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선 시대를 공부할 때 역사, 왕조, 정치, 사상 등에만 집중해 당시 사람들은 어떤 것을 먹었는지, 어떻게 요리했는지 등 식생활에 대해서는 당연한 궁금증조차 가질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조선 시대도 사람이 살던 시대였다. 조선시대에는 먹고 싶은 것을 고를 권한이 있었고, 맛을 즐기며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남자들이었다. 이한의 '요리하는 조선 남자'는 그들이 남긴 개인 문집과 당대의 요리서를 토대로 조선 시대에 흔히 먹었던 음식, 그 음식의 역사,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욕심까지 두루 살핀 책으로 책의 중간 중간에 그림과 시를 담아내 고증이 되는 즐겁고 유쾌한 책이다.
사람들이 역사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글을 쓰고자 노력하는 그답게 이 책은 음식의 변천사뿐만 아니라 요리법과 음식에 얽힌 에피소드까지 맛깔나게 풀어내고 있다. 이미 다른 책들에서 많이 다뤘던 임금님의 수라상이나 종갓집 제사상에 올라갔던 귀하고 정성스러운 요리 대신 매우 흔하고, 언제나 먹을 수 있고, 만들기 쉽고, 먹기에도 편한 역사 속의 요리와 그걸 만들고 또 먹어 온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제1장 '고기' 편에서는 닭고기, 쇠고기, 회와 개고기까지 당대 사람들이 고기에 가진 인식과 각종 조리법을 소개한다. 제2장 '별식' 편에서는 간장게장, 상추쌈, 냉면 등 입맛이 없을 때 혹은 특별할 때 먹었던 음식들을 만난다. 제3장 '장과 디저트'에서는 고추장, 참외, 인절미를 통해 또 다른 음식의 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 사는 일은 큰일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기쁨 또한 크다. 먹을 것이 풍족하고 다양한 먹거리들이 넘쳐나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맛있는 음식들을 사먹을 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던 시대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어떤 음식들을 어떻게 만들어 먹었을까.
조선 시대에 소는 농업에 무척 중요한 생산도구였기에 소를 잡는 일을 법으로 금했다. 그래서 조선인의 소울푸드는 닭고기였고, 개고기와 회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 대표적인 식도락가로는 '도문대작(屠門大嚼)'을 작성한 허균, 게장이라면 눈이 뒤집어졌던 서거정, 먹는 걸 정말 좋아했던 이색, 조선사에 길이 남을 먹보로 기록된 초정 박제가라고 이 책은 꼽는다.
책을 쭈욱 읽어가다 보면 연암 박지원이 손수 담근 고추장 이야기가 나온다. '이전에 보낸 쇠고기 장볶이는 받아서 아침저녁으로 먹고 있니? 왜 한 번도 좋은지 어떤지 말이 없니? 무람없다, 무람없어. 난 그게 포첩(육포)이나 장조림보다 더 좋은 거 같더라. 고추장은 내가 직접 담근 거다. 맛이 좋은지 어떤지 자세히 말해 주면 앞으로도 계속 보낼지 말지 결정 하겠다.' 현감으로 있던 연암 박지원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다. 내려가서 편지로 자식들에게 자주 잔소리를 해댔고, 찬거리도 직접 만들어 바리바리 싸 보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을 대신해서 자식들에게 아버지가 직접 만든 고추장을 보내 준 모양인데 글자 한 글자 한 글자에서 배어 나오는 서운함과 짜증에 웃음이 난다.
조선 시대 궁중 요리는 숙수를 비롯한 남자들이 주로 맡았다. 태조 이성계의 '전속 셰프'였던 이인수는 조선 개국 뒤 중추원 벼슬까지 얻은 '조선 최초의 요리하는 남자'였다. 세종 때 명나라에서 음식 하는 공녀를 바치라고 했을 때 왕과 신하들이 당황했던 데도 이유가 있었다. "궁중 요리를 하는 건 다 남자라서 여자들이 아는 바가 아닌데?".
또한 의안대군 이화의 아들이자 충청도 병마도절제사였던 이교는 특히 음식 솜씨가 좋아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잔치에 요리할 사람이 없다며 차출되기까지 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한번에 냉면 세 그릇, 만두 백개를 먹는다며 식탐으로 놀림받았던 대식가 박제가는 개를 직접 잡아 삶는 레시피를 개발해 정약용에게 알려줬다. 정약용은 채마밭을 손수 일궜고 된장까지 담근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남자들의 '음식 열정'은 여러 기록에서 발견된다. 특이한 점은, 조선 사람들의 '참외 사랑'이 지극했다는 것이다. 밥 대신 뚝딱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여서 참외 철에 쌀집 매상이 70%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금도 예능 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은 게스트하우스 파티에서 먹을 음식을 위해 '시민세끼'에 나섰다. 유시민은 제주도 흑돼지 수육, 방어 머리 맑은탕, 그리고 방어회를 준비하는데 "셰프가 아니라 어설프다"면서도 커피로 돼지 잡내를 제거하거나 방어회를 뜨는 등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에 황교익도 전복 손질을 도와주며 "집에서도 살림 잘한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이금자(유성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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