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모두 일설로 말하기 어려운 유적입니다. 자상한 유적소개는 따로 해야 되겠지요. 문학 명소, 문학인을 기리는 일정 소개라 할까요.
고색창연한 만수산 무량사에 먼저 들렸습니다. 극락전(보물 제356호), 석등(보물 제233호), 오층석탑(보물 제185호) 등 훌륭한 문화재가 있는 고찰이지만,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 ~ 1493)을 만나기 위해서지요. 5세 때 시를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신동이었다는데요. 21세 때 수양대군(首陽大君, 世祖, 1417 ~ 1468) 왕위찬탈 소식 듣고, 3일간 통곡 하였답니다. 보던 책 모두 불사르고 승려가 되어 유랑합니다. 사육신이 처형당하자 시신을 수습해 주기도 합니다. 학문 업적도 뛰어나지만 2,200여 수에 달하는 한시,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요, 말년에 무량사에 머뭅니다. 사찰 중앙 영각(影閣)에 작자미상의 영정을 봉안하였답니다. 천왕문 들어가기 전에 시비가 있고요. 일주문 이백여 미터 앞에 비석과 부도가 있습니다. 풍모와 절의, 애민사상, 문장 모두 본받을 일입니다.
신동엽 시인의 생가 안방 |
껍데기는 가라 /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 껍데기는 가라. // 그리하여, 다시 / 껍데기는 가라. /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 아사달 아사녀가 /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 부끄럼 빛내며 / 맞절할지니 // 껍데기는 가라. /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점심 식사는 연잎 밥 전문점 '사비향'에서 했습니다. 바지런한 사람은 식사 후 궁남지를 둘러보았답니다. 부여에 사는 정진석(鄭眞石, 1951 ~ ) 문학박사가 환영 인사차 점심값을 모두 냈다는군요. 문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시인이지요. 열정만큼이나 통도 큽니다. 연금 생활자가 내기엔 부담되는 거금인데요. 과용한 것은 아닌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일행을 태운 버스가 부소산에 이릅니다. 울창한 솔밭길을 따라 오릅니다. 사자루에서 낙화암 거쳐, 고란사로 내려갑니다. 공사 중인 백화정, 많은 인파로 혼잡합니다. 고란사 뒤 바위틈, 고란초는 한포기만 보이더군요. 겨울에도 죽지 않는다지요. 약수 한 바가지로 목을 축입니다. 금강하류에서 물마시고, 물맛에 진란과 고란 향을 느낀 원효대사(元曉大師, 617 ~ 686), 향기 따라 이곳까지 와서 발견한 고란초, 필부가 향기나 맛을 알 리 없지요. 가슴 깊숙이 시원함만 느낍니다.
방문객이 두드리는 종소리 들으며 황포돛배에 오릅니다. 조룡대가 보이고, 물결이 제 몸 뒤집어 한 많은 역사 들춰냅니다. 머릿속이 출렁입니다. 강에서 올려다보는 낙화암은 또 다른 느낌이지요. 자온대로 갔다가 구드래 나루터에 내립니다.
구드래 조각공원에서 정한모(鄭漢模, 1923 ~ 1991) 시비, '새'가 반깁니다. 정한모 시인은 1955년『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멸입(滅入)'이 당선되어 등단합니다. 시인이자 국문학자로 서울대학교 교수, 문화공보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합니다. 주변 조각 작품들도 둘러봅니다.
능산리 고분군은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부여에서 반갑게 맞이해준 분들이 하차하고, 버스는 대전으로 향합니다.
여행 방법은 여러 가지지요. 소상하게 보는 사람은 단체 여행을 삼갑니다. 그런가 하면 멀리 왔는데 하나라도 더 보려는 욕심이 일지요. 준비 많이 하고, 돌아와 정리 잘하면 단점이 보완됩니다. 오늘 찾은 곳은 모두 몇 번씩 가 본 곳입니다. 명소는 볼 때마다 새로워 좋습니다. 기행은 공부요, 자기 성찰의 시간입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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