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용복 형'의 주선으로 수강하는 강의가 있어 매주 한 번씩 시민대학을 찾는다. 참으로 보람있는 강좌이다. 그리고 가르치는 교수는 물론 수강자 면면이나 수강하는 태도도 수준급. 이런 연고로 얼마 전(10월말경)에도 시민대학을 찾아 '재밌는 고사성어故事成語 이야기'(장상현 교수: 매주 금요일 오후 2~4;50)를 수강했다. 수강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교보생명 옆 버스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마음 같아선 택시를 이용하고 싶었다. 기실 내 영육이 말이 아닐 만큼 부실했기에. 하지만 가수원 은아 아파트 301동 같은 라인 4층에 사는 '시인 이선희 형'이 버스를 타고 가자하기에 대체로 그랬듯이 형의 제안대로 버스를 기다렸다. 막상 버스가 와 버스에 승차하려니 빈자리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재빨리 하차하면서 택시를 타고 가자고 형한테 얘기해서 결국은 내 본래 마음먹은 대로 택시를 탔다.
나는 늘 그래왔듯이 기사님 옆자리로 올라타 앉기를 좋아한다. 내가 늘 택시를 이용할 때 기사님 옆에 타는 까닭은 움직이는 정보원이랄 수 있는 기사님과 대화하기 위해서다. 딴은 안전을 생각하면 뒷자리에 타는 것이 현명하다. 그런데 뒷자리에 있으면 생각으로는 마치 내 자신이 윗사람 행세하는 것 같고 대개의 경우는 목적지에 가는 동안 서로 침묵으로 지내다 내리게 되어서다. 기사 옆자리에 타고 가면 서로 정담 속에 세상 돌아가는 얘기 나누다 보면 목적지에 이르렀을 땐 서로 오래된 친구처럼 되어 기분좋게 수인사 주고 받으며 헤어지게 되는 미덕 때문이다. 때로 기사님 가운데는 까닭모를 불편한 심기에 대화할 분위기를 싹뚝 자르듯 대하는 기사님도 더러는 있다. 그럴 때는 나도 덩달아 멋쩍은 기분이 되는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사님들은 기분좋은 만남에 따스한 안녕의 인사로 보냄이 일반이다.
이 날도 나는 어김없이 기사님 옆에 탔다. 얼마 후 나는 좀 나이가 들어 보이는 기사님께 웃음을 띠며 말을 걸었다. 기사님! 고려대학교 아니 연세대학교가 어찌 되시나요? 기사님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아무 말 없이 운전에만 진지. 말없이 그저 운전만 하고 있는 기사님 생각, 이놈(필자)이 내(기사님)가 좀 나이가 들어 보여 걱정하는 속내로 쓰잘머리 없는 수작을 거는 거야 하는 맘인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아마도 그런 생각에서 달갑지 않은 내 물음에 대꾸할 까닭이 없어 말을 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은 나는 잠시의 침묵 뒤 스스로 내 연세대학교를 밝혔다. 기사님 다시 나를 쳐다보고는 역시 답이 없다. 그래서 나는 다시말을 이어 갔다. 기사님 제가 그렇게 안 보이시나요, 나이가 더 들어 보이시나요?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랬더니 빙긋이 웃으면서 자기도 나와 같은 나이란다. 그리고는 나 보고는 자기보다 아랜 줄 알았단다. 뭐하며 살았길래 자기보다 그리 젊어 보이냐는 거다. 그래서 나는 그리 봐 주셔서 고맙다. 그러나 실은 속은 부실하다. 겉모습만 그렇지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랬더니 믿기지가 않는단다. 이후부터는 나와 기사님은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오랜 친구가 만나서 정담 나누듯 청산유수의 대화가 오갔다.
기사님과 내가 나눈 얘기의 골자는 하나같이 '시간이 아니 세월이 넘 너무 빨리 간다' 는 거였다. 기사님 말씀, 남들은 시간이 안가서 지루하다는데 웃긴다는 거였다. 기사님 얘기로는 자신은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데 정말 정신없이 시간이 빠르게 간단다. 왜냐 하니까 오늘 일하면 내일 쉬는 날인데 낼모레 운전을 위하여 쉬는 날 차 청소를 하고 하체下體를 굳세게 만들기 위하여 운동하고 친구만나 한잔하고 잠자면 하루 뚝딱 가버린단다. 이틀 일하는 첫날 하기 싫은 운전 잡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휘딱 가버린다 다음날, 오늘 하루 일하면 내일 또 쉬는 날이어서 열심히 손님 찾아다니다 보면 또 후딱 가버린다며 몸은 자꾸 어려워지고 세월은 빠르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생활 지겹다 한다. 내 하는 말, 기사님은 행복하신 거다 자신의 할 일이 있어 바삐 산다는 거 그래서 눈 코 뜰 새 없이 시간이 가버리는 거 어찌 보면 정녕 행복한 생활 하는 거다. 그리고 그리 정신없이 산다면 이제부터는 마나님하고 들고 싶은 음식 잡수시러 다니고 함께 여행도 하면서 좀 놀면서 여유를 갖고 편히 살라 했다. 하였더니 뭔 말씀을 그리 하느냐. 그럴 시간도 없고 노는 것도 놀줄 알고 놀아본 사람이 노는 것이지 놀줄 몰라 놀지도 못하고 놀 여유도 없단다. 그도 그렇다. 사실은 나도 지나간 그 많은 시간 뭐 그리 잘해본 것도 제대로 학문도 연애도 놀기도 해보지 못한 따지고 보면 허송세월 아까운 시간만 축낸 무녀리, 무지렁이 삶을 지낸 데 불과했다. 그래 놓고는 이제 와서 시간이 너무 초특급 속도로 흘러 기막히다. 각도 심한 내리막길이어서 빨리 가는 것만 한탄하고 있는 넋두리 내 삶이 그저 부끄럽기 그지없다
물론 가장 기본적인 서로 이름도, 어디 살고, 어찌 사는 지도 모르면서 몇 번씩 승차해서 눈에 익은 좋은 인연으로 만난 여러 기사님과 이 주제에 주인공이 되는 같은 띠 동갑의 기사님들 바라기는 좀 영육간 병들지 않게 쉬엄쉬엄 쉬시면서 늘 좋은 손님과 만나면서 복된 삶을 사시기를 비옵니다. 이 헛껍데기, 무녀리도 이후부터라도 아름다운 몸과 마음으로 될 수 있는 한 아름답고 멋지게 삶을 영위해 나가도록, 하여 남은 인생이나마 후회를 덜하는 그린 듯한 생활해나갈 것을 이 계제에 스스로 다짐해 본다.
저를 아시는 모든 분에게 사랑이신 주님의 은총이 충만한 가운데 보람있는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빕니다. 마무리로 이 나라 이 겨레를 책임지고 이끌어 가는 여러 분도 제발 서로 상처를 안기고 남 탓하며 허송세월 하는 무녀리 지도자가 되지 않기를 진솔한 영육으로 비옵고 또 비옵니다. 아름다운 이 나라의 안녕을 위해 살신성인하는 참다운 열정을 다 받쳐 주셨음도 바랍니다.
김선호 한밭대 전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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