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숙(한밭초 교사) |
나와 아이들에게 있어서 '일기장'은 1대 1 대화창과 같은 매개체다. 요즘같이 스마트한 기기를 톡 치면 대화창을 열고 이모티콘을 열거할 수 있는 시대에 '일기장 대화창'이라니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삐뚤빼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글자에는 자판(키보드)으로는 전할 수 없는 것이 담겨 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울림'이다.
누군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일기장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검'이라는 도장 대신 펜을 잡게 되는 것은 마음이 움직였기(감동과 공감) 때문일 것이다. 이심전심일까? 서로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나의 댓글에 다시 글을 쓴 아이의 댓글이 달리고 우린 서로 마음을 공유한 사이라는 무언의 눈빛이 오고가곤 한다. 이렇게 나는 펜 하나로 그 옛날 펜팔 친구를 맺듯 36명의 아이들과 각각의 비밀을 하나쯤은 공유하며 마음을 나누는 사이로 자리매김 해가는 중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길거리에서 빨간 우체통, 공중전화부스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아날로그 감성의 문화가 사라져 가는 대신 전자기기가 난무하는 디지털시대에 걸맞게 모두들 손에 스마트 기기를 들고 바쁘게 거리를 지나는 모습은 이젠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다.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함께하기도 어려운 혼밥 시대이지만,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다 하더라도 각자의 손전화기만 들여다보며 기계와 씨름하는 모습이 밥상머리교육을 대신하고 있는 것은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자판(키보드) 위의 손놀림으로 문자는 늘었지만 마음을 나누는 소통의 대화는 줄어든 것이 요즘 현실이다. 인공지능의 진화로 세상은 스마트 해지고 편리해져 가고 있지만 함께 마음을 나누며 소통하는 일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이 인간의 모든 영역을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과연 정말 그러할까 싶다. 과학적 비율로 만든 음식이 '엄마의 정성어린 손맛'을, 컴퓨터 기계 음악이 'LP판의 감성'을, 자판으로 쓴 글자가 '손글씨의 정성'을 과연 그대로 담아낼 수 있을까?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한다고 해도 컴퓨터가 인간 특유의 '사람 내음'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선생님이 출근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문 앞에서 서 있던 학생 한 명이 조그맣게 접은 종이쪽지를 내 손에 건네주며 조용히 자리로 들어갔다.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말없이 내게 건네 준 학생의 쪽지 편지에는 '사랑해요.' 단 4글자만이 적혀 있었다. 그 짧은 문장이 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갑자기 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일렁임이 일었다. 왜였을까?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아이의 많은 생각과 마음이 순간 읽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연필로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쓰며 마음을 전하는 일이 드문 요즘, '고마워요. 사랑해요.' 하며 소소한 마음을 전하는 일이 일상화 되었으면 좋겠다. 소통을 넘어 상통(相通)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작은 바람으로 오늘도 아이들의 일기장에 마음을 담아 댓글을 달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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