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이 새벽에 어디가신 걸까? 무섭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지만, 선 듯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겨우 눈을 떠서 캄캄한 거실로 나갔다. 어머니가 땀을 흘리면서 거실에 누워계셨다. '뭐하고 왔어?' 놀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전혀 듣지 못하는 어머니라는 사실조차 잊어 버렸다. 새벽에 '우당탕' 소리는 집 앞 마트 사장님이 가게 문을 닫으면서 빈 박스를 집 담장 너머로 던져주셨던 것이다.
부모님이 폐지를 줍기 시작한 지 거의 20년이 지난 듯 하다. 자식들이 그렇게 말렸는데도 이제는 동네 분들이 알아서 박스를 던져 주신다. 그것도 밤낮없이, 어느 시간대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새벽 3시쯤이면 가까운 종합병원에 가서 약병, 플라스틱 병을 모아서 가져오신다. 나는 그냥 바라만 봤다.
아침 6시가 되니, 그 때부터는 아버지가 움직여야 하는 시간대인가보다. '힘드실텐데, 새벽에도 박스 소리가 나고, 잠이라도 편하게 주무셔야지요.' 라고 나는 아버지를 보면서 걱정반, 짜증반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나는 힘들다고 말하고, 어깨도 아퍼서 못한다고 말해도, 니 엄마는 이거라도 해야 한다고 말을 듣지 않아.'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말씀 하시고는 아버지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 박스를 차곡차곡 접기 시작하셔서 리어카에 실고 고물상으로 움직이신다. 그 뒤를 어머니가 무뚝뚝한 표정과 어쩡쩡한 걸음으로 약병과 플라스틱을 쌓을 리어카를 끌고 따라가신다.
'박스 이거 얼마 줘요?' 종이는 100g에 120원, 플라스틱은 100g에 20원을 준다고 말씀해주신다. 요즘에도 100원 단위, 10원 단위로 계산되어지는 것이 있었구나 란 걸 다시 인지했다. 종이는 395Kg 이었다고 무게를 달며 큰소리로 말하고 나서는 박스가 가득 쌓여진 곳으로 옮겨서 리어카를 비우기 시작한다. 한 참 부모님을 바라만보았다. 어머니는 플라스틱만 저울에 달아놓고, 지친 듯 집으로 가시고, 아버지는 폐지 비용을 받을 차례다. 갑자기 사장님께서 '345Kg입니다'라고 하신다. 아버지는 '아니 395 라니까...' 사장님은 '내가 단 돈 몇 천원 안 줄려고 거짓말을 하느냐고, 345 였다' 10분 이상을 서로 주장을 내세우다가 결국 395Kg로 승(承). 리어카 무게를 빼고 받은 돈과 플라스틱을 포함하여 총 4만9300원을 손에 들고 집으로 들어오시더니 어머니에게 돈을 건네 주신다.
나는 돈이 어떻게 계산되는지 잘 모르겠다. 정확하게 안 사실은 삶은 치열하다라는 거. 단 돈 백원이 어디란 말인가. 단 돈 백원을 아끼시면서 자식을 위해서는 10만원도 선 듯 내어주시는 부모님! 아직도 30대 때 부모님께 빌린 돈을 갚지 못한 현실이 지금 내 속을 어수선하게 했다. '아버지, 나 돈 갚을 능력없는 데 어떡해요?' ' 받을 생각도 안 해. 너 결혼할 때 그 때 이천만원 줬잖아. 그 돈 줬다고 생각한다. 잊고 지내.' 아버지의 말씀이 나를 더 가슴 아프게 했다. 리어카에 폐지를 아버지 키 이상 쌓아서 끌고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 그 뒤를 따라가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인고의 세월이 보이는 것은 나 또한 익어가는 것일까.
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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