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기의 행복찾기] 기다림과 만남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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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기의 행복찾기] 기다림과 만남의 행복

박광기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17-11-24 00:00
  • 박광기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박광기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만남
게티 이미지 뱅크
지방자치와 분권화가 아직 미흡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분권보다는 서울과 수도권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세종특별자치시에 정부 주요기관이 이전하고 또 공공기관이 다른 지방으로 이전함에 따라서 새로운 혁신도시들이 생기는 등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서울과 수도권에 경제, 금융, 정치 등 사회 각 분야의 집중은 여전한 실정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방에 이전한 정부부처와 공공기관들이 업무를 위해서 빈번하게 서울로 출장을 가야하고, 여기에 소요되는 행정력과 출장비 등의 예산 또한 만만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나 역시 이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많은 회의와 학회 학술회의 등이 서울에서 개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말입니다. 그래도 요즘은 지방에서 개최되는 회의가 많아 예전에 비해 서울출장의 빈도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중요한 회의와 학술대회는 역시 서울에서 개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동안 서울출장을 참 많이 다녔습니다. 한참 많은 경우는 일주일에 삼사일 서울을 다녀오곤 했습니다. 대전과 서울은 그래도 기차로는 1시간 정도 걸리고 고속버스를 타면 약 1시간 40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KTX가 생기고 얼마 동안 서울출장을 갈 때 기차를 주로 이용했습니다. 기차의 장점은 다 아시다시피 편리한 것도 있지만,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고 빠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집을 유성으로 이사하고 나서는 기차를 타기보다는 고속버스를 많이 이용합니다. 물론 고속버스는 기차에 비해 약 50분정도가 더 소요됩니다. 그러나 가격도 기차에 비해 싸고, 또 역까지 이동하는 거리와 시간 등을 고려하면 서울까지 걸리는 시간은 비슷합니다. 더구나 고속버스는 이동하는 중에 잠을 편하게 잘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지난여름 학회 토론이 있어 서울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학회가 시작하는 시간이 오후라서 학회 시작 전에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신 이 선생님과 점심을 같이 하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점심식사 장소를 물색하다가 결국에 고속터미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버스가 서울 고속터미널에 도착할 때, 도착장소에 그 분이 나와서 반갑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수없이 많이 서울을 다녔지만, 늘 혼자서 도착해서 목적지로 향하는 것에 이미 익숙해 있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기다리고 있는 그 선생님을 보니 정말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어디를 갈 때,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도 가슴 뿌듯한 일입니다. 나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그런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 사실 익숙해 있습니다. 그 여행이 주로 출장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늘 혼자라는 것에 너무나 익숙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와 함께하는 여행과 누군가 나를 기다린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것입니다. 나도 누군가를 기다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애타게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고 있는 것이 오지 않거나, 그 무엇이 사라져 버렸을 때, 실망과 좌절을 한 적도 있습니다. 기다리는 것이 찾아온다는 것은 희망이면서도 기쁨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그 동안 애타게 찾고 있었던 것이거나, 반갑게 맞이할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 때 이 선생님을 고속터미널에서 만나고 오면서 내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 선생에게 기다릴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선생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의문도 가져 봤습니다. 나와 이 선생님과의 만남은 어떤 조건과 그에 부합하는 대가를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그렇게 좋고 기쁘고 반갑기 때문일 것입니다. 적어도 내게 그 분, 이 선생님은 그런 분입니다. 사실 이 선생님과는 학연이나 지연으로 연결되어 있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사회에서 만난 그런 사이입니다. 이 선생님과는 그 동안 해 오던 일을 같이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일을 함께 하면서 또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생긴 그런 분입니다.

흔히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삶에 있어 조금의 거리감이 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이 선생님과 나는 적어도 그런 거리감과 벽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나이는 어리지만 이 선생님께 깍듯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서로에게 존대를 합니다. 이 선생님은 늘 하대를 하라고 하지만, 그래도 존대를 하는 이유는 내가 거리감을 두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선생님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언제가 이 선생님이 내게 '형님 같은 분'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선생님의 이런 말을 들으면서 한편으로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내심 이제는 '형님 같은 분'이 아닌 '형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첫 번의 고속터미널에서의 만남을 이후 종종 갖게 되었습니다. 내가 서울에 갈 때 시간이 서로 맞으면 가끔 만나서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그런 격의 없는 만남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 서울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만나는 경우에는 이 선생님은 터미널에서 버스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면서 환송해 주곤 했습니다. 나이 먹은 남자들이 헤어지면서 환송까지 하는 것이 어색하니 하지 말라고 해도 굳이 버스가 떠날 때가지 자리를 지키곤 했습니다.

이런 모습이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 이런 만남과 헤어짐이 기쁜 것도 사실입니다. 나를 기다려 주는 분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를 반겨주고 기쁘게 환송해주는 분이 있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내게 이런 분이 있다는 것이 내게는 참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분에게 반갑게 기다리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기다리고 만나고 헤어지는 것에서 서로에게 긍정적이라는 점이 좋습니다.

벌써 또 주말입니다. 이번 주말 나를 기다리는 분이 있는 지, 아니면 내가 기다리는 분은 누구인지 한 번 생각하면서 그 분과의 다음 만남을 기다려 보심은 어떨지요?

박광기교수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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