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각 사무차장 제갈벽호에게 보고가 올라갔다. 제갈벽호는 회의를 소집했다.
"마탁소 부장, 결재할 안건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 아들한테서 예리코의 장미가 전시 가능하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예리코의 장미라니?"
마탁소는 예리코의 장미에 대해 간부들에게 상세히 설명하였다. 모두들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정말입니까 그런 꽃이 있다는 것이? 그 꽃이 안면도에 올 수 있다니, 정말 경사입니다. 주 부장이 말하는 그 복잡한 그 기계는 무엇이죠?"
주곤중은 플라워텔레스코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간부들은 또 서로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꽃과 대화를 한다고요? 정말 꽃이 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까? 거짓말 같군요. 아무튼 낭보중의 낭보군요. 또 보고할 사항은?"
자문역 조정재가 말했다.
"우선 중국에서 답이 왔습니다. 곤명시에 있는 무초를 출품해 준다는군요."
"무초라. 춤춘다는 무초(舞草)입니까?"
"음악을 틀면 꽃이 움직입니다. 춤추듯 움직인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음향의 진동에 의해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므로, 유리관에 밀폐시켜 진동이 전달되지 않도록 하여 정말 소리에 따라 춤을 추는 모습이 연출되도록 전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실제로 춤을 춘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실제로 춤을 춥니다. 운남성 곤명시에서는 옛날부터 이 꽃을 신비하게 여겨 황후에 바쳤던 꽃입니다."
무초 |
밀레니엄 홀딩 202사 대표 김광선이 일어났다.
"프랑스 자연사박물관의 식물원장으로부터 회신이 왔습니다. 꽃의 오감을 표현하는 적절한 꽃들을 나름대로 알아보고 있는데 우리 전시회의 성격과 맞을지는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무슨 꽃 종류 입니까? 목록은 왔습니까?"
"예, 우선 네펜데스를 비롯한 희귀 식충식물종류를 53가지를 보내겠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이제까지 국제전시회에서는 가장 많은 종류가 전시되는 박람회가 될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에 더해 미모사나 백일홍 종류로 손으로 만지면 잎을 움츠리는 식물을 5종류 보내겠다고 합니다.
또 곤충은 사람이 못 보는 색깔을 구분한다는 점에 착안해 자외선과 적외선으로 꽃의 색깔을 보여주는 스펙트럼 장치를 부착한 기계를 보내겠다고 합니다. 이 기계를 통해 보면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꽃의 또 다른 색깔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프랑스 자연사박물관에서 보내기로 한 전시물은 다양했다.
그 중에는 타닌류의 독소를 뿜어내 동물을 물리치는 아프리카 아카시아, 뽕나무가 함유하고 있는 타닌성분의 분석자료와 동물에게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보여주는 데이터도 포함돼 있었다.
아울러 삼림욕 등에 유용하게 쓰이는 살균물질인 피톤치드나 테르펜을 방출하는 소나무와 함께 이러한 물질이 방출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실험용 기자재를 보내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도록 배려했다.
건강에 좋은 식용 꽃, 라벤더, 라일락, 카틀레야나 덴드로븀, 베고니아, 샤프란, 멜론꽃, 카네이션 등 15가지 정도의 꽃을 보내기로 했다.
"참, 황금꽃 제작에 대해 아이디어는 없습니까?"
제갈벽호의 물음에 모두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도 조정재가 나섰다.
"황금꽃이 아니고 개막식 행사에 관해서인데요. 프랑스의 배상진씨와 최근 연락이 되어 긴밀히 논의한 것이 있습니다. 별도 보고 드리겠습니다."
월드컵 심포니에 대한 조정재의 보고를 받은 제갈벽호는 이 역시 엄청난 계획이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황금꽃은 잘 진행되고 있소? 소재를 정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는데, 정해졌소?"
"예, 아직 논의 중에 있습니다. 곧 보고 드리겠습니다."
위원장 방을 나온 제갈벽호는 부리나케 황금꽃 제작을 의뢰한 최순달 교수를 찾았다.
"솔직히 고민입니다. 황금꽃을 무슨 꽃으로 해야 할지 아이디어가 영 떠오르지를 않습니다."
"컨셉은?"
"아무튼 황금이란 변하지 않고 귀한 것의 상징이니까 영원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공감이 갈 그런 꽃이어야 하는데, 무엇을 대상으로 해 봐도 적당한 게 없습니다."
"영원히 아름다운 꽃이라, 그런 꽃이 있소?"
"그러니 고민입니다."
"그런 꽃은 없소. 나 같이 서양미술을 한 사람 입장에서 보면 꽃은 늘 사라지는 것을 뜻해왔지 영원으로 보아 온 적은 없소.
독화법, 그림을 읽는 법 말이요, 그 것으로 볼 때 꽃은 허무와 가식으로 해석하는 법입니다.
밤거리의 창부는 항상 장미를 들고 있지 않소?
동양에서도 화무십일홍이라, 꽃은 열흘 이상 가는 것은 없다고 했소.
영원히 아름다운 꽃? 그런 것은 없는 법 아니오?
그런데 영원히 아름다운 황금꽃을 조각하라니, 참으로 어렵군요."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글쎄요, 헌데 꽃은 결국 뭐요, 씨를 만들려고 있는 것 아니요? 꽃은 허무해도 씨는 영원한 것 아닙니까?"
제갈벽호는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았다. 회의를 소집해야겠다. 이 문제를 결말짓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간이 없었다.
제갈벽호 차장, 조정재 자문역, 김광선 대표, 주곤중 부장, 마탁소 부장 이렇게 주요 간부들이 다 모였다.
황금꽃.
만설이 난무했다. 결론이 날 것 같지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제갈벽호가 불쑥 말했다.
"헌데 꽃은 결국 뭐요, 씨를 만들려고 있는 것 아니요? 꽃은 허무해도 씨는 영원한 것 아닙니까? 대대손손. 뭐 이런 관점에서 아이디어는 없을까?"
브레인스토밍 회의는 방향을 선회했다. 간부들은 또 다시 열을 품어 대었다. 긴 회의가 끝나자 모처럼 참석자들은 얼굴에 희색이 돌며, 즉석에서 회식을 하자고 결의를 했다. 소주 한 잔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황금꽃의 결론을 낸 제갈벽호는 오랜 체증이 가시듯 마음이 가벼웠다.
3일 뒤 검은색 승용차 한대와 경찰 호위차 한대가 서울대 미대 건물로 미끄러지듯 빨려 들어갔다. 황금 금괴 2개를 싣고.
(계속)
우보 최민호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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