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수민족 취재탐방기] 백족(白族)의 왕국 대리(大理)에 가다

[중국 소수민족 취재탐방기] 백족(白族)의 왕국 대리(大理)에 가다

26. 백족의 왕국

  • 승인 2017-11-2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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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고성 전경/사진=김인환
#50위안(元)짜리 호텔

소수민족 취재를 하던 도중 잠시 쉬고 싶어졌다. 쉰다고 해서 어디에 가만히 누워있으려는 게 아니라 한 번쯤 관광객으로 변신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운남성의 성도인 곤명(昆明)에 도착, 늘 가던 호텔 명도(明都)빈관을 찾았다. 하루 숙박에 50元 균일. 비록 낡았지만 교통이 편리한 중심지에 위치해 있고 유난히 값싸다는 이유로 미국을 비롯, 독일,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등지의 배낭여행객들이 몰리는 호텔이다. 간혹 일본 젊은이들도 보이는데 유럽 쪽 여행객이 북적댈 정도다.

방은 크지만 침대가 하나에 화장실이나 샤워장은 1개 층에 하나 밖에 없다. 물론 수건이나 비누같은 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다소 불편하기는 하지만 이런 대도시에서 하루 숙박비 50元은 눈씻고 봐도 볼 수 없는 곳이다.



북경 쪽에는 일반 숙박업소에도 외국인 숙박이 가능하다는 조례가 발표되었다는 소식이지만 여타 지역에서는 아직도 어림없는 얘기다. 최소한 3성급 호텔이 아니면 외국인 숙박은 불가능하다.

곤명(昆明)에는 운남대학교(云南大?校)가 있고 그 정문 앞 골목에는 식당골목이 있다. 이들 식당 중에 몇 개의 한국식당이 있지만 그 중 『한강』은 최고 인기다.



#안사장 부부와의 우정

식당 주인은 안원환 씨다. 물론 주로 경영은 부인의 몫이고 安사장은 大理에 또 하나의 식당을 경영하고 있어서 왔다갔다 하며 바쁘게 보내는 분이다. 나와는 처음 만나는 날부터 의기가 투합하여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安사장은 현재 곤명 한인 상공회 회장이 되어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자연히 곤명(昆明)이나 대리(大理)에 가면 이들 부부를 만나는 것이 첫 번째 행사처럼 되어 있다. 최근에 안사장은 昆明 중심가에 『한강』이란 대형 음식점을 새로 개업, 식당업으로 성공한 한국인이란 칭송을 듣고 있다. 운남대학 앞의『한강』이 인기를 끄는 이유를 내 나름대로 분석해 보았다. 우선 주인부터 종업원 모두가 친절하다. 그냥 웃는다. 바보처럼 웃는다. 웃는 얼굴에 누가 침 뱉으랴.

그리고 값이 저렴하다. 중국에 있는 한국식당은 대부분 최저가가 25元 또는 30元 정도인데 이곳은 10元짜리가 보통이다. 맛이나 양에서도 뒤지지 않는다.(이렇게 싸고 맛있는데 안오고 배기냐?)란 생각은 아니겠지만, 한국인은 물론 중국인, 일본인, 서양인 등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맛이 있어서, 값이 싸서 오다가, 온 김에 외국인 얼굴도 구경하고 (내 얼굴도 구경시켜 주고) 연이 닿으면 몇 마디 말도 나눠보는 재미로 온다.

남 보다 배가 큰 손님에겐 밥도 한 그릇 더 갖다 주니까 위대(胃大)한 사람에겐 짱이다.

곤명(昆明) 도착 첫 날 밤은 주인장 안원환과 모처럼 한국산 진로소주로 목을 씻었다. 어쩌다 오랫만에 마셔보는 한국산 소주에 오장육부가 다 시원하다.

내가 나타나면 안사장이 나와 마주앉아 일어날 줄 모르니 그 부인의 심사가 별로 편치 않을 터인데도 겉모양은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그냥 반가워 하면서 이번에는 어느 소수민족을 만나고 오시는 길입니까? 시간이 있어야 재밌는 얘기를 들을텐데 하면서,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왔다갔다 하다가는 떨어진 반찬 그릇을 들고 나가 듬뿍듬뿍 새로 담아 보내기도 한다.

"형님! 이번에는 어디로 가시렵니까?"

안사장의 물음이다.

"이번엔 대리(大理)로 가 볼 참이구먼."

"그곳에 가면 소수민족 백족(白族)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번엔 소수민족이 아니여. 관광객으로 품 잡고 가 볼 참이여."

"그것도 좋지요. 연세도 있으신데 좀 쉬시면서 다니시지요. 세월이 좀 먹습니까?"

"연세는 무슨 연세? 나이라고 하면 되지. 그건 그렇고 요건 도야지고기 볶은 것인 모양인데 맛이 있구면!"

"아하! 참 좋아하시네요. 더 가져오라고 할께요."

(사람, 눈치 한 번 빠르네. 김삿갓 잘 멕이면 복 받어. 끄윽! 오늘 진로맛 끝내주는구먼!)

대충 이런 사설 끝에 이튿날 대망의 대리행(大理行)을 결심케 되었다.



#배낭족들만의 즐거운 파티

안원환 사장과 헤어져 숙소인 명도(明都)호텔로 돌아온 시간은 밤 12시가 거의 다 될 쯤이었다. 그러나 호텔 내에선 밤중이 아니다. 층마다 중간 지점에는 휴식공간이 있고 간단한 음료수며 일용품을 파는 판매대도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 각 국의 배낭여행객들이 어울려 시끌벅쩍 친교의 시간이 한창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쪽 친구들이 조금 시끄러운 편이다. 한 손에는 수첩을 들고 서로의 주소와 이름을 적으며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고, 몇 명이 마주 앉아 맥주를 나눠 마시며 얘기 중인 사람들.

그런가하면 한 쪽에선 소형녹음기를 틀어놓고 댄스파티를 열고 있다. 아무리 둘러봐도 동양인은 나 혼자 뿐이다. 오늘 오후에 분명히 두 명의 20대 한국인을 로비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었고, 이곳에 들었는 줄 알았는데 보이질 않는다. 일찍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 유럽인들은 나를 보자마자 반색을 하며 코리안! 코리안! 외쳐대기도 한다.

슬그머니 내 방으로 사라지기엔 이미 틀려 먹었다.

어느새 이탈리아 친구가 맥주 캔 하나를 건네며 버릇도 없이 내 어깨위로 팔을 두른다. 한 층 모두가 외국여행객들뿐이니 간섭하는 사람도 없다. 이미『한강』에서 安사장과 진로 몇 병을 깐 후인지라 취기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들과 어울려 맥주를 시작했다. 새벽 5시가 될 무렵, 하나 둘 방으로 돌아가고 어떤 친구는 휴게실에서 그냥 대자(大字)로 누워 버리기도 한다.

일찍 방으로 돌아간 팀들은 여자들이 대부분이다. 끝까지 내 옆에서 조용히 맥주잔을 홀짝거리던 30대 독일 친구(겉보기엔 50대로 보인다.)가 묻는다. 어디로 떠날 작정이냐고.

날이 밝는대로 기차역으로 가서 대리행표를 끊을 생각이라고 하니까, 자기도 대리로 가려던 참이었는데 잘 되었다며 동행하자고 한다. OK!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악수를 나누고 방으로 돌아갔다. 다시 수건과 비누를 들고나와 공동샤워장으로 갔다. 눈에 뜨일만큼 떠들어 대던 이탈리아 친구는 발가벗은 채 샤워를 하다 말고 그 자리에 주저 않은 모습으로 잠들어 있다.(카메라를 들고 나왔으면 좋은 작품감인 걸!) 발로 툭툭 걷어찼더니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더니 씨익 웃으며 일아난다.



#돈 아껴쓰는 유럽 여행객들

찬물로 온 몸을 씻고 머리도 감았다. 마음 같아서는 한 잠 자고 떠나고 싶지만 기차시간이 확인 안 된 상태여서 먼저 역에 갔다가 요행히 차 시간이 맞으면 차 안에서 눈을 부치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서둘렀다.

한 시간 후 배낭을 맨 채 1층 카운터로 내려와 계산을 끝내려는데 약속한 독일친구도 내려왔다. 그런데 혼자인줄 알았더니 옆에 여자친구가 있다. 키가 늘씬한 금발의 미녀였다. 여행객 차림의 수수한 복장이 오히려 더 섹시하게 보일만큼 멋있어 보인다.

제 여자친구를 소개하며 거침없이 갓 결혼한 두 번째 부인이고, 지금 이곳에 온 것은 결혼여행이라나?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표현에 듣는 쪽이 더 당혹스럽다.

신혼 여행이라고 하면 국내 외 어디를 가나 최고급 호텔에 머물러야 하고, 돈을 물쓰듯 써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의 일부 젊은이들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사람들이 유럽인들이다. 한마디로 현실적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어제 오후에 이곳에 묵으려던 한국의 배낭족들은 이 호텔이 후진 곳이라고 다른 곳으로 갔다는 얘기였다. 간혹 관광지에서 한국의 젊은이들과 만나곤 했는데 말이 배낭족이지 비싼 호텔만 찾아다니고 있어서 쯧쯧! 혀를 찼던 일이 한 두번이 아니다.

호텔 앞에서 역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는데 독일친구가 내 소매를 잡고 흔들어댄다.

저 앞 정류소에 가면 버스가 있다고 하는데 택시 탈 필요없잖느냐는 얘기였다.

앗차! 나도 한 방 먹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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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고성 입구/사진=김인환
#역사의 도시 대리고성(大理古城)에 도착

몽고의 징키스칸이 중국을 통일하던 시기에 그 3대 왕까지 세습되어오던 찬란한 大理왕국은 멸망했지만 당시의 일부 모습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또한 百族의 문화예술도 계승되어 오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대리석이란 돌은 바로 이 고장의 특산품이기도 하다. 단단하면서도 섬세하고 돌 자체의 무늬가 아름다워 가공하지 않고 그냥 벽에 붙여도 하나의 벽화각 되었던 돌이 바로 이 지방의 대리석이다.

대리에서 나온다고해서 붙여진 이름 대리석.

이미 최고급 건축재로서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데, 문헌을 찾아보면 그 역사가 나오겠지만 수 백 년, 아니 수 천 년 전부터 이곳의 아름답고도 단단한 돌이 우리나라로 건너 왔다고 생각해보면 양 국의 교역 역사가 얼마나 장구한 세월을 이어왔는지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 십 명이나 되는 한국의 석재상들이 이곳 대리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뒤늦게 들은 얘기다.

大理에 도착할 무렵은 서둘러 숙소를 정해야 할 만큼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독일인 부부와 사전에 얘기하기를 대리에 가면 大理古城(따리꾸청이라 부른다.)이 있고, 창산(蒼山)이 있으며, 얼하이(?海)라는 대표적 관광지를 돌아보고자 했었다.

종점에 내려 먼저 숙소를 해결해야겠기에 다리고성으로 가기로 했다.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몰라 택시를 탈 것인가, 버스편이 있는가 망설이고 있는데 독일인 친구가 앞장서서 버스정류장을 향한다. 그리고 나보다 더 엉터리 중국어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뭐라고 묻는 눈치다. 그러더니 밝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길 건너편 정류소에 가면 대리고성행 시내버스가 있다며 앞장을 선다.

말로만 듣던 독일인들의 근검 절약 정신을 실제로 보는 느낌이다. 시내버스가 곧 왔다. 이정표를 보니 大理古城이 종점으로 되어있다. 요금은 일인당 1元.

불과 10분 거리다. 大理도심지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모습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몇 명의 꾸냥들이 마치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듯 반기며 소매를 끈다.

깨끗하고 싼 방이 있다며 잡아끄는데 이들의 유객행위는 가히 수준급이다. 독일인 부부는 내가 중국말을 조금 더 잘 하니까 이 문제에 관한 상담을 나에게 맡기겠다며 한 발 물러선다.

그러나 大理古城 안에는 쿤밍(昆明)의 안원한사장이 경영하는 단 하나의 한국식당이 있고 방 문제 역시 그 쪽에서 의논키로 되어 있기에 꾸냥에게 까오리띵(高麗停)이란 식당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식사를 할 생각이면 그보다 더 좋은 집을 안내하겠다면서 쉬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그냥 고성(古城)안으로 진입해 볼 수 밖에. 독일인 부부는 고개를 갸웃뚱 거리며 내 뒤를 줄레줄레 따라온다. 古城 안은 어둠이 짙어 질수록 불야성을 이루기 시작한다. 중국이 아닌 색다른 이국지대에 들어선 느낌이다.



#짠돌이 독일인 부부

고려정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大理古城이 아무리 넓고 크다고 해도 한국 요리집은 한 곳 밖에 없었으므로 두 번쯤 길을 묻고서 곧 발견할 수 있었다. 古城 중간 쯤에 있는 고려정은 결코 큰 식당은 아니었지만 실내 분위기가 깔끔하다는 첫 인상을 받았다.

사장(安元?)은 현재 昆明에 있기 때문에 굳이 찾을 필요는 없는 일.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국 여자가 지배인 격으로 있는 것 같았다.

시장하던 차에 먼저 된장찌개를 시켰다.

독일인 부부는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 보더니 이것 저것 설명을 해 달라고 한다.

결국 그들은 파전으로 결정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식당 안 쪽에는 2층으로 된 방들이 20여 개 있었다. 하루 저녁 묵는 비용은 방 1개에 60元. 비교적 깨끗하고 조용한 분위기여서 맘놓고 며칠 있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독일인 부부였다. 다른 방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보았는데 잠시 후에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들기기에 문을 열어보니까 독일인 부부가 배낭을 짊어진 채 기다리고 있다.

왠 일이냐고 물으니, 이유는 설명치 않고 자기들은 다른 숙소를 찾아 나서는 길이라고만 대답한다. 내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그들은 성큼 성큼 1층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된 게 틀림 없는데 무슨 까닭인지 알 수가 없다. 엉겁결에 내일 다시 보자는 인사로 그들을 내 보내고 숙소 종업원을 찾았다. 저 사람들이 왜 들지 않고 나가는 것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더니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하룻밤 60元이 너무 비싸다.

10元 쯤 깎아 줄 수 없느냐기에 안 된다고 했더니 곧장 행동에 옮긴 것 뿐이라는 얘기였다. 구두쇠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그냥 깍쟁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인지? 자기들 저녁식사비도 내가 지불했건만, 잘 먹었다는 인사 한 마디로 저녁값을 대신한 독일인 부부들이 여관비 10元때문에 캄캄한 밤중에 나가버렸으니 할 말이 없다.



#외국 여행객들의 검소함

다시 방으로 들어와 생각해 보니 걱정이 앞선다. 중국말도 서툰 저들이 이 밤중에 혹시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서둘러 뛰어나갔다.

골목 골목마다 인파가 물결처럼 출렁인다. 어느 지역은 사람들을 헤집고 지나가야 할 만큼 북적댄다. 흰둥이, 검둥이, 황색둥이들이 세계 각 처에서 몰려와 이 신비한 땅 중국, 그 가운데서도 역사의 뒤안길, 사라져버린 소왕국의 문물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요리집, 맥주집 등 있을 것은 다 있다.

그런데 아무리 이 골목 저 골목 뛰어다녀도 내가 찾는 독일인 부부는 찾을 수가 없었다. 터덜 터덜 지친 몸으로 숙소에 돌아왔는데 식당 지배인이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방금 독일인 부부에게서 나를 찾는 전화가 왔었다는 것이다. 무슨 얘기더냐고 물으니까 게스트 하우스에 숙소를 정했으니 걱정 말라는 얘기였다. (녀석들! 그래도 내가 걱정할까봐 예의는 갖추는 구먼!) 지배인더러 게스트하우스는 어떤 형태냐고 물었더니, 그녀 역시 잘은 모르지만 한 방에 4명 또는 8명이 잘 수 있고, 비용은 1인당 1박에 20元이라는 것 밖에 자세한 건 모른다는 대답.

그렇다면 둘이 오붓하게 독방 쓰고 60元이 낫다는 우리들 생각과 여럿이 자더라도 하룻밤엔 20元이 절약된다는 생각이 어디가 더 바람직한 것인지 갑자기 헛갈린다. 이 문제는 우리네 젊은이들이 꼭 한 번쯤은 생각해보고 지나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곳 저곳 관광지에서 많은 외국인들을 만나 보았지만 이들의 씀씀이는 놀라울 정도로 구두쇠 작전들이었다. 한마디로 평가한다면 더 넓은 세계,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기 위해 여행길에 나선 것이지, 잘 먹고 편하며 흥청망청 돈 쓰기 위해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행목적이 뚜렷했고 절약정신이 온 몸에 배어있는 사람들이었다.

어쩌다 기분난다고 맥주 한 병 마시는 사람이 없고, 만나서 기쁘다고 먼저 한 턱 쏘겠다는 사람도 구경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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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위에서 공연준비중인 백족 청년들/사진=김인환
#관광객 밀려드는 대리고성(大理古城)

위에서도 소개한 바 있지만, 대리(大理)는 몽고에 의해 멸망된 백족(白族)의 수도였다. 흔히 대리국으로 불리워지고 있지만 당대(唐代)에는 남조국이 본명.

해발 2000m 정도의 고지대라고는 하지만 갑자기 경사가 가파르게 올라간 지역이 아니어서 고지대 기분은 전혀 나지 않는다. 대리고성이라고 비석이 서 있는 석축 정문을 들어서면 꾸불꾸불 고성(古城)마을이 이어진다. 2층으로 된 석조 건물들은 하나같이 옛날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살려 놓았기 때문에 조금은 우중충 하지만 고색창연한 멋도 있다.

2층은 살림집으로 쓰고 1층은 모두 점포다. 집집마다 점포 앞으로는 도랑물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찰랑찰랑 맑은 물이 흐른다.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느 곳으로 흘러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손도 씻고 발을 담그고 싶을 만큼 깨끗하기만 하다.

점포마다 소수민족들의 전통의상이며 악세사리 그리고 일반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온갖 상품들이 가득 가득하다. 눈요기만으로도 신기한 물건들이다.

국내 외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털기에 혈안이 된 상인들 역시 소수민족들이 대부분이다. 구경하면서 물건에 한 번이라도 손을 댓다 하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악착 같은 상술이다. 가격도 그다지 비싼 편이 아니어서 아무리 짠돌이 유럽사람이라도 유혹에 끌릴 수 밖에 없다. 가히 쇼핑천국이라 할 만 하다.

낮에는 낮대로 관광객의 물결이 밀어 닥치고 밤이면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며 실내, 실외 구별없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

지구촌 한 가족을 이루는 곳이 바로 대리고성(大理古城)이다. 국적과 관계없이 젊은 남녀들은 금방 짝을 이루기도 하고 그룹미팅에 돌입하기도 한다. 3일동안 대리고성(大理古城)에 머물면서 낮과 밤이 구별되지 않는 세계인의 한마당에 어울려 볼 수 있었다.



#바다 같은 호수 '이해'

같이 도착했던 독일인 부부가 내일은 '이해'(중국 어로는 얼하이)로 떠나보지 않겠느냐고 주문하지 않았다면 며칠 쯤 더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옛날에는 엽유택이라고 불리웠다는 얼하이 호수.

호수 모양이 사람의 귀와 같이 생겼고, 바다처럼 넓고 크다는 뜻에서 '이해'로 부르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막상 이곳을 다녀온 느낌으로는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바다를 동경했으면 바다 해(海)자를 붙였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호수가 있는 곳까지는 다시 시내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역시 요금은 1元. 끝없이 펼쳐진 바다처럼 보이는 호수. 호수가에는 바다에서와 똑같은 부두가 있고 어림짐작에도 1천톤 급은 실히 될 만큼의 커다란 배 세 척이 정박해 있다. 입구에서 승선표를 구입해야 배에 오를 수 있는데 표값이 80元. 만만찮은 가격이다.

독일인 부부는 예의 그 구두쇠 근성을 발휘, 매표구 앞에서 표값을 깎아 달라고 조르다가 여의치 않으니까 단체표 값은 얼마냐고 묻는다. 20명 이상이라야 단체로 인정한다는 대답을 듣더니 지금부터 문 앞에 서서 표사러 오는 사람 20명을 모아보면 어떻겠느냐고 묻는다.

중국말도 잘 못하는 네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으니 그 일은 내가 하면 되지 않느냐고 은근슬쩍 떠 넘기려 든다. 나 역시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는 어렵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관리인들이 보면 그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조금 비싸더라도 그냥 표를 끊자. 한참을 설득 아닌 설득 끝에 그들도 표를 끊었다.

배에 올라가자 이미 1층과 2층으로 된 좌석이 거의 만석이다. 절반쯤은 중국인이고 그 나머지는 우리들처럼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소수민족 백족의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은 꾸냥들이 손님들을 안내하고 있는데 하나같이 미인들이다. 그리고 이미 훈련을 받았겠지만 한없이 생글거리며 웃는 폼이 여간 귀엽지가 않다.

게다가 꾸냥들 가운데 몇 명은 영어 솜씨도 대단했다. 또 몇 명은 안녕하십니까? 감사합니다. 하며 몇 토막 한국말도 할 줄 안다. 한국 관광객이 얼마나 많이 왔다갔는지 짐작케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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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 앞에서 백족 처녀들/사진=김인환
#바다 같은 호수의 유람선을 타고

마치 바다에서처럼 붕-붕 뱃고동 소리를 울리며 유람선은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출발한다. 망망한 바다 아닌 호수. 호수 양 쪽으로는 멀리 산들이 올망졸망 따라오고 낮은 집들이 고만고만하게 평화스럽게 마을을 이루고 있다.

배 안에서는 백족(白族) 특유의 전통음악이 흐르며, 한 쪽에 준비된 무대 위로 화려한 전통복장 차림의 남녀 소수민족 청년들이 공연을 시작한다.

승선한 사람들의 시선이 무대 쪽으로 쏠리고 방실방실 웃음을 날리며 예쁜 꾸냥들이 차 주전자와 찻잔을 손님들에게 돌리기 시작한다.

사회자는 마이크를 잡고 열심히 白族 전통 3도차(三道茶)설명이 한창이다. 귀한 손님이 찾아왔을 때 대접한다는 백족(白族)의 3도차.

첫 잔의 맛은 쓰고, 두 번째 잔은 달콤하며, 세 번째 잔은 식사 후 그 뒷 맛을 음미케 한다는 회미차(回味茶)가 그 순서였는데 정말 쓰고 달며 묘한 맛이 오랫동안 입안에 맴돌고 있다.

가정에서는 가장 높은 어른이 차를 끓이되 어린 소년 소녀가 찻잔을 나르는 풍습이 있다는 3도차(三道茶)의 의미가 또 오묘하다. 첫 잔의 쓴 맛은 고생스럽고 힘든 현실을 뜻하며, 두 번째 감미로운 맛은 이제 그 모든 역경을 해소시켰다는 뜻이며, 세 번째의 회미차의 맛은 모든 고통과 어려웠던 일들을 떨치고 일어나 새롭게 인생을 개척해 나간다는 의지가 서려 있다고 한다. 이들 소수민족들은 차(茶) 한 잔을 마셔도 이렇게 거창한(?) 의미를 붙여가며 음미해 가면서 마신다. 멋이라고 해도 옳을 것 같고, 풍류라고 해도 맞을 것 같다. 뒷날 취재를 통해 안 사실이지만 소수민족 백족(白族)의 전통 3도차(三道茶)에는 재밌는 유래가 전해져 오고 있었다.

(다음 주에 계속)

김인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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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환 시인은 시집<님의 마음에:1968년> (비가 내리는 :1970년) (다시 한밤에 돌아와:1973년) (시음집:1978년:한국 최초의 음반시집) (바람의 노래:1992년)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98년) (낙엽이 되어보지 못한 그대는;2013년) 등의 시집과 방송칼럼집 (내일을 향하여), 시론집으로 (마두금을 어디서 찾나) 등이 있다. 1972년 부산 최초의 시 전문지를 발간한 바 있으며 MBC, KBS, 한국경제 등에서 30여 년 간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부산 크리스천 문인협회 회장, 중국 광동성 한인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 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국제 펜클럽, 대전 펜클럽 회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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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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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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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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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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