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따스한 분위기였다.
가족이었다.
순원은 아버지와 소주를 나누며 자기 생각을 이야기 했다.
"세상은 넓었습니다. 공부를 더 해야겠습니다.
우선 어학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허락하시면 1년 정도 휴학을 하고 제 나름의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물론 순원은 쉬뢰더와 제프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후루마쓰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나리코에 대해서는 냄새도 피우지 않았다.
아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만 있던 마탁소가 갑자기 말을 끊고 들어왔다.
"뭐라고 예리코의 장미라고? 다시 말해 봐라."
"예, 쉬뢰더 소장님이 저를 서재로 데리고 가서 금고에서 꺼내 보여준 식물인데요. 그 분은 그 꽃이 영원히 사는 꽃이라고 말했습니다. 꽃이라기보다는 잡초덩굴같이 생겼더군요. 그렇지만 분명히 그랬습니다. 영원히 산다고..."
'예리코의 장미라, 그런 꽃이 있다고?'
마탁소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생각에 잠겼다. 그의 눈에 생기가 도는 듯 했다.
마탁소는 저녁식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서재에 틀어박혀 예리코의 장미에 대한 자료를 찾기 위해 문헌을 뒤적였다.
"…나는 영광스런 백성 안에 뿌리를 내리고
나의 상속을 주님의 몫 안에서 자라게 되었다.
나는 레바논의 향백나무처럼
헤르몬 산에 서 있는 삼나무처럼 자랐다.
나는 엔게디의 야자나무처럼
예리코의 장미처럼
평원의 싱싱한 올리브나무처럼
프라타나스처럼 자랐다…
(구약성경 집회서 24장 13절 이하)"
예리코는 기원전 9000년께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였다. 성경에 의하면, 예리코는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인들이 요단강을 건넌 뒤 처음으로 공격한 도시로 유명하다.
예리코(jericho)는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에 나오는 '여리고'였다.
로마의 안토니우스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에게 선물했다는 탐스러운 도시, 여리고.
'예리코의 장미'란 이스라엘의 역사 구약에 나오는 '여리고의 장미'를 말하는 것이었다.
학명은 셀라지넬라 레피도필라(Selaginella lepidophylla).
하나 더 있다.
아나스타티카(Anastatica).
학명은 다르지만 속명은 같다.
즉, '예리코의 장미', '성모 마리아의 꽃', '성모 마리아의 손', 그리고 가장 실감나는 명칭 '부활초'라고도 불린다.
이 꽃은 이집트, 이스라엘, 이라크, 요르단 등 중동지방과 네게브사막과 사하라 사막 등 북부 아프리카 사막지대 같은 극심한 건조지대에서 산다.
이 꽃은 우기가 되어 수분이 있으면 꽃잎을 펼쳐 피어나지만, 건기가 되면 몇 년을 지속하든 자그만 실뭉치 같은 형태로 오므리고 있다가 수분기에 닿으면 꽃잎을 펼치면서 부활하는 것이다.
영원히 무궁하게 살아 피어나는 꽃.
'무궁화....
우리 국화도 영원히 살아 피어나는 꽃이 아니던가.'
마탁소는 우연의 일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새삼 무궁화가 떠올랐다.
한국인 중에 무궁화의 영어 단어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잘하는 영어로 무궁화를 물어 대답하는 사람을 마탁소는 거의 보지 못했다. 무궁화의 영어 이름이 바로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다.
샤론 역시 이스라엘 가나안 지방의 한 지명이다. 샤론은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으로 구약성경은 말하고 있다.
샤론 지방에서 피어나는 장미. 아름다움의 상징이요, 영원하다는 의미의 그 꽃이 바로 우리나라의 무궁화인 것이다.
한문으로 '無窮花'라고 쓰지만 중국에 이런 꽃은 없다.
옛 고어에서는 무궁화를 목근화 (木槿花)라 하였다. 그냥 근화(槿花)라고도 했다. 무궁화와 목근화.
학자에 따라서 무궁화라는 말은 목근화라는 발음이 목근화 → 무긴화 → 무깅화 → 무궁화로 변하였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어떤 학자는 다른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무궁화의 학명을 보면 무궁화의 수수께끼는 더욱 더 깊어진다.
'히비스쿠스 알데아 시리아쿠스(Hibiscus althaea Syriacus)'.
무궁화의 학명이다. 'Hibiscus'는 신의 이름이라고 한다. 'althaea'는 히브리어로 치료한다는 뜻이라 한다. 따라서 '히비스 신이 치료한다' 는 지고지선(至高至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 부분의 Syriacus는 시리아라는 지명이름인데, 시리아 지방이 무궁화 꽃의 원산지 같은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무궁화의 원산지는 중동지방이 아닌 아시아라고 하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무궁화가 어떤 경위, 어떤 근거로 나라꽃이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한국의 국화가 무궁화라는 것은 어느 법에도 규정된 바가 없다.
그러면서 황금꽃의 소재가 다시 머리에 떠올랐다.
아, 영원불멸의 황금 꽃.
아름답고 순수하며 생명의 원천을 의미하는 그 어떤 꽃.
그것이 무엇일까?
서재에서 나온 마탁소가 아들을 불렀다.
"순원아, 쉬뢰더 소장에게 예리코의 장미를 안면도 꽃박람회에 전시용으로 출품해 줄 수 없느냐고 부탁할 수는 없겠니?"
(계속)
우보 최민호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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