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오래된 나무들로 가득하고, 아버지가 생전에 지어놓은 온실이 있습니다. 그녀의 연구 주제는 나무에서 추출한 물질로 녹혈구를 만드는 겁니다. 동물의 몸에 변형된 식물의 유전자 조직을 공급하여 광합성으로 산소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물론 이것은 영화 속 허구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연구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당장 상품화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폄하됩니다. 그것이 또한 그녀를 아프게 했습니다.
도시에서 그녀는 철제 계단으로 위태롭게 올라가야 하는 옥탑방에 살았습니다. 이웃한 건물의 다른 옥탑방에 사는 무명 소설가의 눈에 그녀가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여러 번 보입니다. 그 남자 지훈도 그녀만큼 가난하고, 세상과 가족에게서 단절된 인물입니다. 재연이 숲으로 간 후 지훈은 거처를 그녀가 살던 방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그녀가 벽에 남긴 자취를 보며 소설의 동기를 얻습니다.
영화는 중반부터 지훈의 소설 쓰기와 궤를 같이 합니다. 그녀의 생활을 몰래 훔쳐보며 써 가는 지훈의 소설은 드디어 주목과 인기를 얻습니다. 고통 속의 한 사람이 다른 이의 고통을 밟고 일어서는 세상사의 질곡이 가슴을 후빕니다. 실패한 과학도의 기괴한 실험이었다고 말하며 끝을 맺은 지훈의 소설은 그러나, 영화 엔딩에 이르러 '그 여자는 나무가 되었다.'로 바뀝니다. "미안해요." 이것은 단지 지훈의 대사만이 아닙니다. 감독의 고백이고, 우리 모두의 언어이기도 합니다.
"나무는 가지를 뻗다가 다른 나무를 만나면 옆으로 비켜 가요. 그런데 사람은 안 그래요. 다른 사람을 죽여요." 재연의 말은 깊은 성찰의 계기를 만듭니다. 나무처럼 사는 사람들과 나무들이 이룬 숲 같은 세상을 꿈꾸는 일이 물정 모르는 순진함으로 여겨지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꿈마저 꾸지 않는 세상이란 더 이상 사람 살 곳이 못되지 않을까요? 가을이 깊어갑니다. 갑사 계곡의 고목들이 보고 싶어집니다. 가서 나무들이 사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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