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연 우송대 교양교육원 초빙교수 |
홈페이지의 인물소개란을 보자. <명불허전>의 주인공은 대단한 실력의 외과의사다. 다만 너무 냉철하고 프로페셔널하게 구는 게 아쉬운 점이란다. 환자들을 이름 대신 병명으로 기억하고, 환자에게 심리적 문제가 생기면 바로 정신과로 넘긴단다. 그런데 만약 정말로 환자에게 심리적 문제가 생겼을 때에 외과의사가 참견하는 건 옳은 일일까. 인간미 넘치는 의사가 되기 위해 전문영역을 월권하는 것이 옳은가. 한편, <마녀의 법정>의 마녀 검사를 소개하는 문구는 다음과 같다. "약자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그러니까 약자를 위해 싸우지 않아서 마녀라는 얘긴데, 정의로운 법 적용이 꼭 약자만을 위한 절대적 도덕판단인가.
최연경(김아중)은 보호자가 기쁨에 겨워 자신을 안으려 하자 피하며 거리를 유지한다. 위로하는 역할도 거부한다. 자신은 오직 수술로 환자를 살리는 사람임을 결벽적으로 강조한다. 인간미 부족한 캐릭터임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들이다. 마이듬(정려원)이 피해자의 프라이버시 노출을 조작해 가해자를 몰아붙이는 에피소드는 확실히 나쁘게 느껴지지만, 그녀가 재판에서 이기지 못했다면 피해자는 더 억울한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그녀들은 이미 수술 잘하고, 재판 잘한다. 사람 살리고, 범인 잡는다. 실은 그것만으로도 공동체의 도덕에 기여한다. 수술방과 재판장에서는 악의 없는 무능이 더 위험하다. 직분의 프로페셔널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선(善)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인격적 결함이 있는 것으로 설정되고, 품성 변화의 미션을 부여 받는다. 환자의 마음을 보듬지 못하는 의사는 실력만 좋은, 덜 된 의사이고, 범인 잡아 출세하는 데 혈안된 검사는 마녀이기 때문이다.
대중서사가 취하는 인물의 성장에 대한 기대감의 방향은, 몸을 치료하는 외과의사가 마음까지 치유해야 한다는 쪽에 가닿는다. 샤프한 에이스 검사가 동시에 변호사도 해야 하는 식이다. 이건 연예인이 타의 모범이 되는 공인이기를 바라는 시선과 통한다. 그렇게 시인에게 정치를 권하고, 방송인에게 헌법교육을 허한다.
사람들은 현실의 삶을 직접 바꿔줄 듯 떠드는 인문학자를 '착한', '행동하는' 인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몸을 다루는 의사가 언어와 생각에 관여하지 않듯, 뜻을 다루는 인문학자가 감히 몸과 물질에 관여하길 꺼리는 것은 현실에 무심한 백면서생의 무책임한 태도일까. 반대로 자기 몫을 한계지을 줄 아는 정직한 책임의식의 발로일 수도.
어설픈 정의감만 가지고 날뛰다가 크게 사고친 후 냉정한 자기 절제를 배우게 되거나, 선의로 모인 정치집단이 내부의 모순을 겪어나가는 - 그런 인물 설정과 이야기 구조를 더 많이 보고 싶다. 우주를 구하는 수퍼히어로마저 요즘은 허당 매력으로 그려지는 판에, 지덕체 골고루 갖춘 '전인'에의 과도한 욕구는 순결한 메시아를 목 빼고 기다리는, 자존감의 집단결핍에 다름 아니다. 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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