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우난순 기자 |
청운의 꿈을 꿔야 할 청소년들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되기를 꿈꾼다. 이 사회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부류이기 때문이다. 소위 톱스타들은 재벌 못지 않은 부를 누린다. 매스컴에 비쳐지는 상위 1%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은 몇 십억 짜리 호화 저택에서 럭셔리 카를 몇 대씩 굴리고 빌딩 몇채를 보유하는 그야말로 상류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오죽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란 우스갯소리가 나오겠는가. 전지현이나 김태희, 지드레곤, 호날두를 마냥 부러워하는 아이들을 탓할 수도 없다. 자본주의는 돈을 숭배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마르크스의 외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본은 더욱 활개 친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트럼프란 위인이 누군가. 가진 건 돈밖에 없는 천박한 부동산업자였는데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이다. 미국 버블경제 붕괴로 뿔난 민심의 어리석은 선택의 결과이지만 억세게 운 좋은 이 불한당 같은 사내가 지금 세계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 늘 그렇지만 한국은 동북아의 신 '그레이트 게임'의 한복판에서 트럼프의 일거수일투족에 전전긍긍하는 신세다. 트럼프의 셈법은 돈이다. 과연 한반도에서 자신이 취할 이득이 얼마나 될까 머리를 굴리는 참이다.
예술가도 예외는 아니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노골적으로 돈을 밝혔다. 속물 근성이 투철한 발자크는 사치를 즐겨 평생 빚에 허덕였다. 그가 빚에서 헤어나고 안락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부유한 귀족 여성과 결혼하는 거였다. 돈만 많다면 나이 많은 연상도 미망인도 가리지 않았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닌지라 발자크는 빚을 갚기 위해 커피를 마셔가며 밤새도록 글을 썼다. 돈을 위해 미친 듯이 쓴 글이 훗날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는 게 아이러니다.
예술과 돈만큼 긴밀한 연결고리도 없다. 예술가한테 예술은 지고의 선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대중에게 인정받는 척도는 작품에 매겨지는 가격이다. 영민한 피카소는 대중의 심리를 읽는 기술이 뛰어나 평생을 풍족하게 살았지만 죽어서야 비로소 빛을 본 고흐는 살아 생전엔 가난에 시달렸다. 둘 다 화가로서의 재능은 뛰어났지만 피카소는 돈의 흐름을 천부적으로 읽을 줄 아는 돈의 귀재였다. 얼마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구세주)'가 우리 돈으로 5000억원에 낙찰됐다. 그림 한 점이 천문학적으로 팔리는 세상이다. 2007년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삼성의 비자금 조성에 이용돼 물의를 빚은 것도 예술작품이 단순히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부자들의 재산축적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황금만능주의가 판치는 지금, 인간은 돈을 좇는데 혈안이 됐다. 돈이 전부인 세상에서 최순실 딸 정유라 말마따나 돈이 실력이고 능력의 잣대가 된다. 돈이 없으면 행복하기 어렵다. 세상의 갑과 을의 기준점은 돈의 유무다. 하버드· 옥스퍼드 박사학위든, SKY를 나왔든 망나니 김동선 앞에선 비굴한 개가 되어야 한다. 부와 권력은 일맥 상통한다. 부자는 다른 사람을 고용하거나 해고할 수 있다. 또 승진시키거나 좌천시킬 수도 있다. 부자는 인적·물적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능력자다. 반면 가난은 재앙에 버금간다. 가난한 자는 춥고 배고프고 아파도 보살핌을 받을 수 없다. 가난은 사회적 낙인과 같아서 멸시와 억압, 치욕, 굴욕을 감내해야 한다. 그것이 갖지 못한 자의 운명이다.
돈이면 다 되는 더러운 세상, 오늘도 로또를 산다. 숫자를 사인펜으로 표시하며 간절히 기도한다. 1등 당첨을 염원하며 단 며칠 간 행복감에 젖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10억일까, 15억일까? 한 50억쯤 되면 더 좋겠는데.이 돈으로 무얼 할까?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에서 맥베스 부인은 "희망을 이루어도 만족은 없다"고 통탄했다. 이건 가져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얘기다. 하나를 얻으면 두 개를 갖고 싶고 열 개를 얻으면 백 개를 갖고 싶은 게 인간의 사특한 생각이다. 욕망은 끝이 없다는 걸 셰익스피어만 아는 게 아니다. 수단을 목적으로 삼는 건 위험하지만 한번 원없이 만져보고 싶은 게 돈이다. 우스운가?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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