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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지진이 일어나자 긴급문자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몇 분 후 지진 발생에 대한 문자가 왔고, 여진을 알리는 문자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수능시험이 연기되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정된 수능일에 정상 근무를 한다는 알림도 왔습니다. 이런 문자들을 받으면서 어떤 재난이나 사고가 없어야 하겠지만, 만약 부득이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한 대피요령을 다시 읽어 보고 숙지했습니다.
재난 대피요령을 보면서 만약 이런 불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일상적인 근무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읽어 본 대피요령에는 말 그대로 대피하는 방법만이 나와 있고, 향후 근무를 어떻게 하라는 것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공무원이나 기타 공직을 수행하는 분들은 아마도 근무수칙 등에 이미 적시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제시된 것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일이나 근무를 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느 조직이나 단체 등에 속해서 소속감을 갖고 있어야 안정되게 그리고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자유롭게 프리랜서와 같이 일을 할 때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일반인들은 직장이라는 곳에서 안정적인 직업으로 정기적으로 출근해서 정해진 시간 동안 일을 하는 것이 안정적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불안감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아무래도 특정한 일을 일정 기간을 정해서 하는 프리랜서 보다는 어떤 조직이나 회사에 정식으로 속해 있어야 안정된 직업이라고 느끼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구조는 회사나 직장에 속해 있어야 연금, 보험 등 각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대부분의 경우는 직장을 구해 직업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나의 직업인 대학교수라는 직업은 이 두 가지가 적절히 조화가 된 직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 교수는 분명 대학이라는 직장에 속해 있으면서도, 강의나 연구 등 일하는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고, 최소한의 의무시간을 채우면 나머지 시간은 프리랜서와 같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에 따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흔히 대학교수를 '놀고먹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교수가 흔히 말하는 '놀고먹는 직업'이라는 말에 대해 토를 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놀고먹는 직업이 얼마나 좋은 직업인지 경험해 보지 않은 분은 잘 모르실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대학교수가 된 이후로 그냥 '놀고먹은'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전혀 없다는 말은 아마도 분명한 거짓말이 될 것이고, 나 역시 어느 순간순간 그냥 '놀고먹은' 적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냥 놀고먹는 것에는 분명한 책임이 따릅니다. 예를 들어 '놀고먹는 직업'을 갖고 있는 대학교수가 일정한 강의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학생들로 부터 혹독한 강의 평가를 받게 되고, 일정한 연구업적이 없으면 승진이나 연봉에서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것에 자유로운 교수는 아마도 없을 것이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비록 교수라고 하더라도 대학에서 퇴출되는 것은 자명합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대학교수가 되서 참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교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교수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을 그 동안 꾸준히 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해 온 일들을 볼 때, 적어도 그 분야나 영역에서 소위 전문가라고 인정을 받는 그런 결과를 도출했다고 나름 자부합니다. 그러니 적어도 내 스스로 '놀고먹는 교수'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안 일을 하면서 이번까지 두 번의 색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소위 '재택근무'라는 것입니다. 이 재택근무를 했던 일은 일의 양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장기간의 집중이 필요한 그런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전문성을 요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자율'에 맡겨서 '결과'만을 제출하는 그런 종류의 일도 아니었습니다. 일정기간 정기적으로 매일 결과를 축적하는 그런 종류의 일이었습니다. 일의 성격이 그렇다 보니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합숙을 할 수 있는 그런 성격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재택근무'라는 형태로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재택근무에는 몇 가지의 조건이 있었습니다. 매일 등록된 컴퓨터에서 일정 시간 작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사유서를 제출해서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3일 이상 컴퓨터에 접속을 하지 않으면, 그에 따른 제재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일의 관리자는 매일 매일 컴퓨터의 접속 여부와 일의 결과를 검토하고, 만약 하루 동안의 일의 결과가 미흡할 경우에는 일을 하는 담당자에게 연락하고 그 사유를 점검하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자유롭게 일을 집에서 하되, 최소한의 기준을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조건이 내게는 참 어색했습니다. '재택근무'라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매일 매일 등록된 컴퓨터에 접속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또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님에도, 이런 원칙을 지키는 것이 꼭 지켜야 하는 수칙이나 강제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왠지 모르게 부담이 갔습니다.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리고 다른 일을 먼저 하면서도 컴퓨터에 접속을 걸어 놓고 마치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한 마디로 싫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사유서를 내야 하니 싫어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직업이 그래도 자유롭게 시간을 나의 의지대로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이고, 그렇게 여태껏 살아 왔는데 어떤 제약과 조건을 주니 영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처음 이 재택근무를 했을 때는 그냥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재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의 경우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재미도 신기함도 없고 그냥 다소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규칙이 그렇고, 그 규칙에 동의해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이 재택근무를 잘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재택근무는 우리 사회가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하고 변화해 간다면, 아마도 이런 종류의 일들이 더 많이 생겨날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일부 IT분야의 직종에서 이런 종류의 재택근무가 이미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읽은 적도 있습니다. 이제 일반인의 업무 형태도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는 이런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나, 일을 하는 시간을 자율적으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을 하고 능률과 효과를 통해 성과를 도출하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진이나 다른 재난이 만약 발생한다면, 혹시나 그런 재난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적어도 '재택근무'라는 형태의 근무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근무 형태가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피요령과 같이 일종의 매뉴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리 재난이나 재해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구조와 구난을 우선하고 또 해오던 일을 해야 우리 사회가 다시 정상적으로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는 지난 수요일에 발생한 지진을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에 사로잡힌 한 주였습니다. 빠른 피해 복구와 더 이상의 피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이상 큰 지진이나 여진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번 주말에는 그 동안 밀린 일은 없는지 살펴보고, 혹시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재택근무를 하는 심정으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날씨는 비록 추워지고 있지만, 이번 지진으로 피해보신 분들을 생각하면서 이분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그런 주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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