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모 한국연구재단 성과조사분석팀장 |
하지만 연간 4조 8천억원의 국가 R&D를 집행하는 기관의 정책연구혁신센터 소속 부서장이 4차 산업혁명을 소개해 달라고 하는데 거절한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최근 이곳 저곳에서 관련 강의를 들었던 터라 다시 용기를 내기로 했다. 제일 먼저 인터넷을 검색해서 찾은 자료로 강의를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10페이지를 넘기기 어려웠다. 시간은 다가오고 약속한 11월 첫날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4차 산업혁명이 귀에 들리면 집중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한국연구재단에서 창립 40주년 기념 국제학술포럼을 서울에서 개최하였다. 선진국의 연구관리 전문기관장들의 강연 속에서 각국이 4차 산업혁명시대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비전과 전략들을 보았다. 그 중에서 첫 번째 강연을 한 호주 과학기술공학아카데미(ATSE) 휴 브래들로(Hugh S. Bradlow) 이사장이 소개한 영상이 눈길을 끌었다. 어느 화창한 파란 하늘에 "Rush Hour"란 제목이 뜨고 잠시 후 바쁘게 길을 건너는 사람들 옆으로 수많은 차들이 마구 지나간다. 어어...놀라는 틈도 없이 빠르게 진행하는 사람들과 자전거, 자동차들...게다가 신호도 없다. 부딪힐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을 묘하게도 피하는 편집 영상이다. 미래 무인자동차들과 인공지능 교통망을 보여주는 영상이다.
이 영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특강의 제목은 '4차산업혁명시대 미리보기'로 정하고 여러 가지 영상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바이오미래포럼, 기후기술대전, 산학협력엑스포, 인문사회 성과교류회 등 10월 말 열렸던 정부 연구개발투자 성과를 공유하는 전시회들을 다니며 바이오인공장기,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드론, 유전자가위, 자기조립나노로봇, 재난감지와 대응기술과 같은 영상을 찾아 다녔다. 기고문이 지면이라 직접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이 영상들은 특강 메세지인 '4차 산업혁명시대의 대학교육혁신'을 전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흥미롭고 직관적으로 소개하기에 충분하였다.
특강을 가니 이공분야와 비교하면 취업이 어려운 사회과학분야 전공 학생들은 다소 어두운 표정이었다. 우리 부부가 모두 수학교육전공인데 나의 딸 역시 사회과학을 지향하는 인문계 고등학생이다. 딸을 위해서도 사회과학분야 학생들을 위해서도 뭔가 희망을 주고 싶었다.
학생들에게 최근 읽고 있는 '대한민국의 4차 산업혁명'이란 책의 내용을 소개했다. 4차 산업혁명이 ①과학기술의 생산혁명 ②경제사회의 분배혁명 ③인간의 소비혁명으로 이어진다는 세 단계 이론이다. 어떠한 천재라도 인공지능이 생산해내는 지식정보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다만 이 정보를 활용하고 인간을 위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이공계도, 인문사회계 학생도 아닌 문제해결능력을 갖춘 협력하는 괴짜라는 저자의 권고를 빠짐없이 전해 주었다.
그렇다. 프로젝트 기반 교육(PBL, Project Based Learning) 혁신이 대학교육이 가야할 길이다. 기존의 교육이 스펙을 쌓고 지식(contents)을 전달하는 방식이라면, 프로젝트 기반 교육은 교육과 사회가 하나의 대상으로 되어 서로 협력하여 문제(context)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전문가, 환경전문가, 정책, 국제협력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협력해야만 가능할 것 아닌가...기술은 인공지능이 계속 축적하고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시켜(machine learning) 인간의 고민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 우리의 역할은 인간과 사회를 고민하는 것이다. 협력하는 괴짜가 필요한 것이다.
강의의 마지막에는 '세상을 바꾸는 인문학'을 메시지로 던지는 인문주간 주제 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바쁘게 달려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잔잔한 감동으로 살아갈만한 세상이 나타났다. 학생들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괴짜들이 만들 인간이 행복한 4차 산업혁명시대를 기대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양정모 한국연구재단 성과조사분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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