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절구질하는 여인', '나무와 두 여인', '빨래터' 등의 그림으로 친숙한 작가다.
'흰 소', '길 떠나는 가족' 등을 그린 이중섭의 그림은 활기찬 생명의 동적인 표현이라면 박수근의 작품은 채색과 인물 사물의 표현도 단순하다. 그 시대의 소박한 서민 생활을 그려서 일까? 아주 정적이고 관조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인 '빨래터'가 위작시비에 휘말렸고 작품이 고가에 팔린다는 정도가 화가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도 고흐처럼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조그마한 책 한권이 계기였다. 그 책을 통해 그가 살아온 인생이야기를 알게 됐다. 미술교육을 받지도 못한 환경 속에서 일궈온 박수근의 스토리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숭고한 사랑으로 맺어진 아내의 내조도 눈물겹다. 화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숭고하고 엄숙해 가슴 아팠다. 그의 작품들이 다시 보였다. 인간 박수근의 삶을 기록한 사람은 그의 아내 김복순이다.
인간 본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는 없다. 그러나 성선과 성악 중 택일을 해야 한다면 주저 없이 후자에 손을 들것이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을 천사에 비유한다. 아기의 미소는 순수함 그 자체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잠재되었던 내면들이 물안개처럼 올라온다. 분노, 질투, 시기, 미움의 결과물을 볼 때 마다 인간본성에 대한 깊은 회의가 든다. 약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강자중심의 사회로 흐르고 있음을 볼 때 과연 인간본성은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박수근은 이러한 편견을 깨게 하는 사람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순박한 믿음이 길지 않았던 생애동안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화려한 색상과 소재가 아니다. 서민의 애환을 느낄 수 있는 시장, 거리, 나무, 시골집, 어린이들이 주다. 궁핍한 생활로 아내 김복순은 늘 그의 모델이 되었다. 박수근의 아내에 대한 지순한 사랑 또한 현대에서는 볼 수 없는 순수함이다. 이미 약혼까지 한 아내를 좋아하면서 넘을 수 없는 벽을 극복해 가는 과정은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평양과 춘천을 오가는 편지를 너무 자주 배달해야 하는 집배원이 ??너무 하는 거 아니예요??? 라는 푸념은 SNS가 전달할 수 없는 애절하면서도 숭고함을 전해준다. 박수근의 편지는 아내 김복순에 대한 지고한 사랑을 담고 있다. 아이를 업은 아내가 여름햇살을 그대로 받는 것이 안쓰러워 일본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양산을 도둑질 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여과 없이 내면을 느낄 수 있다.
고흐도 박수근도 그러했다. 살아생전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했다. 늘 가난했고 쪼들렸다. 그러나 그림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림을 통해 역경을 승화시켰다.
그런 관계로 그들의 그림이 다름이다.
울림이다.
작은 책속에는 따스한 본성, 맑은 영혼을 지닌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져 있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 세상의 모든 것이 이와 같지 않을까. 알기 전보다 알고 난 후 다르게 보이듯이 세상사 모든 오해와 편견은 이해의 부족에서 오지 않을까. 작지만 아름다운 이 책을 읽어보길 적극 권한다.
김기세 한밭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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