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찬바람이 골목길을 뉘이더니 기어히 마지막 남아있는 잎새 위 홍시감을 떨어트리며 '사랑'을 쓰러트렸다. 당황함과 슬픔을 억누를 길 없이 눈물이 주르륵 주르륵 흐른다. 아! 이를 어쩌랴…?
지난 1982년 그러니까 지금으로 부터 35년 전 사랑이를 만났다. 학교를 막 졸업한 단말머리를 만나 철없이 서울 성북구 월계동에 오붓한 신혼의 삶 둥지를 틀었다.
세모진 월세방 밥상 대신 신문지를 방바닥에 깔고 밥 한 술 뜨고는 우리는 집 앞 낙엽 떨어진 둑길을 걷곤 했다. 손을 잡고 걸으며 시인 '구르몽'의 시 '낙엽'을 낭송하곤 했다.
'시몬, 나무 잎새 떨어진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中略)'
꿈만 같았던 신혼의 세월 1년여만에 우리 닮은 첫 공주를 얻었다. 그로부터 둘째 공주와 왕자를 얻어 든든한 삼겹을 포함 다섯 가지가 오붓하게 살았다. 비록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셋방에서 오손도손 살아왔다. 사는 형편이야 궁색하지만 나름데로 가난한 날들 행복한 35년의 보금자리였다.
본디 욕심없이 풍류를 즐기던 필객(筆客)으로 주유천하를 일삼으며 풍미하는 사이에 사랑이는 외로움과 고독함, 그리고 세 가지를 보듬고 키우느라고 피골이 상접하여 가난에 찌들어 갔다.
흐르는 세월따라 어리기만했던 세 가지는 벌써 그리 성장하여 배필을 만났다. 한 가정, 한 가정 좋은 짝을 만나 저마다 보금자리를 보듬으며 이제 다정한 행진곡을 연출하나 싶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사랑이 쓰러지다니…?'
차라니 죄 많은 이내 몸을 뉘어야지? 어찌 그리도 호박잎처럼 여리고, 민들레처럼 착한 사랑이를 쓰러트린단 말인가? 아직 살아갈 날이 좁쌀보다 많고, 고운 노래소리로 주변을 행복하게 해야 할 날이 그리도 많은데 말이오?
내일은 불같이 일어나는 청운의 뜻이 담긴 이 영산홍 꽃을 사랑이 머리맡에 놓아주자. 그리하여 얼른 불같이 일어나도록, 저 화려한 영산홍으로 환하게 안겨주자.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여기 안달래 반달래 이 가지 저 가지 노가지나무 진달래 왜철쭉 한 아름 바치노니 불 같이 일어나거라! 모란 작약 철쭉을 세우(勢友)라! 화목구품(花木九品)중 이등품 세종 때 강희연이 이르던 꽃이요.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그대는 사랑 중에 으뜸 내 사랑이라오!
김우영 작가·대전중구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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