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2017)에서 남도진 역의 김주혁. |
김주혁을 생각하면 낮고 울림이 좋았던 목소리가 떠오릅니다. 그의 목소리는 강하고 거친 최민식의 그것과 다르고, 세련되고 부드러운 한석규의 목소리와도 다릅니다. <쉬리>(1999)의 북한군 장교, <취화선>(2002)의 장승업을 연기한 최민식의 목소리는 자기 세상이 아닌 곳에 끌려온 맹수의 포효 같았습니다. <쉬리>에서 정인을 잃고 한스러워했고, <8월의 크리스마스>(1998)에서 젊은 나이로 죽음을 맞는 사진사의 심정을 담담하게 독백했던 한석규는 배우의 매력이 외모에만 있는 게 아님을 보여줬습니다. 김주혁의 목소리는 또한 <박하사탕>(1999)과 <실미도>(2003)에서 부조리한 시대를 겪는 사내의 울분을 보여준 설경구, <살인의 추억>(2003), <설국열차>(2013), <밀정>(2016)에서 세상사의 허위와 역리에 대해 냉정하고 결기어린 목소리를 들려준 송강호와도 같지 않습니다.
그는 <청연>(2005)에서 조선 최초의 여비행사 박경원을 응원하는 남성을 연기했습니다. 또한 <싱글즈>(2003), <아내가 결혼했다>(2008), <방자전>(2010)에서 여성의 욕망과 자의식을 억압하지 않고, 이해하는 캐릭터를 맡았습니다. 이들 작품에서 그의 목소리는 눈빛을 더불어 생각나게 합니다. 말하고 싶은 게 있지만 우선 상대편을 지그시 바라보는 눈. 어쩌면 자신 없고, 카리스마도, 압도적인 힘도 없어 보입니다. 그 눈빛에는 기다림과 세심한 살핌이 있습니다. 맞는 말, 좋은 말이지만 혹 듣는 이를 아프게 하지 않을까 하는 여린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말합니다. 괜찮다고. 하고 싶은 걸 해 보라고.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 출연한 그는 영화 속 캐릭터와 눈빛, 목소리가 실제와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배우의 이미지가 실제와 같은 것이 꼭 좋지만은 않습니다. 실제로 그는 최근작 <비밀은 없다>(2015), <공조>(2016) 등에서 이전 작품과 확연히 달라진 캐릭터를 연기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풍요로워질 그의 필모그래피가 급작스레 멈췄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세심한 눈빛과 낮은 목소리는 지치고 상한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줍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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