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연의 산성 이야기] 난행량(難行梁) 험한 물결은 역사를 품고

[조영연의 산성 이야기] 난행량(難行梁) 험한 물결은 역사를 품고

제21회 안흥진성(安興鎭城)과 소근진성(所斤鎭城)

  • 승인 2017-11-2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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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진성에서 본 안흥량/사진=조영연
전라도에서 개성이나 당항성 방면 통행로 가운데 안흥으로부터 당진 난지도를 통과하는 길은 대단히 험난한 수로로 정평이 났다. 난지도 앞을 거쳐 온 이들은 안흥진성 앞 신진도, 마도 사이의 좁은 목쟁이를 통과해야 했다. 차가 많은 조수간만, 좁은 길목에서는 불가측의 일들이 만았다. 마도 부근 등 해안은 배들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조운선과 무역선들이 난파를 당한 곳으로 고려시대의 수중난파선들이 심심찮게 발견되는 곳이다(고려선의 구조와 조선기술, 곽유석. 2012.p32).

섬과 육지 사이 불과 수백 미터 정도의 좁은 뱃길이지만 반도 돌출부의 난지도(蘭芝島 일명 難知島-당진)와 더불어 얼마나 험했으면 과거 난행량(難行梁)이라 불렸을까. 그래서 이 곳을 피하기 위해 굴포 지역에 운하를 파려고까지 여러 번 시도한 적들도 있었다. 울돌목 등과 더불어 물살 세기로 유명하여 기피하는 삼대 험로 중 하나란다. 안행량(安行梁), 안흥진은 그것을 미화시켜 붙인 이름인 듯하다. 우리말에는 두려운 존재를 오히려 반대의 이름을 붙였다. 조선시대에는 수군첨절제사가 지휘하는 수군진(水軍鎭)을 두고, 잦았던 왜구의 준동에 대비하여 효종 때 축조했다. 거의 섬과 같은 위치로 신진도와 사이 좁은 바닷목의 동쪽에 우뚝 서서 물길 험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어 수로를 제어하는 데는 아주 알맞은 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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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진성 내부와 남문/사진=조영연
그러면서도 서쪽을 제외하고는 성벽에 둘러싸인 분지 속 포곡식 성으로 바다 쪽에서는 전혀 노출되지 않아 성으로서의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북벽부에 원형의 성벽이 극히 일부 남았을 뿐이다. 현재 서문과 그에 이어진 일부 성벽은 복원되고 동서남북 네개의 문이 남았으나 그나마도 동문만은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점령하여 접근이 허락되지 않는다. 복원된 남, 북,서문만 문루가 있을 뿐 나머지의 문루는 모두 사라졌다. 내부에 오래된 우물과 민가들이 있을 뿐 어떤 시설자리도 불분명한 상태다. 동벽 밖에는 과거 각종 무기를 시험하던 시설들이 포진해 있어 접근불가다. 머지않은 북쪽 해안에 역시 조선 세조때 가로림만에 축조한 또 하나의 진성(鎭城) 소근진성(所斤鎭城)이 있다. 여기서는 당진포와 험한 뱃길 난지도까지 관할했다. 이렇게 두 개의 수군진(鎭)을 두고 진성을 축조했다는 점은 이 곳이 얼마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교통로였던가를 짐작게 한다. 이 진성들은 조선시대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지만 그 정도 중요한 곳이라면 그 고려는 물론 이전 삼국시대에도 어떤 형태로든 방어시설이 설치됐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 외에 시대 미상의 10여 기의 크고 작은 산성과 진성들이 가로림만으로부터 안면도 끝까지 들쭉날쭉한 해안가 곳곳에 포진돼 있다.

최근에 부근 마도 앞에서 고대 난파선 마도4호선이 발굴됐다. 조선초 나주에서 한양 광흥창으로 오가던 조운선이었다. 분청사기, 수돌, 곡물을 담은 섬, 목간 등이 발견됐다. 이런 사정은 나주 광흥창, 내섬(內贍-궁궐에 바치는 토산품 등을 다루던 관청) 같은 목간의 기록들에 의해 밝혀졌다. 조선시대 조운선의 실체가 확인된 계기가 됐다. 마도1호선에서는 조정의 고관에게 보내는 죽간과 고려청자, 및 금속류 등이 나왔으며 선체의 일부 부재들도 발굴돼 조선선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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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진성 전경/사진=조영연
뱃사공들이 혀를 내두르고 기피할 정도로 험하다던 뱃길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인흥항은 오늘날 미식가들이 북적대는 관광지로 이미지 대변신을 했다. 최근에는 안흥항과 신진도 남단을 연결하는 시원스럽고 멋진 다리가 생겼다. 잘 정비된 산성 남문에서 발아래로 한눈에 굽어보인다. S자로 굽이지며 푸른 바다위에 떠 있는 이 사장교는 낮풍경도 볼 만하지만 특히 저녁 무렵 황금빛 노을에 물든 바다와 어울릴 때가 더욱 일품이다. 안흥항에서 신진도, 마도까지는 각각 다리로 연결돼 있어 그 험한 수로를 차로 건널 수 있다. 마도 북단 천애 절벽에서 바라보는 역사의 수장고, 겉으로는 그 험하다던 그곳도 그저 푸르고 잔잔한 예삿바다다. 다만 작은 부표 하나가 배들의 공동묘지임을 알려 줄 뿐 수많은 배와 함께 잠들어 있을 고혼들의 사연을 품에 안고 바다는 말이 없다.



조영연 / '시간따라 길따라 다시 밟는 산성과 백제 뒷이야기' 저자

조영연-산성필자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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