그런 존재가 나타나 위기의 현실에서 구원해 주기를 바라는 욕망과 판타지를 탓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는 마땅히 마주해야 할 책임에 대한 회피나 전가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영화의 모습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서구적 세계관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 문제인 것은 이러한 양상이 현실 세계에서도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서구 중심적 선악 개념과 국제정치적 대응들이 그러합니다. 모든 영화가 현실과 관련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때로 영화와 현실의 관계에 대해 비판적 안목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영화는 한편으로 국적을 지닌 상품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 자국 관객의 욕구와 그에 얽힌 정치사회적 논리가 작용합니다. 나아가 영화라는 문화매체를 통해 그런 세계관을 전지구적으로 유포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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