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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가 시작되고 중간고사가 끝나면서 정말 할 일이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학회에서는 학술회의 참석해 달라고 하고,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는 기본과제에 대한 정책보고서 검토회의에 검토위원으로 참석해달라는 요청과, 또 학술지에 투고된 논문을 심사해 달라고 요청이 오는 등 정말 할 일이 갑자기 밀려오고 있습니다.
학자로서 개인적인 연구와 강의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회의 학술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 연구논문이나 정책보고서의 검토도 전문성을 고려해서 부탁해 오는 만큼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내 스스로 학회장으로 또 학술지 편집위원장으로 그리고 또 사회과학분야 학문단장으로 일을 해 본 경험이 있기에 이런 일들을 해 주실 분들을 섭외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부에서 이런 요청이 오면 정말 일정이 중복되지 않는 한도에서 최대한 수용하고 가급적 빨리 요청받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정말 요즘 일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더구나 당연히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성실히 그리고 완벽히 처리하려고 하니 시간에 쫓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달라고 요청해 오는 것이니 비록 때로는 벅찬 감이 있기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것은 적어도 어떤 영역이나 분야, 특정 과제, 그리고 어떤 역할 등에서 전문가로 또는 적임자로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영역, 분야 등에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평판이나 평가 등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평생 동안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우리 사회의 구조나 제도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로 평가도 받아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 희비가 갈리기도 하고 채용이나 임금 등이 결정되기도 하니, 소위 인정받고 좋은 평가를 받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제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조직과 사회, 회사 등 우리 사회 전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육기관인 대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대학은 대학대로 다른 대학과의 비교를 통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평가가 나쁜 하위권 대학은 이제 대학의 존폐가 염려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신입생이 줄고 재학생은 이탈하고 졸업생은 취업을 못하는 상황은 마치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켜 악순환이 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의 평가는 이제 대학에 소속되어 있는 구성원의 잘못으로 그 책임이 돌아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과거 대학교수는 학자로 인정받고 자신의 영역에서 연구와 강의를 잘 하면 되는 것이었다면, 이제 대학교수의 역할은 연구와 강의는 물론이고 대학의 존폐와 관련된 다른 부분도 담당해야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대학은 대학대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사명과 임무가 있고, 그 구성원인 대학교수 역시 연구와 강의 이외에 또 다른 의무와 사명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새로운 의무와 사명, 그리고 임무는 전체적으로 변화되는 사회 환경에 부합하는 학문발전과 대학의 풍토를 새롭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변화하는 환경과 조건에 따라서 각자의 책임과 의무, 그리고 임무가 변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변화된 상황에서 그 변화에 적응하고 따라가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타성에 의해서, 그리고 때로는 새로운 상황 변화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의 부족에서 능력의 한계를 느끼기도 하고 힘에 부치기도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찌 보면 '생존의 법칙'이 이제는 사회 거의 모든 곳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던 이런 상황의 변화 속에서도 '일'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만약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거나 새로운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일'은 적어도 줄어들거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과의 모 교수님께서 이번 개교기념일에 '우수강의교수'로 선정되어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쁜 일입니다. 솔직히 선배 교수님이시지만 부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나는 왜 학생들에게 인정받는 강의를 못하였는가?'라는 반성도 합니다. 교수로써 좋은 강의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학생의 입장에서 좋은 강의를 들을 권리도 있는데, 그 권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교수라는 반성도 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게 주어진 일을 그래도 나름대로 한다는 생각에서, 비록 우수하고 탁월하다는 인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최소한의 의무와 임무는 그래도 하고 있다는 위안을 스스로 해봅니다.
이번 주말 내게 주어진 일들이 참 많이 남아 있습니다. 비록 우수하고 탁월하게 일을 처리할 자신은 없지만, 이번 주말에 일을 한다면 그래도 정해진 시간을 넘기지 않고 아마도 시간 내에 충실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해야 할 일은 많지만, 그래도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어쩌면 다행이고 그래도 행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이 많은 주말, 그래도 힘들다 생각하지 않고 하나하나 일을 해 가려고 합니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습니다. 파란 하늘과 예쁘게 물드는 단풍을 그냥 보내지 않는 행복한 주말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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