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이것은 인간관계와 의사소통에서 누군가에게 '다가가기(connecting)'가 우선적으로 필요함을 배우는 수업시간에 학생이 만든 이야기이다.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이야기(story)는 상대방에게 알리고 싶은 것을 재미있고 생생하게 전달하기 때문에 기억에도 오래 남고 설득력도 있다. 인류가 생긴 이래 이야기하기, 즉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사람과 사람간의 의사소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최근에는 교육이나 산업분야 등에서 유익하고 설득력 있는 수단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인간은 늘 스토리를 찾아 헤매며 의미있는 경험을 하고싶어 하기 때문일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에는 주인공이 있고, 그들이 살고있는 배경이 있으며, 거기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문제나 갈등이 생겨 고조되다가, 결국 해결되면서 결말을 짓는다. 갈등이 전혀 없는 이야기는 지루하고 재미가 없고, 갈등과 해결의 정도에 따라 흥미가 달라지게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므로 문제나 갈등이 생기면 이것을 해결하려고 애쓰게 되고 이 과정이 이야기의 역동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거나 만들어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스스로 답을 찾을 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도 관찰할 수 있어서,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필자도 초등학생들에게 주로 쓰는 간단한 5조각 이야기만들기를 대학 수업에 적용해보았다. 어린아이들이 주로 하는 5조각 이야기를 만들자고 해서 그런가 종이를 접어 5조각 노트를 만들 때까지 학생들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만들어 발표해보자고 하자 그 어느 수업 시간보다도 집중하기 시작했다.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친구, 라면, 고양이, 감자, 엄마, 암탉과 수탉, 고구마와 씨앗, 토끼와 거북이, 내면의 나, 책상나라 종이배 등을 주인공으로 삼아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무작위로 몇 명의 학생을 선택하여 이야기를 발표하도록 했다. 나머지 학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들었고 창의적인 이야기나 기대 이상의 이야기에는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그 날의 학습 주제인 '다가가기'와 관련해서는 크던 작던 용기가 필요하다고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니 신입간호사들이 환자에게 다가가기를 얼마나 어려워하는지 짐작이 된다. 그 시간 조용하고 말 수가 적은 학생들은 동료들에게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보이는 기회가 된 것 같았고, 동물이나 무생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펼치지만 학생들의 마음에 고여 있는 주요 이슈를 드러내기에 충분하였다.
속살을 감추고 검은 고양이 무리에 끼어 사는 하얀 고양이의 불안, 친구만 좋아하는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엄마의 고민, 잃어버린 암탉을 찾는 수탉의 도전, 고구마가 되고픈 감자의 꿈, 내면의 나를 찾아 수없이 많은 문을 열겠다는 의지 등등. 그냥 털어놓기 어려울 마음을 이야기로 쉽게 표현하였다. 어디선가 읽은듯도 싶고 본 것도 같지만 디테일은 그 학생의 것이 틀림없고,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들으면서 얻는 느낌이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스토리텔링을 상담에 활용해 생생한 체험을 털어놓게 할 수 있다. 물론 체험은 순서대로 떠오르지도 않고 예측할 수도 없으며 때로 놀랍고 꼬이고 뒤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함께 하며 이야기를 경청해줄 때 사람들은 관계속에 얽혀있는 자기를 알아채게 된다.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는 중에 순간순간 드러나는 진실을 연결짓는 동안 서서히 잠겨드는 치유의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주고받는 이야기 속의 일상적 편안함도.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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