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구(한국화학연구원 화학산업고도화센터장) |
프랑스 화가 밀레의 대표작품인 '만종(晩鐘)'은 원제가 삼종기도로서 성당 종소리의 의미를 대변해 주는 그림이다. 밀레는 이 작품에 대해 "옛날에 할머니가 들에서 일하다가도 종이 울리면 일을 멈추고 죽은 가엾은 이들을 위해 삼종기도 드리는 장면을 기억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종소리는 고된 삶 안에서 곧 기도였고 하느님을 일깨우는 상징이었던 것이다. 한국교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맞춰 함께 삼종기도를 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현대 사회의 흐름 속에서 어느 순간 종탑은 점차 사라지고 성당 종소리는 쉽게 접하기 어렵게 됐다.
우리는 태어나 다름을 배우며 살아간다. 남자와 여자의 다름을 알아가며 나와 어머니의 다른 존재를 인식하고, 나이에 따른 생각의 차이를 깨달으면서 비로소 자연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사실 아름답다는 감정 자체가 그렇지 않은 것과의 다름을 인식해야 가질 수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인간은 왜 그렇게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다름으로 인한 언쟁과 스트레스, 질타와 다툼. 대부분의 문제는 다름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인간은 참 어리석기 짝이 없다. 그리고 '다르다'와 '틀리다'가 굉장히 흔하게 혼용되는 최근 세태를 보면 더욱 안타깝다. 종교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 분명히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왠지 같은 것에 기뻐하고 또 같은 편을 들게 되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모순이 아닐까. 왜 나와 다른 것은 불편하고 불안한지 모르겠다.
그러면 그 차이를 어떻게 인정하고 발전시킬 것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데 개성은 자기의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다름은 언제나 사회가 허용하는 한계 내로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한계를 넘어서는 다름은 미워하거나 배척하기 마련이다. 과연 틀림이 아닌 다름을 배척하고 싫어하는 배경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우월감 때문이라면 너무 우습다. 분명 다름을 인정하는 곳에서 아름다움은 시작한다. 하지만 그 인정이 너무 어렵다.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와 공존의 지혜. 현실에서의 다양성 파괴와 획일성에서 시작되는 모순이 우리가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소중한 이유다.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도, 내 마음과 꼭 같은 사람도 결코 없다.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 갈등과 마찰은 항상 피해갈 수가 없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다름을 인정함으로써 마찰은 잦아들고 마음은 평온해지며 우리 관계는 더욱 긍정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온전히 나다운 내가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 '나는 너와 달라서 특별하고 소중하며, 너 또한 나와 다르기에 소중하고 특별하다.'
다름은 나답게 사는 필수요소다. 우리 사회는 다름은 곧 틀림이라는 인식이 정말 견고하다. 비록 면전에서는 쿨하게 "나는 당신과의 차이를 인정합니다. 사람들은 다 다르니까요."라고 한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내가 맞아, 당신은 틀렸어.'라고들 한다. 이미 익숙해진 것은 불편함을 야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종(鍾)을 잃어버린 시대'에 다시금 종소리가 우리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 우리의 몸과 영혼을 따뜻하게 데우는 사랑과 기도의 울림으로 승화될 수는 없는가.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산업고도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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