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수민족 취재탐방기] 말보다 쉽잖은 물소 타기

[중국 소수민족 취재탐방기] 말보다 쉽잖은 물소 타기

23. 만나기 어려웠던 소수민족 마오난족

  • 승인 2017-11-03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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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인환
전날 밤 불같은 키스 세례에 앞가슴이 유난히 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에 자연히 그녀들의 가슴 쪽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나의 이런 눈길을 보았다면 지극히 음흉스럽다 하겠지만.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동생들이나 조카들의 앞 가슴은 겉으로 보기에도 볼륨이 없다. 촌장의 아내는 두 아이의 엄마다보니 자연히 출렁거리듯 풍만하다.

그러나 나는 머리를 흔들 수밖에. 감히 촌장의 지엄한 아내를 의심하다니 말이다.

오전 9시가 훨씬 넘어서야 마당에 급조된 식탁이 놓여지고 십 여 가지 나물반찬들이 차려진다. 국이 없으면 밥맛이 없을 정도로 국물대장인 나였지만 이들의 아침식탁엔 국이 없다. 커다란 밥솥을 통째로 갖다 놓고 각 자가 차례로 밥을 떠다 먹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언제 해두었는지 모를 식은 밥 덩어리가 아닌가. 떡덩이처럼 굳은 찬 밥.

그래도 손님 대접한답시고 촌장 부인이 손수 밥 한 그릇을 퍼다가 놓아준다.

안 먹을 수도 없고 해서 억지로 몇 술을 뜨다 말았더니 촌장이 걱정스런 얼굴로 다가서며 맛이 없느냐고 묻는다. 그러더니 반찬이며 밥알이 그냥 묻어있는 자기 젓가락으로 이것저것 반찬을 집어다 내 그릇에 얹어 준다. 다른 곳에서도 간혹 이런 일이 있었다.

정의 표시로 행해지는 반찬 얹어주기. 딱 질색이지만 피할 길이 없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소수민족 대부분이 더운밥을 싫어한다.

항상 밥을 미리 지어놨다가 찬밥을 즐겨먹는 것이 이들의 습관이다.

아침밥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 잠시 눕는다는 것이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어제 하루 특히 밤 축제가 원인으로 몸이 피곤 했었나보다.

잠이 깬 후 마당에 나가보니 촌장은 어디서 끌고 왔는지 한 필의 말을 끌고 마당을 서­성이고 있다가 나를 보자 타보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말보다 물소를 한 번 타보고 싶다고 했더니 그는 "매이원티!"하며 나가자고 한다.

마침 저 앞 쪽에 두 마리의 물소가 소년들에 의해 어디론가 가고 있었는데 촌장의 부름을 듣고 그 중 한 마리가 가까이 다가온다. 언제 준비했는지 촌장은 두꺼운 포댓자루를 소 등위에 척 걸쳐놓고는 나를 가리키며 올라타 보라고 한다.

두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겨우 올라 앉았는데 물소란 녀석이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영 불쾌한 내색이다. 소년들이 고삐도 잡지 않고 편안한 자세로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았었는데 그 정도가 되려면 여간한 경지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모양이다.

5분도 안되어서­ 나는 엉덩이가 아프기 시작, 할 수 없이 내리고야 말았다. 그날 하루 종일 양 쪽 엉덩이가 얼얼한 것이 불편하기만 했다.

촌장은 친절하게도 하루 종일 나를 안내하며 몇 집을 방문했고, 오후에는 청년들과 작은 늪에 가서 물고기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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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인터넷 캡쳐
#달밤의 축제

저녁 무렵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은 서기(書記)집에서 만찬을 준비하기로 했다면서 이미 돼지도 한 마리 잡았다고 한다. 예의 40여 명의 남녀 청년들이 모였다.

돼지고기와 물고기 요리 잔치. 거기에 이 지방 특유의 산나물 종류들이 입맛을 돋운다.

초저녁부터 술이 불콰해지면서 엊저녁과는 다르게 몇 개의 악기가 연주되고 무용도 곁들여졌다. 분위기가 고조될 무렵에 동네 아이들과 노인들까지 몰려와 1백 여 명이 마당을 채우게 되었다. 술을 좋아하고 노래와 춤을 사랑하는 민족이었다. 놀고 싶은 핑계거리가 없던 차 낯선 외국인이 방문하면서 마을 잔치가 벌어진 것이다.

나 역시 거나해져서 노래도 부르고 끌려 나가 덩실덩실 춤도 추었다. 세상의 근심 걱정을 한 순간에 날려 버리고 어린아이가 된 기분으로 맘껏 즐겼다.

온 몸이 땀범벅이 되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이들과 십년지기나 되는 것처럼 함께 떠들며 웃고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로 신바람이 났다.

이날도 밤 12시가 지나서야 잔치가 끝났다. 노인들과 어린이들이 다 돌아가고 다시 40여 명의 젊은이들만 남게 되자 누군가의 제의에 의해 뒷동산 밑 늪지대로 몰려갔다. 일찍 도착한 친구들은 벌써부터 첨벙 첨벙 물 속에 뛰어들고, 여자들은 또 한 쪽에서­ 목욕을 하는 눈치들이다. 이날 밤은 어제와 다르게 대낮 같이 밝은 달빛이 선남선녀들의 목욕장면을 고스란히 비쳐주고 있었다.

모두들 옷도 벗지 않은 채 물 속으로 뛰어들었기에 나도 질세라 그들과 합세를 했다.

생각보다 물이 너무 찬 탓인지 온몸이 으스스 했지만 그들과 물싸움도 하고 헤엄도 치면서 지치는 줄 모르고 놀았다.

다시 숙소로 돌아온 시간은 새벽 한 시가 넘어서였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누우니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막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가 똑똑 똑 문 두드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니스 세이야?(누구 십니까?)" "…" "니스 세이"라며 문을 열­고 이번엔 문 앞까지 나가 두리번거려도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안 비친다.

달 밝은 밤이라 누군가가 있었다면 금방 알아볼 수 있었을 터인데, 하면서­ 다시 돌아서­려는데 뒷 쪽에서 작은 소리나마 짝 짝 손바닥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주춤 주춤 다가가보니 웬 여인이 반쯤 고개를 돌리고 서 있다. "니스..?" 하고 물으려는데 그녀가 몸을 훽 돌리며 내 손목을 잡아끈다.

저녁 서기(書記)네 집 마당에서 유난히 눈을 자주 마주쳐오던 아가씨라는 것을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 손목을 잡고 있는 장력이 여자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강하다. 억지로 그의 손을 떼어내고 한 대 때리는 시늉을 했는데도 꼼짝도 않는다.

짧은 중국어 실력이 안타까웠다. 무조건 "부씽(안돼), 부씽(不行)!" 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여인은 내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진다. 놓아라, 못 놓겠다. 하는 식으로 밀고 당기다 보니 러닝이 쭉 소리를 내며 찢어지고 만다. 그제서야 제 정신이 돌아왔는지 여인은 마당을 가로지르며 뛰어 나간다.

방으로 돌아와서도 마치 여우에 홀린 기분이 되어 한참이나 멍청하게 앉아 있어야만 했다.

(아! 이 동네도 오래 있을 곳이 못 되는구나.) 그러나 이런 이유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유로 인해 나는 마을과 작별해야만 했다.

이튿날 아침의 일이다. 늦은 아침을 먹고 오늘은 가장 나이가 많다는 노인 한 분을 만날 계획이었다. 금년 89세라고 하는 이 노인은 아직도 정정한 분으로 농사일은 물론 낚시로는 당할 사람이 없을 만큼 노련하다고 했다.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밖에서 급히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마당 한 쪽 평상 위에 정복차림의 경찰관 두 명이 앉아 있고 집 주인인 촌장이 그 앞에 서서­ 무언가 얘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경찰관이 나를 찾아온 것일까? 무슨 일로?) 무척 궁금했지만 피해야 할 이유도 없을 것 같아서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들 중 한 명은 파출소 소장이 틀림없었다. 나를 보자 벌떡 얼어나면서 거수 경례까지 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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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인터넷 캡쳐


#조용히 말할 때 떠나라

"오랜만입니다."

"편히 잘 지냈습니까? 농촌 집이 불편하진 않았습니까?"

"네. 괜찮습니다만…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네. 잠시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참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얘긴지 어서­ 해보시죠."

다른 한 명의 경찰관, 그리고 촌장도 얼굴을 숙인 채 무언가 대단히 미안하다는 표정이다.

"잠깐 앉으십시오."

파출소 소장이 평상을 가리킨다.

"아침부터 오신 것을 보니 나한테 무슨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인데...?"

내가 답을 재촉하자 소장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마을에 손님으로 오신 분을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하여튼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이 부락을 떠나 주셔야 되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고,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에 저희들은 그냥 전달해드릴 뿐입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나에게 무슨 오해라도 있으신 모양인데 무슨 이유인지 자세히 좀 얘기해 주십시요."

"우선 짐을 챙기시죠. 저 밑에 차를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자세한 말씀은 가면서 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되어 나는 응급결에 짐을 싸야 했다. 그러면서 문득 몇 달 전에 있었던 운남성 아이니런(?尼人) 부락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느닷없이 숙소로 찾아온 공안국 직원으로부터의 점잖은 추방명령.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이 지방을 떠나십시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안 좋은 꼴을 보게 되십니다.) 그리하여 이튿날 서­둘러 그 고장을 떠났던 일이 있었다.

하니족(哈尼族) 계열의 아이니런(?尼人)으로 알고 찾아갔다가 그들의 입으로부터 원래는 당당한 일개 소수민족이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의 충격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연유를 알고 싶어 시정부 이곳 저곳을 취재 다니다가 이들 정부의 눈에 가시가 되었던 것이다. 자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 전혀 알리고 싶지 않은 이들의 근대사, 즉 소수민족간의 합병사실 등을 겁도 없이 캐묻고 다녔으니 나의 경솔함이 지나쳤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이마를 쳤던 기억이 난다.

오늘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막연하나마 짐작이 갔다.

마을 사람들께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촌장 부부에게만 서­둘러 인사를 하고 쫓기듯 집을 나왔다. 마을 앞 쪽 공터에 두 대의 승용차가 서­ 있었다. 한 대는 경찰차이고 나머지 한 대는 누구의 차인가? 차 옆까지 도착하자 궁금했던 차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오는데(아니, 저 사람은 정부항장 鄕長이 아닌가?)

"안녕하셨습니까? 아침부터 이렇게 모시게 되어 죄송합니다. 내 차를 타시죠." 두 말이 필요없었다. 그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정부 청사였다.

배낭을 짊어진 채 사무실에서­ 찻잔을 놓고 마주 앉았다. 파술소 소장도 동석한 자리다.

몇 달간을 만나주지 않다가 경찰의 힘으로 겨우 만났던 향장이 자기들은 결코 마오난족 (毛南族)이 아니라면서도 LF족 부락을 소개해 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느닷없이 나를 소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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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인터넷 캡쳐
#떠나라면 떠날 수밖에

한참이나 뜸을 들이던 향장(鄕長)이 말문을 연다. 그의 얘기를 종합하면, 내가 부락에 가서 같이 놀고 즐기는 것은 좋은데 촌장이나 마을 청년들에게 계속해서 LF족에 대해 질문을 했다는 것이 모두 보고가 되어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자기들은 심기가 불편하다. 게다가 오늘 만나기로 되어있던 노인네는 반골기질이 강한 분으로서 나에게 무슨 말을 할 지 모른다. 더 이상 LF족에 대해 궁금증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이대로 조용히 떠나가 준다면 문제 삼지 않겠다.

상황에 따라 나를 국가적인 중대범으로 몰아 구속시킬 수도 있다. 말은 부드럽게 했지만 내용면에서는 찬 기운이 도는 얘기였다. 이들 정부가 얼마만에 이 문제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더 이상 가타부타 할 여지가 없었기에 순순히 떠나겠노라고 대답했더니 백지 한 장을 내 놓으며 이후 이곳에서 나눈 얘기며, 보고 들은 것에 대해 일체 발설치 않겠노라는 각서를 쓰라고 한다. 맘에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원하는 대로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문으로는 표현방법이 틀리기 때문에 원문을 그들에게 쓰라고 한 후 말미에 서명하는 것으로 끝냈다.

그런 후에야 그들은 만족을 했는지 점심을 사겠으니 같이 나가자고 한다. 썩 내키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그들에게 등 돌려야 할 이유가 없다 싶어 그들을 따라 나섰다.

정부가 있는 곳에서­ 한 시간 이상이나 달린 후에야 별장식 식당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을 해놓은 듯 일품 요리들이 준비돼 있다. 일행은 나를 비롯해 향장, 부향장 2명, 경찰관 2명 등 6명이었다. 대낮인데도 고급술을 따르기까지 한다.

술이 몇 순배 돈 후 슬쩍 물어 보았다.

"내가 LF부락에 머물렀던 것이 그렇게 부담스러웠었느냐?"

"그게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너무 많이 알려고 한 것 같다."

"원래 작가란 게 궁금한 걸 못 참는 버릇이 있어서 그렇다. 오해 없길 바란다. 그런데 이 문제가 상부에까지 보고되었다는 얘기냐?"

"현(?)정부까지만 알고 있다. 공안국에서도 별로 안 좋게 생각한다. 앞으로 충고 한마디 하겠다. 좋은 얘기만 보고, 듣고 취재해 주었으면 고맙겠다. 그것이 당신 신상에도 좋다."

이것은 파출소 소장의 얘기다. 은근히 협박을 겸한 말이어서 듣기가 조금 거북했지만 억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한 가지만 더 묻고 싶다. 대답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 …. …?"

"내가 부락에 도착해서­ 있었던 모든 일들이 너희들에게 모두 보고되고 있었느냐?"

"그런 식으로는 묻지 말았으면 좋겠다. 당신은 외국인이 아니냐? 당연히 촌장이나 서기는 당신의 안전을 위해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일 아닌가?"

鄕長의 대답이 참 묘하다. 나의 안전이라니? 일거수 일투족 낱낱이 고해 바치는 행위가 안전과 무슨 관계인지 헛갈리기만 했다.



#마무리는 깨끗이

마오난족(毛南族)아닌 LF族 방문은 도중에 하차 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그들의 불편한 심기를 건드릴 수도 없는 일이었고 더더구나 반 강제적인 철수가 아니더냐.

뒷맛이 씁쓸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음 행선지가 어디냐고 묻기에 소수민족 뿌이족(布依)촌으로 가겠다고 하니깐 그럼 평탕 (平塘)을 거쳐야 할 터인데 그곳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그럴 필요 없다. 시외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했더니 파출소 소장이 마침 현 공안국에도 갈 일이 있다며 끝까지 친절을 베푼다. 허기야 두 시간 이상 가야 하는데 좀 편안하게 가는 것도 괜찮겠지!

<다음 주에 계속>

김인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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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환 시인은 시집<님의 마음에:1968년> (비가 내리는 :1970년) (다시 한밤에 돌아와:1973년) (시음집:1978년:한국 최초의 음반시집) (바람의 노래:1992년)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98년) (낙엽이 되어보지 못한 그대는;2013년) 등의 시집과 방송칼럼집 (내일을 향하여), 시론집으로 (마두금을 어디서 찾나) 등이 있다. 1972년 부산 최초의 시 전문지를 발간한 바 있으며 MBC, KBS, 한국경제 등에서 30여 년 간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부산 크리스천 문인협회 회장, 중국 광동성 한인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 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국제 펜클럽, 대전 펜클럽 회원으로 있다.



소수민족 王서방의 눈물

김 인 환

5일장에서 한 잔 술에 거나해진

王서방입니다

출산일이 다가온 아내를 위해

귀한 미역 몇 줄기를 사들고 들어오다가

으앙 으앙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얼굴에 함박꽃이 핍니다

이젠 아버지가 되었으니까요

결혼 7년이 지나도록 가난 때문에

출산을 미루고 이루어 오던 경사였습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방에서 나오다

王서방을 보고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입니다

축하해요 王서방 첫 아들이 나왔어요

이웃 사람들도 王서방 어깨를 두드리며

같이 기뻐해 주었습니다

잠시 후 방에 들어갔던 아주머니가 다시 나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또 나왔어요 쌍뽀우타이(?胞胎, 쌍둥이)예요

이웃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정작 王서방은 푸욱 소리를 내며

어깨가 주저 앉았습니다

조금 있다가 아주머니가 다시 나와

또 나왔어요 또 나왔어요

싼 뽀우타이예요 (세 쌍둥이예요)

이웃 사람들은 덩실덩실 춤추며 함성까지

내 지릅니다

그러자 王서방은 나무토막 쓰러지듯

그 자리에 덥석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축하해 주던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리둥절 합니다

王서방이 흐느끼며 울다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세 식구 살기도 어려운 데 싼 뽀우 타이라니요 싼 뽀우 타이라니요

앞으로 어찌 살라고 어찌 살라고

그제서야

이웃 사람들도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습니다

콧날들이 찡 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이의 가슴에

칼날 같은 삭풍이 몰아쳐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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