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톡] 산수(傘壽)의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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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톡] 산수(傘壽)의 문턱에서

  • 승인 2017-11-22 10:31
  • 수정 2017-11-23 18:11
  • 김용복 극작가김용복 극작가
2017년 11월 14일(화)

권선택 대전시장이 대법원 판결로 시장직에서 물러난 날이다. 평소에 그를 존경했던 나는 그 소식을 접하자 온종일 우울한 가운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삶의 철학을 생각하게 되었다.

젊었을 때는 하고자 하는 욕망이 불타올라 앞만 보고 살게 되고 늙으면 솔로몬처럼 지혜로 산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이기 때문에 욕망이 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는 것이다.

늙어도 내일에의 욕망은 있는 것. 그래야 병도 물리칠 수 있고 주변 사람들과 인간관계도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월만 보내는 노년의 삶이 스스로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내 나이 벌써 산수(傘壽·80세)의 문턱.

이 겨울만 넘기면 다가오는 1년을 더 살 수 있다는데 권 시장의 눈물을 보며 현자의 말씀이 떠오른다.

「길은 걸어 가봐야 알게 되고, 산은 올라 가봐야 험한 줄 알게 된다.」

그래, 그동안 수없이 들어온 말이지만 왜 여태 그걸 깨닫지 못했지? 이 바보.

「길이 멀어지면 말[馬]의 힘을 깨닫게 되고, 산이 높아지면 공기의 소중함도 깨닫게 된다.」

-그래, 이 말도 맞는 말이야. 나만 모르고 동분서주(東奔西走)했던 거야.-

「사람은 겪어 보아야 그 사람을 알게 되고, 긴 세월이 지나가봐야 그 사람의 마음도 엿보게 된다.」

-누가 모를까봐. 살다보면 이런 말이 생각이 안 나게 되는 걸. 겪어보고 난 뒤에야 후회하게 된다구?. 그러나 난 후회 안 한다구. 오히려 그를 반면교사(反面敎師) 로 삼고 있는 걸. 지금 내 곁을 보라구. 20년 30년 40년, 50년 된 친구들이 얼마든지 있다구. 그들이 돈을 빌리러 와도 선뜻 내 줄 수 있느냐구? 물론이지, 그래서 20년을 신용불량자로 살아왔지만 내 통장을 보라구. 지금도 몇 사람에게 빌려준 기록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

현자(賢者) 가로되

「동녘은 밝기 직전이 가장 어둡고, 물은 끓기 직전이 가장 요란 하듯이 행복은 막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늘 인고(忍苦)의 시간을 거쳐서 다가온다.」

-누가 아니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출애굽 시킬 때 왜 광야에서 40년 헤매게 했는지도 알고 있다구. 우리민족이 5천 년 가난에서 이겨낸 것도 박정희 대통령의 혹독한 유신정치를 이해하고 잘 따라 줬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도 다리 밑에서 거적으로 바람막이 삼아 살고 있는 백성들 수 없이 많을 걸. '우리도 잘 살아보세'외치는 리더의 뜻에 따랐기 때문이라는 걸 자랑으로 가슴에 품고 살고 있다구.

「삶이란, 인고부지족(人苦不知足)이라. 사람은 물질에 만족할 줄 모름을 괴롭게 여기고, 감나무에서 무작정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지 만, 세상에 거저는 없다. 준비하지 아니하면 기회는 오지 않는다.」

-옳은 말이지. 감나무에서 무작정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살았기에 지금 내 노후가 어떤가 보라구. 작년 5월에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났지만 난 열심히 벌어서 그 보증 서준 빚을 다 갚았어. 지금은 금융 신용이 4등급이라구. 어때? 목에다 힘줄만 하지?-

賢者 가로되

「승선주마삼분명 (乘船走馬三分命)이다. 큰 배라 할지라도 물위에 뜬 것은 뒤집어지기 쉽고, 천리를 달리는 적토마라 할지라도 멈출 때가 있는 법. 일이란 이리 저리 늘 대비를 해가며 살아야 한다.」

-그도 그래. 박근혜 대통령이나 권선택 대전시장을 보라구. 그래서 나는 돌다리도 두드려보며 살아왔거든. 난 친구들이나 제자들 외에는 식사대접 안 받는 편이야. 외밭에서 신발 끈 고쳐매지 않는다는 속담에 담긴 뜻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잘 된다고 하여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말라. 반드시 시기하는 사람이 생긴다. 하늘을 나는 새도 한 곳에 오래 앉아 있으면 화살 맞는 법이다.」

-옳은 말이지, 그래서 공무원들이나 직장인들 4~5년에 한 차례씩 전근 보내는 것 아닌감.-

「賢者의 言行은 치우침이나 과불급(過不及)이 없으며, 현자의 마음은 깊은 연못과 같아 고요하기가 그지없고, 어질고 총명하여 바람에 쉬이 출렁이지 아니하며, 시련이 닥쳐도 그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였다.」

-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인가? 그건 현자만 할 수 있는 일이고, 우리는 현자가 아니거든. 내 친구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긴 해. 현자처럼 수염도 기르고 말수도 적으며, 행동거지도 남과 잘 어울리지 않으려고 해. 근데 가까운 친구가 없더라구. 그래서 지금은 강원도 어느 산 속으로 들어갔다는 말만 들려. 가끔은 그의 소식이 회자(膾炙)되곤 하는데 그저 회자로 끝날 뿐이야. 난 그렇게는 살지 않을 거야.-

「사람들아~ 불혹(不惑)의 나이를 지나 지명지년(知命之年)에 이르고 환갑이지나면. 한숨도 아껴 쉬어야 하고 현자처럼 살아 갈 마음이 필요하다.」

-옳은 말이지. 그런데 난 지금 산수(傘壽)의 문턱에 서 있거든. 한숨은 저절로 나오게 되고, 코에서는 언제나 맑은 콧물이 쉬지 않고 흐르고 있어. 현자처럼 살아 갈 마음이 필요한 것은 알고 있어. 근데 말이야, 주변 친구들이 현자처럼 살지 않는데 나만 그렇게 살 수 있남. 안되지. 좋은 친구들 다 놓치게 된다구. 난 그저 이렇게 살다가 갈 테야. 초동급부(樵童汲婦)처럼.-

김용복/극작가, 칼럼니스트

김용복-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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