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 |
김영삼 대통령 등극은 군사독재 청산과 문민정부 시작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군사권력의 상징 하나회를 가차 없이 청산했다. 경제개혁조치로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하고 역사바로세우기를 천명한다. 탈권위의 모습으로 넥타이 없는 하얀 셔츠에 칼국수를 즐긴다. 그가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보수정당 민자당을 신한국당으로 바꾸어 개혁을 추진하는 동안, 진보운동권 그룹은 와해된다. 그리고 진보그룹은 체제 내에 편입돼 노동운동에서 시민단체로, 정계로, 법조계로 다양한 분야의 길을 간다. 특히 현실정치에 편입된 이들은 여야로 나뉘고, 특히 이재오, 김문수, 김부겸 등 인사는 보수의 길을 걷는다.
문재인 대통령도 비슷한 맥락의 의미를 지닌다. 김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 이후 우리나라는 지나치리만큼 계파정치의 길을 걷는다. 군사독재는 사라졌지만 한국정치는 25년간 상도동, 동교동, 친노, 친이, 친박이 차례대로 권력을 장악한다. 그야말로 계파독재다. 특히나 전 정부는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탄핵이라는 참극도 맞게 된다. 국민적 저항과 분노와 함께 조기 치러진 대선으로 문재인 정부는 탄생한다. 진보세력은 환희의 찬가를 부르는 반면 보수세력은 궤멸수준으로 무너지고, 분열되고, 숨는다. 새 대통령은 커피를 마시며 청와대를 걷고, 국민과 자연스레 셀카를 찍는다. 공약이기도 했던 적폐청산작업을 하나하나 선보이고, 최저임금인상, 비정규직철폐, 탈원전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의 정책을 추진해 나간다.
이렇듯 두 대통령은 어쩌면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타파'라는 국민 열망을 안은 채 시작했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개혁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선보인다. 김영삼다운 과거문제와의 단절과 새로운 모습에 큰 박수를 보냈듯, 계파독재에 환멸을 느낀 국민은 과거와 다른 새 대통령의 모습에 기대와 함께 73%의 초기 지지율을 보냈다.
그런데 찜찜할 일이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임기 말에 6%가 된다는 점이다. 취임 초 83%가 왜 임기 말 6%로 떨어졌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성공한 정치인이 되기 위해선 대의명분, 노선, 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세 가지의 동력을 상실했고, 오히려 부정적인 이슈들과 함께 결국 자신의 족쇄가 되었다. 이 점이 지금 문 대통령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군사독재를 청산하고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밝힌 김 전 대통령은 아들의 부정과 비리를 막지 못해 과거청산의 대의명분을 잃었다. 촛불로 일어난 국민의 참여정치라는 대의가 '친문' 계파정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또 다른 계파독재의 모습 속에 그들만의 권력향유 냄새를 물씬 풍긴다면 문 대통령은 힘들어질 수 있다. 게다가 혹여나 측근의 부정과 비리가 발생한다면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경제운용을 잘못했다. 그의 경제정책은 결국은 말년에 IMF 위기를 초래했다. 문 대통령의 증세, 최저임금인상, 비정규직 제로 등 친서민·분배중심 경제노선이 우리 경제에 어떤 악영향을 불러일으킬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 전 대통령은 말년 유력한 자당 대통령 후보인 이회창 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결국 이인제 씨 출마의 빌미도 제공했다. 환경문제, 대북문제, 경제운용의 문제 등에 새정부 역시 분열의 조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초기 닮은 성공요인처럼 닮은 실패요인이 세월이 흐르며 커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진보는 그 누구보다 성공을 위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성패를 배울 필요가 있겠다. 보수도 마찬가지다. 4년 6개월 후의 정권탈환을 위해선 고공지지율이 왜 바닥으로 향했는지 공부해 볼 필요가 있다. 모두 김영삼 전 대통령을 공부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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